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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30 Accidental Babies

Accidental Babies

2019. 1. 30. 16:09 from 오래된 글들/Short

 

 

이성종

 

 

 

Accidental Babies

 

 

 

그 사람은 충분히 어두운 사람이니?

 

너의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을 만큼?

 

남자는 멈출 수가 없어서 오른손만으로 울고 있는 성종의 얼굴에서 눈물을 훔쳐냈다. 남자는 성종이 자신 때문에 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 때문에 때로는 죽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남자는 멈출 수가 없어서, 마음으로는 그리고 머리로는 멈출 수 있지만 몸은 멈출 수가 없어서, 그저 오른손만 들어 올려 성종의 얼굴을 쓸어내린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규칙성도 없이 흔들리는 그 작은 얼굴을.

 

처음 만났을 때 남자는, 이름을 묻기도 전에 남자는, 물었다. 키스하기 전에 이를 닦으세요? 성종은 정면을 향하던 얼굴을 돌려 제 옆에 다가와 선, 낯선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크지 않은 눈이 성종의 시선을 맞춰왔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대답을 해줘야 하는가, 가치를 따지던 성종의 입에서 무미건조한 대답이 뱉어졌다. 남자는 희미하게 웃었고 성종은 그 표정을 흐릿하게 뜬 눈으로 바라보다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저와 섹스하기 전에는 이를 닦아주세요. 황당한 주문에 성종은 보고 있던 전시작에서 눈을 떼고 오늘 처음 만난 남자를 다시 쳐다보았다. 남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성종 대신 작품을 보고 있었다. 성종의 큰 눈 두 개가 느리게 감겼다 떠졌다. 두 사람의 거리는 잔뜩 좁혀진 성종의 미간 사이만큼 가까웠다.

 

“아쉽네요. 고개만 끄덕여줬어도 좋았을 텐데.”

 

성종은 대꾸 없이 다시 정면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정적 대신에 시끄럽지 않은 발소리들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잠깐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같은 그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랬다면 제가 저 그림 속의 남자처럼 당신을 바라보았을 텐데. 한참 후 열린 남자의 입을 통해 전해진 말에 성종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해사하게 웃었고, 두 사람의 뒤로 많은 발들이 소리를 죽여 천천히 지나쳐 갔다. 성종은 고개를 빼고 그림을 더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당신도 저도, 남자인데요?”

 

두 사람 앞에 걸린 그림은, 성교를 하는 두 남녀의 옆모습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림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아름다웠다. 여자의 나신 위에 그려진 남자는, 그녀를 사랑스런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종의 행동은 마치, 그림 속의 두 사람이 같은 성을 가진 이들인가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성종은 다시 허리를 곧게 펴 섰다. 남자는 다시 환하게 웃었다.

 

추억에서 현실로 돌아온 성종은 남자의 품 안에서 죽은 듯이 있었다. 좁고 하얀 방 안에는 남자의 심장이 뛰는 소리와 숨소리가 가득했다. 시간이 흐르고,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심장 소리가 천천히 잦아들고, 거칠게 몰아쉬던 숨도 진정 되었을 때에도 성종은 가만히 눈을 감고 죽은 듯이 있었다. 실제로 그것들은 멈추지 않았지만, 일부러 멈추지 않는 이상 멈출 일이 없었지만, 성종은 그런 그것들 대신에 제 것을 멈추고 싶었다. ‘죽은 듯’이 아니라 정말로 죽고 싶었다. 사랑하는 박동 소리와 숨소리를 들으며, 사랑하는 그 품에서 죽고 싶었다. 그것들을 가득 끌어안은 채로 영원히. 그럼 그 품이 아니더라도 가질 수 있으며, 머-언 곳에서도 느낄 수 있으며, 죽음이 또다시 찾아와도 소유할 수 있으니까.

 

“그때 나는, 너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어째서?”

“나는 너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하니까."

 

성종은 소리 죽여 웃었다. 남자도 성종을 따라 낮게 웃었다. Ewan은 어때? 너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해? 성종은 웃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남자에게서 등을 돌려 누웠다. 거대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몸을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난 어때?”

“…….”

“Ewan과 할 때 느껴? Ewan이 너를 흥분 시켜? 아니면 네 마음껏, 너를 자유롭게 해줘?"

“…….”

“그럼 난 어때?”

 

등 뒤에서 따라온 손이 제 은밀한 곳을 만지는 걸 밀어낸 성종은 양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다시 제 앞섶을 애무해 오는 손에 몸을 마구 비틀었다. 너는 섹스 할 때 네 얼굴이 어떤지 알아? 나는 너의 섬세한 감정들이 모두 보여. 남자의 다정한 목소리가 듣기 싫어, 성종은 귀를 틀어막은 채로 몸을 웅크리고 소리를 질렀다. 아악, 악, 고개를 미친 듯이 젓고 몸을 부르르 떨며 목이 쉬어라 내질렀다. 그리고 흥분하고 지친 제 몸이 역겨운 암 덩어리를 토해냄과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등 뒤에서 남자는, 성종의 마른 몸을 가득 끌어안았다.

 

“이곳에 있으면 그 사람과 함께라고 느껴?"

 

낮은 목소리 사이로 훌쩍훌쩍, 잦아든 울음소리가 섞여들었다. 성종은 말없이 숨을 고르고, 몸을 떨었다. 지금 너를 안고 있는 사람이, Ewan이 아닌 나인데도? 남자는 성종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종은 눈을 감고 제 맨 살갗에 닿아온 남자의 단단한 팔을 느꼈다. 그리고 제 다리 사이를 파고든 그의 다리와, 뒷목을 간질이는 그의 부드러운 머리칼도 느꼈다.

 

그래도 나없인 못 사는 거, 알아. 나른하게 방 안을 울리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성종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결에, 남자가 했던 모든 말에 대한 ‘당연’한 대답을 꺼냈다. I know. You're right. I know, I know…….

 

몇 년 전에 나는 너의 그 사람을 만났어. 남자는 성종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 사람은 나에게 꼭 이를 닦기를 요구했어. 그래야만 나와 키스를 했어. 나는 그 사람의 붉고 아름다운 입술이 갖고 싶어서 치약 향을 입에 머금고 살았어.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 네가 그 사람을 아는 것보다, 그 사람이 스스로를 아는 것보다. 그 사람에 물들고 그 사람을 따라가는 내가 싫었어. 나의 냄새를 잃고 그 사람의 것들로 채워지는 내가 싫었어. 그리고 그 사람의 새 사람인 너에게 반했어.

 

내가 자주, 아주 많이, 바라는 한 가지가 뭔지 알아? 네가 내 아이를 갖는 일이야. 남자는 잠이 든 성종의 옆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비스듬히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옷을 꿰어 입고, 작은 공간의 유일한 출입구인 문의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문틈에 끼워져 있었는지 우편 하나가 현관으로 떨어졌다. TO Ewan McGregor라고 쓰인 흰 봉투를 스치듯 내려다본 남자는 코트의 깃을 여미며 문 밖으로 나섰다.

 

남자는, 자신이 한 때 사랑하는 이와 사랑을 나눴던 공간에서, 그 사람의 연인이자 현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인 성종과 사랑을 나눴다. 자신이 반했던 성종의 모습이 사라지는 게 싫어서, 자신이 했던 사랑을 똑같이 할 성종의 모습이 싫어서, 방해하기 위해.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

그 사람은 너를 볼 수 있을 만큼 어둡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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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