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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2.11 [김명수/이성종] 송오브송즈 8 完



Song of Songs




김명수 이성종




송오브송즈 8




대학 2학년 축제였다. 2년을 휴학하고 제대 후 복학을 했던 터라 대부분이 스물 한 살짜리였던 같은 학년 애들보다 두 살이 많았던 때였다. 과에 친한 사람이라곤 남우현 하나뿐이던 때였다. 어울릴만한 사람도 없었거니와 편하지 않은 복학생 선배에게 축제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쉽사리 하지 못 하는 여자애들을 무심하게 대하던 때였다. 우수수 떨어져 길바닥을 가득 차지한 낙엽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때도 많던 10월이었다. 지난 학기에 김명수를 처음 만났고, 여름이 지나 다시 만난 때였다.


복학 후 첫 학기였던 지난 학기는, 매 일주일을 현대미술사 강의만을 위해 보냈다. 목요일 오전에 명수의 옆에 앉아 그 강의를 듣고 나면 한 주가 끝나 있었다. 성종의 한 주는 금요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목요일을 제외한 그 일주일 중 교내에서 그를 만나기라도 하는 날은 하루 종일 들떠 있었다. 특히나 귀찮음을 무릅쓰고 매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피우러 흡연구역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가끔 그를 마주치는 일이 성종의 출석률을 도왔다.


사람들이 장마라고 부르는 궂은 우기가 지나고 숨 막히는 열기가 공기를 지배했다. 유독 더웠던 그 해 여름에 성종은 명수에게 단 한 통의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 여름 동안 명수에게서 들었던 ‘친구 할까?’라는 말을 천 번은 더 곱씹었다. 그림을 좀 그려보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사진 한 장 갖고 있지 않은, 그리고 싶은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유난히 덥고 길기도 했던 여름은 성종을 상사병이라도 앓는 사람처럼 만들었다. 그건 뜬 구름이었을까. 바다 저편의 사막이었을까. 아무리 떠올려 보려 해도 더욱 흐릿해져만 가는 그 얼굴을, 이 여름 동안 잊어야 하는 건가 싶었다.


개강 후에도 김명수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같은 과도 아니었거니와 공통으로 듣는 수업도 없었다. 그렇다고 타과 수업까지 신청하여 그의 전공수업을 들을 정성도, 그가 주로 강의를 듣는 건물 앞에 죽치고 있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연기할 능청스러움도, 지난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연락 한 번 없었던 그에게 먼저 연락 할 자신도 없었다. 그저 지난 학기에 그가 애용했던 이 흡연구역에서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로 한 달을 보냈다.


축제에 참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과 애들이 하는 주점에서 술이라도 팔아주자는 우현의 설득이 없었다면 축제 내내 집 밖으론 얼씬도 안 했을 성종이었다.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우현뿐이었던 성종은, 교내에서 인기가 많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옆에 있으며 그 인기를 실감하는 게 재미있기도 했다.



‘야, 야. 회화과 남우현 아니야?’

‘혜지가 좋아한다던 그 남우현?’

‘아니, 민아가 좋아하잖아. 혜지는 김명순가? 예술학과 복학생 선배 좋아하잖아.’



흔하고 뻔한 대학 축제가 다 그렇듯 대부분은 얘나 쟤나 다 하는 주점이었다. 간간히 보이는 건 퀴즈를 풀어 상품을 타거나, 게임 등의 이벤트를 하는 과의 점포였다. 길 양 쪽으로 주욱 늘어선 그 점포들 사이를 걷고 있노라니 몇몇 여자 애들이 우현을 칭하는 말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 속에서 김명수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의 세포가 다 떨리며 반응하는 것 같았다. 개 중에 용기를 내 다가와 퀴즈를 풀고 가라느니, 시식을 하고 가라느니 하는 수줍은 여자애들에게 웃어주는 우현에게선 덜 자란 사내애들과는 다른 냄새가 났던 것 같다.


도착한 회화과의 주점에는 ‘미술’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는데 ‘술’자를 유독 크게 적어 놓은 탓에 누가 봐도 술을 파는 곳인 게 틀림없어 보였다. 공방에서 1학년 애들이 플랜카드를 만든다며 하얀 현수막을 펴놓고 물감 칠을 하던 걸 본 것도 같았다. 그 때의 성종과 우현이 다니던 미대에는 여자의 머릿수가 훨씬 많았던 탓에, 회화과 주점에서 음식을 퍼 담고 술을 서빙 하는 아이들은 죄다 나름대로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애들이었다. 언제나 관심 밖에 있던 그 애들 중 몇몇이 낯설게도 반가운 얼굴을 하고 선배님들! 이라 외치며 달려 나오는 꼴이 성종에겐 그다지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 단 한 사람과도 불편한 사이가 아니었던 우현은 장사는 잘 돼? 힘들진 않고? 따위의 안부를 물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 우현은 호감 중의 호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성종은 빈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훑어보며 혀를 끌끌 찼다. 하던 일을 몽땅 팽개치고 우현의 주위로 몰려든 여자애들에게선 분내가 났다.



“뭐 먹을까?”

“너도 참 성격 좋아. 지지배들이 저렇게 극성이면, 나 같으면 이런 축제 안 와. 귀찮아서.”

“왜애. 귀엽잖아. 애들 다 착하고 예뻐.”



메뉴판을 향해 내리깔았던 눈을 치켜뜨고 우현을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냐며 웃어버리는 그 얼굴은 누구라도 미워할 수 없을 얼굴이었다. 선배님들, 뭐 드릴까요? 라며 천진한 얼굴로 다가온 여자애를 우현을 보던 그 눈으로 쳐다보니 애먼 사람을 노려본 꼴이 돼버렸다. 성종에게서 황급히 시선을 거두는 그 후배의 얇은 인영 뒤로 좁은 주방 한 편이 보였다. 몇 되지도 않는 남자애들이 시커멓고 둔한 손으로 전을 부치고 있었다. 어깨를 들어 짧은 반팔 티의 소매에 이마의 땀을 닦는 그 남자 애들의 음식은 위생적으로 보이진 않았으나, 성종은 무심코 쟤들이 부친 전이랑 소주 한 병 달라며 여자애를 물렀다.



“저렇게 귀엽고 착하고 예쁜 애들이 많은데 왜 넌 여자친구도 안 만들어.”

“여자친구?”



제 잔에 소주를 따라주는 우현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러 잔을 들어 그 술을 받는 예의 따위는 차리지 않아도 되는 사이였다.



“너 여자 보기를 고자처럼 본다는 소문이 있어.”

“그럼 말 좀 해주지 그랬어. 화장실 같이 가서 봤는데 고자 아니더라고.”

“집에 숨겨둔 애인이 있다는 소문은 어떡할 건데.”

“우리 집에 제일 많이 놀러온 게 너거든.”



우현의 잔과 짧게 맞부딪힌 소주잔 안에 든 투명한 알코올을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알싸한 향이 코끝까지 올라왔는데 이상하게 오늘의 소주는 달았다. 술이 달면 인생이 힘들어서라던, 일주일 중 나흘은 술을 마시고 들어오던 어릴 적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성종이 넌?”

“그런 걸 왜 나한테 물어.”

“그 성격 좋아해주는 여자가 없지?”

“남우현 너 진짜!”



퍼런색의 부추 전을 뒤적거리던 젓가락 끝을 찌를 듯이 얼굴 앞으로 들이대니, 우현이 킬킬 대며 웃었다. 보기 드문 웃음이었다. 친구와 주고받는 농담이 즐겁고 술이 달기까지 하니 기분이 꽤나 좋아졌다. 술을 잘 하지 못 하는 우현 대신 소주 한 병을 다 마신 성종은 조금 알딸딸한 정신으로 주점을 나섰다. 우현이 계산을 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개의치 않았다.


좀 걷다보니 몇 없는 과 선배들 중 한 무리가 다가와 인사를 해왔다. 반가운 만남은 아니었다. 성종은 그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 손에 들고 고개만 몇 번 꾸벅거렸다. 그 때의 우현은 선배들에게도 예쁨을 받았었던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들과도 데면데면했던 나와는 정반대란 것만은 확실했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그들에게서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그 날 밤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요란스럽고 복잡했다. 술과 시끄러운 노래가 가득했고, 길 곳곳, 점포 곳곳은 사람들로 번잡했다. 사람이 많은 곳은 딱 질색인 성종에겐 우현이 아니었다면 절대 발도 들이지 않을 곳이었다.


그 때 펑, 펑 터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10월의 밤하늘로 화려한 색깔들이 수놓아졌다. 예기치 않은 불꽃놀이에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닭이 모가지를 쳐드는 것처럼 고개를 들고 꺾인 목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웅성웅성 거리는 그 사이에서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던 성종은 담배를 비벼 끄고 다시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을 발견했다. 발밑의 꽁초에서 하늘로 향하려던 눈은 잠시 방황하다 익숙한 형체 하나에 시선을 멈추었다.


예술학과 주점이라고 쓰인 점포 앞, 여러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들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저 멍하고 뚜렷한 얼굴. 연붉은색의 입술을 제외하면 흑과 백밖에 남지 않는 저 아름다운 얼굴. 새카만 눈 사이로 말도 안 되게 멋있게 자리 잡은 저 콧날. 이 새끼는 인중까지 잘 생긴 것 같아. 그렇게 생각했던 시간 속에 사느라 버거웠던 지난날의 이성종. 성종은 어느새 우현과 함께 있던 그 자리를 벗어나 예술학과 주점 앞까지 와있었다. 모두가 불꽃을 넋을 놓고 보고 있던 그 시간에 성종은 오로지 단 한 사람만 바라보며 그 곁까지 다가갔다.


누군가 옆에 다가온 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성종을 바라보는, 여전히 정체가 불분명하고 속을 알 수가 없는 그 눈은 김명수가 확실했다. 성종은 그의 손목을 세게 그러쥐었다.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감탄사를 연신 내뱉거나 휴대폰을 들고 촬영을 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성종은 명수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길고 얇은 몸이 성종이 이끄는 대로 딸려왔다.


단정하지 못한 모양새로 담배를 꼬나물고 뿌연 연기를 아무렇게나 밤하늘에 흩뿌리며, 그 길의 모든 것을 무관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도, 나를 볼 때는 슬쩍 웃기도 했던 그의 옆에서 걸으며 까만 하늘이 너무 깊어져 제 무게를 견디지 못 해 머리 바로 위까지 내려앉은 줄도 몰랐던 그 때. 담배를 왜 피우느냔 물음에, 창작의 고통의 산물이라며, 담배를 피워야 그림이 그려진다며 답했던 나를 두고, 역시 그림쟁이들은 뭔가 다르다는 둥의 말을 했던 그와 마주 보고 서서 피우던 담배가 소주 보다 달았던 그 때. 너를 위해 무엇이라도 욕심 낼 수 있었던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를 위해 살면 그만인 시절이었다.




*




꼬박 오전 10시는 되어야 눈이 떠졌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켜는 둥 마는 둥 하며 방에서 나오면 꽃냄새가 날 것 같은 주방의 식탁에는 우현이 예쁘게 깎아 포크와 함께 두고 간 사과가 담긴 접시가 있었다. 처음 그곳에 도착해 먹을거리를 사려 함께 갔던 대형 마트에서 성종은 유럽의 사과는 원래 이렇게 작니? 라고 우현에게 물었었다. 글쎄, 하며 웃었던 우현은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 작은 것 하나도 다 먹지 않고 늘 남겨두어 노랗게 색이 변한 사과 한 조각을 성종 대신 먹곤 했다.


떠나온 곳의 주택은 시티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크지 않은 집의 1층에는 집주인인 노파가 살고 있었고, 2층은 우현과 성종의 차지였다. 2층에도 주방과 세탁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어, 외출을 할 때 말곤 1층에 내려갈 필요가 없었고 집주인과 마주칠 일도 없었다. 처음 우현의 부모님이 알아봐 주었던 집은 시티 한 복판에 위치해 있었는데, 현지 주민들 뿐 아니라 관광객까지 많아 바글바글 거리는 메인 스트릿의 가운데에 위치한 건물의 2층이었다. 낡지 않고 편의시설이 가까운 데다 우현의 학교와도 멀지 않아 최상의 컨디션이었으나,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성종을 배려한 우현은 외곽의 다른 집을 직접 알아보았다.


어제와 오늘로 구분하는 그런 하루들은 매일 똑같았다. 특별한 일이라곤 없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씻은 후 우현이 깎아둔 사과와 커피를 타 먹고 있노라면 오전 시간이 다 갔다. 날이 맑은 날엔 곧 죽을 것처럼 말라버린 화분 몇 개가 있는 테라스에 앉아 햇살을 맞으며 앉아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몇 권 되지 않는 책들이 아까워,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꼼꼼히 천천히 읽었다. 책들 사이에는 한국에서 온 편지가 한 장 있었다. 딱 한 장.


이선생님. 잘 지내고 계세요? 프랑스 공기는 좀 다른가요? 한국은 여전히 미세먼지가 자욱해요. 좋은 곳에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푹 쉬다 오시길 바라요. 병문안 갔을 때 마지막으로 뵙고 그 이후로 연락 한 통 못 드렸네요. 알려주신 이 주소로 제 편지가 잘 도착할지 모르겠어요. 몸은 좀 어때요? 저는 잘 지냅니다. 선생님 전시회는 지난달에 마무리 잘 지었어요. 작품은 말씀하셨던 대로 엘킴님께 연락 드려서 전해드렸어요. 선생님 작품과 함께 해서 행복했습니다. 곧 또 뵐 수 있길 바라요. 장팀장 올림.


성종은 하루에 한 번씩은 꼭 그 편지를 꺼내 읽어보았다. 편지가 도착한지 반년이 더 지났는데도 말이다. 하도 많이 읽어서 그 길지 않은 문장들을 다 외웠다. 읽을 때마다 한 자리에서 눈을 오래 떼지 못 했다. 그것은 ‘엘킴’이라는 고작 두 글자였다. 엘. 킴. 그 이름을 입 속에 담고 혓바닥으로 오래도록 굴려보기도 했다.


햇살이 너무 강하다 싶으면 선글라스를 쓰고 웃통을 벗은 채 테라스의 커다란 나무 의자에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아랫집 노파가 고양이와 대화하는 소리, 길을 지나는 동네 사람들의 긴 불어들, 새가 지저귀거나 약한 바람이 스치는 소리들이 고요한 시간을 함께해 주었다. 태생부터 하얬던 피부는 검어지기는커녕 매번 빨갛게 익어 아플 때도 많았다. 그런 날이면 집에 돌아온 우현의 잔소리를 들으며 벌거벗은 채로 그가 발라주는 알로에 크림 같은 것의 차가운 온도를 즐기는 일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붉은 기가 가라앉을 때까지는 그런 무모한 일을 참아야만 했다. 네가 나무냐며, 허구헌날 광합성이냐며 한숨을 폭 쉬는 우현의 투정을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끔찍하게 다정한 우현이. 다정해서 안타까운 우현이.




*




우현은 보통 평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매번 달랐다. 일찍 돌아와 성종과 함께 점심을 먹는 날이 있는가 하면, 늦는 날엔 돌아오는 길에 위치한 이런저런 식당에서 저녁 끼니를 때우기 위한 음식을 포장해 오는 날도 있었다.


그런 그는 집에서만큼은 되도록 모든 걸 성종과 함께 하려고 했다.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도 했다. 성종에게서 별다른 반응이나 대답이 없어도, 무엇이 됐든 그의 주의를 끌어보려고 애를 썼다. 퇴원을 하던 날 의사 대신 다른 이에게서 들었던 당부를 기억하고 있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고, 취미 하나 정도는 가질 수 있게 해주라고. 그 어렵지 않은 부탁은 꼭 들어주어야만 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먼 곳으로 떠나온 두 사람의 생활은 말만큼 순탄하지는 않았다. 중독 증세가 강했던 마약을 중단하고 난 후의 성종은 재활하는 동안 본인 스스로도 그리고 곁에 있어주는 우현까지도 고통스럽게 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기분의 변화가 갑작스러웠다. 짜증을 냈다가 우울해졌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두 사람의 공기는 성종의 기분의 변화에 맞춰 오르락내리락 했다. 어떤 날은 밥을 먹다가 상을 엎었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밥을 먹다가 서럽게 울어댔다. 우현은 그가 엎지른 반찬과 국 따위를 군말 없이 묵묵히 치웠고, 울음을 터뜨린 날에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성종을 끌어안은 채 한참을 같이 울었다. 중단 증세의 하나로 폭력을 일삼기도 했던 성종을 품에 안고 그가 휘두르는 힘없는 주먹을 다 맞아주었다. 그에게 맞은 신체 부위보다 더 아픈 곳은 마음이었다.


어떤 날은 집에 돌아와 아침에 누워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는 성종을 맞닥뜨릴 때도 있었다. 무기력이 그의 온 몸과 정신까지 지배해서 하루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게 되는 날이 그랬다. 또 어떤 날은 집 안이 엉망진창일 때가 있었다. 걸려있던 액자가 바닥에 나뒹굴고, 반듯이 개어두었던 옷가지가 어지럽혀져 있으며, 접시나 컵 따위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깨져있는 그 가운데에 손에서 피를 흘리며 앉아있는 성종을 마주할 때면 우현은 가만히 잘만 뛰고 있던 심장이 발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은 절망으로 빠질 때도 있었다. 우현아, 왜 이제 와… 나 너무 무서웠어… 나 이러다 죽어? 우현아… 우현아…. 이름을 불러오는 그 목소리가 공포와 불안에 가득 떨고 있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입원을 하는 게 회복에 빠르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지만, 낯선 이들만 가득한 그런 삭막한 공간에 성종을 혼자 두고 싶지는 않았고, 성종 역시 원하지 않았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릴지라도 병원을 왕래 하며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았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명수가 제게 했던 성종에 대한 부탁도 치료의 일환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혼자 두지 말고, 대화 많이 해줘. 스스로 스트레스 풀 수 있도록 뭔가 하고 싶다고 하면 다 할 수 있게 도와줘. 그러겠노라고, 아마 어렴풋한 감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인 네가 남긴 부탁이라면 나는 뭐든 하겠노라고. 그 때 우현은 차마 남겨진 이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어 그 울먹이는 소리를 들으며 발끝만 내려다보았다.


한국에서 작은 소포를 하나 받았다. 지난해에 성종이 작업했던 그림이 표지로 실린 책이었다. 발간된 지는 꽤 됐는데 성종의 상태가 좀 좋아지면 받아볼 요량이었다. 그리고 기억의 일부를 잃은 그가 그 작업과 그림을 기억하고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오래 된 유럽의 집에는 한국에서는 흔한 자동 잠금 시스템 대신 동그란 문고리와 열쇠가 있었다. 우현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2층의 문을 열었다.



“성종아.”



돌아보는 그 눈은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이 그 안에 있었다. 품에 꼭 품고 온 책을 내밀었더니 그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거, 기억 나? 너 작년 가을에 작업했던 거야, 한국에서. 표지 그리려고 그 소설 읽느라 고생했었잖아. 기억 나?”



TV도 없는 거실 한 가운데에는 소파가 있었다. 벽에 붙어있지도 않은 채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소파는 테라스를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성종이 팔 거치대에 몸을 비스듬하게 기댄 채 앉아있었다. 우현은 소파 뒤를 돌아 성종의 옆 자리에 가 앉았다. 해가 지지 않은 바깥 하늘에선 연한 햇빛이 소파 아래까지 들어왔다.



“응, 기억 나.”

“기억 나? 정말?”

“응. 나 때문에 일부러 한국에서 주문했어?”

“나 잘했어? 책값보다 배송비가 더 들었어.”

“고마워, 우현아.”

“표지 봐봐. 그림 예쁘게 잘 나왔지? 책날개에 표지 이성종이라고 쓰여 있어.”



성종의 손에 들려있던 책의 앞표지를 살짝 열어 주었다. 위쪽에 자리한 작가 소개 아래로 분명 이성종이란 이름이 보였다. 표지 이성종, 이란 굵은 글자 아래로는 짧은 소개 글이 있었다. 화가. H대학교를 졸업했다. 두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독특한 그림 세계로 주목을 받고 있다. 더렵혀지지 않은 흰 것에 까만 옷을 입히는 일을 사랑한다.


성종의 표정만을 보고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읽을 수 없었으나,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아 안도했다. 책을 주문하면서도, 도착한 책을 들고 집에 오면서도 그의 심기를 건들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던 우현이었다. 이만하면 됐다. 성종의 상태도 호전 되었고, 치료를 더 받을 필요도 없어졌고, 특별하진 않지만 평범하고 단조로운 나날들이 계속 되는 지금. 우현은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작은 세상에 더도 덜도 없는 평화였다.




*




성종과 소박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니 어둠이 내려앉았다. 우현은 종일 수업을 듣느라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였다. 언어 때문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 어떤 때보다 공부가 힘겨웠다.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냥 그림만 그릴 수 있는 시간이 가장 덜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맞부딪혀 살다보면 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언어인지라, 주변 사람들과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성종에게 먹일 음식이나 입힐 옷 등을 사다주는 일도 한결 수월해졌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옆 자리에 누워있던 성종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화장실에 가는 줄 알았는데 한참 돌아오지 않는 그에 우현은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비척거리며 침대에서 벗어나 방문을 열었다.


밝지 않은 전등 아래로 소파 위에 양 무릎을 모으고 쪼그려 앉아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무언가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파묻고 열중하고 있었다. 우현은 그 뒤로 가까이 다가가 성종의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성종아.”



우현이 가까이 다가오는지도 몰랐는지 성종은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뭐해? 작은 목소리로 물으니 성종은 놀라며 들이켰던 숨을 훅 뱉어냈다. 그의 얼굴 아래로 무릎 위에 놓인 드로잉북이 보였다.



“그림… 그렸어?”



대답이 없는 그의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한국을 떠나온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 성종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일을 끔찍이 중요하게 여기고 지극히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게 언젠가 될 지는 예측 할 수도 없었지만, 분명히 그가 그림을 다시 그릴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었다. 사랑하는 것의 곁으로 돌아가는 일. 그의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했을 그 일. 끔찍하게 사랑하진 않지만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그 일에게로.


습한 기색이 역력한 성종의 눈은 어딘가 슬프고 쓸쓸해 보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이 축축했다. 소파 위로 드로잉북을 내려놓고 마른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뒤통수를 내려다보다 그가 그린 그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성종아. 너… 기억… 났어?”



성종의 기억이 돌아온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을 떠나온 이후로 매일 고민한 우현이었다. 그가 만약 명수의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보내줘야 하는 게 맞는지. 그 생각을 하면 속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해지곤 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 대답 끝에는 ‘이성종이 원하는 대로’라는 답이 있었다. 우현이 성종의 곁에서 바라는 것은 그저 그의 행복이 전부였다. 우현 자신도 몰랐던 사이에 성종을 아끼고 애달피 여기던 그 감정은, 그건 사랑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성종이 오늘 그린 그림은 다름 아닌 김명수의 얼굴이었다. 그건 소묘였는데 사진이나 실물을 보고 그리지 않아 어딘가 불온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너무나 분명하게도 그건 김명수였다.



“성종아, 대답 좀 해봐.”

“……”

“너, 기억 돌아온 거야?”

“…미안해. 나 기억 잃은 적 없어, 우현아.”



그가 그림을 다시 그릴 그 날은 아마 기억을 되찾은 날이지 않을까, 라고 혼자 생각하기도 했었다. 어떤 일에 국한되어 있었던 우현의 오랜 상념은 사람에게로 번져갔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곁으로 돌아가는 일. 그의 어떤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했을 그 사람.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어쩌면 끔찍하게 사랑했을 그 사람에게로.




*




일 년 만에 돌아온 한국의 하늘은 여전히 뿌옇고 칙칙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안으로 들어서 짐을 찾자마자 우현에게 전화를 했다. 여전히 그 다정한 목소리는 반가운 기척을 하고 있었다.



- 잘 도착했어?

“응. 한국 춥다. 똑같은 겨울인데 역시 한국 겨울은 달라.”

- 목도리 했어? 장갑도 끼고.

“걱정 마셔. 저녁 챙겨 먹었지? 잘 자. 연락 할게.”

- 그래.



우현과의 시차는 8시간이나 나서, 전화를 건 곳은 이른 아침이었지만 전화를 받은 곳은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 성종은 재개통도 하지 않은 제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메신저의 아무 사진도 없는 노란 바탕 아래로 ‘우현’이라는 짧은 두 글자가 있었다. 개통을 하지 않아도 통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전화기 하나를 두고 머리를 맞대었던 하루 이틀 전쯤의 우현의 얼굴이 말갛게 떠올랐다. 우리 우현이 얼리어답터야, 라고 호들갑스런 농담을 하니 이걸 모르는 네가 이상한 거라며 웃어버리던 그 숨 막히게 다정하고 예쁜 얼굴. 이제 걸음을 뗄 때였다.


많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있긴 있는 짐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남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너희 집에서 며칠만 있어도 되냐는 물음에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는 녀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오래 전부터 친하지는 않은 사이였다. 아버지가 성종을 내놓은 자식 취급을 할 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길을 걷는 기분은 낯설었다. 일 년 전쯤 살았던 동네였다. 토요일의 거리는 유난스럽지 않을 정도로 붐볐다. 크게 달라진 것 없는 거리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좀 차다 싶어 우현이 챙겨 준 장갑을 낀 손으로 코트 깃을 여몄다. 걷던 길 중간에는 일 년 전에도 그 자리에 있던 꽃집에 들렀다. 꽃을 사본 적이 없어 아무렇게나 예쁘게 만들어주세요, 라고 말했다. 누구한테 줄 거냐고 묻기에 대답했다. 전시회 보러 가요. 작가한테 줄 거예요. 젊은 여자 사장이 아무렇게나 예쁘게 만들어준 꽃다발을 품에 안고 걸음을 재촉했다.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건 때론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다 잊었을 줄 알았던 길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찾아가는 스스로가 놀라운 성종이었다. 도착한 곳은 일 년 하고도 몇 개월 전쯤 성종이 개인 전시를 치렀던 작은 갤러리였다. 하아- 숨을 포옥 내쉬니 얼굴 앞으로 하얀 입김이 피었다 사라졌다. 혀끝으로 입술을 적셨다.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는 것도 같았다.


갤러리 앞에 정확히 도착해서야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마주 본 갤러리 입구는 여전히 전면 유리로 되어 있었다. 어김없이 그 안으로는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으로 보이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성종은 희미하게 웃었다. 코트 주머니에 꽂아두었던 초대장과 팜플렛을 꺼냈다. 한 달 전 한국에서 프랑스로 온 것이었다. 팜플렛에는 전시회 이름과 작가 이름, 전시 설명 등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Song of Songs

작가 L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성종은 마주 향한 갤러리 안으로 보이는 제 얼굴을 여전히 웃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지난 시간 성종이 그려왔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그림이었다. 뚜렷하고 정성 가득한 그림. 누군가 그 그림을 본 후 성종의 얼굴을 보면 단박에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림이었다. 성종은 품에 안은 꽃다발을 더 꼭 안았다. 갤러리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얼굴로 뛰어 나오는 동우가 보였다.



“이선생니이임!!”

“오랜만이에요, 장팀장님.”









  

몇 년 만에 적은 글이라 남다른 작업이었어요. 14년도 성종의 생일 웹진에 특전으로 참여했던 글을 적을 때, 그게 제 마지막 팬픽일 거라고 혼자 다짐 했었거든요. 그때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던 그 웹진에 조제라는 이름으로 단편을 실었던 저를 기억하고 계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이전엔 다른 이름으로 글을 썼었어요. 그 이름으로 지난 날 썼던 픽션들이 여전히 인터넷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게 사실 부끄럽기도 합니다. 인피니트를 좋아하기 전 알았던 어떤 작가의 유일한 후기에 이런 글이 있었어요, 제 글을 감명 깊게 읽어주신 분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분을 위해서라도 절대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그 이후로 저도 가졌던 그 마음들을 뒤로한 채로요. 인피니트를 주인공으로 글을 처음 썼던 그 때의 저는 지금보다 더 어렸으니까요.

그렇지만 글을 쓸 때면 저의 시간은 2011년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난 상처를 떨치지도 못한 채로 인피니트를 처음 만났던 바로 그 때에요.

귀중한 시간을 제 이야기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 하고픈 얘기가 생겼을 때 주인공을 삼을 수 있는 이들이 그 자리에 여전히 있어주어 기뻤다고, 이름을 빌려준 인피니트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네요. 또 뵐게요.

 


 

 

 

 

 

 

 

 

 

 

 

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