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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30 그냥 가요 외전 for YeonWoo

 

 

 

그냥 가요 외전 for YeonWoo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낄 때가 있을 테다. 예를 들자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라던가,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을 때라던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때라던가. 뭐 그런 시답잖은 것들 말이다. 그 중에 시답다고 하기엔 좀 특별한 경우가 한 가지 껴있는데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때. 나는 한 번도 사랑이란 게 상호작용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상호작용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깨닫고 있다. 이를 테면 내가 건넨 사랑한단 말에 같은 대답을 해주는 상대라던가, 먼발치서 지켜보는 대신 가까이에서 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권리라던가. 사람들은 이런 걸 사랑이라 부르며 때로는 살아있는 느낌이라고 여기기도 하겠지. 아아- 당신 덕분에 사는 게 행복해요, 아아- 당신이 내 세상의 전부예요, 따위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입 밖으로는 꺼내지도 못할 대사들과 함께. 그렇다면 나는?

 

나는 최근 살아있다는 느낌을 잊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 아니, 둘 다? 사실 내가 사랑 덕분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은 없었다. 실제로 사랑하는 동안 혹은 사랑 받는 동안 그런 ‘꼭 생각을 해야만 느낄 수 있는’ 느낌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이제야 그 느낌을 느낀다. 왜냐고? 내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사람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괜찮다고 하는 법.

 

 

나는 한동안 아팠다. 가을이 오기 전이었다.

 

‘우리가 아직 어리다고 했어.'

‘그 사람, 너 사랑했어. 다만 사랑을 즐길 뿐이었어.'

 

그렇게 내 사랑에 대해 말하던 우지호의 품에 안겼던 그 날 이후로 나는 조금 아팠다. 전면적으로 활동을 쉬었다. 우지호가 그렇게 하게 했다. 멤버들 모두 각자 휴식기를 가졌다. 활동은 이미 막바지였기 때문에 괜찮았고, 스케줄이 잡혀있던 라디오나 지방행사 등은 나 없이 여섯 멤버끼리 해결했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사건사고도 문제도 많았던 우리는, 음반을 내고 활동하는 시기가 아닌 시기의 스케줄에 멤버 한두 명이 불참하는 경우 따위야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우지호는 그 몇 개 있지도 않던 후반 스케줄까지 모두 마치고 나면 다 같이 좀 쉽시다, 하는 말로 그간의 피곤과 노고를 대신 말했다. 나는 그가 상당히 지쳐있단 걸 의심치 않았다.

 

가을이 오고 내 몸 상태도 괜찮아져갔다. 한동안? 아니 꽤 오래 아팠던 것 같다. 여름 막바지에 감기라도 걸린 냥 열이 나더니 식은땀을 흘리기도 하고 심한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가을이 오며 몸 상태는 호전 되었으나 정신 상태는 쇠약해져 갔다. 우울증이라도 앓는 것처럼 노래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만 들어도 울컥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귓가를 맴도는 문장들을 곱씹어야 했다. 내 사랑에 대해 말했던 우지호였다.

 

시월 중순쯤이었을까. 도통 밥을 못 먹는 나를 보고 있던 우지호가 참다못해 화를 버럭 내며 젓가락을 식탁이 부서져라 내려놓고 욕지기를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아니 이해할 수 있더라도 하기 싫어 그의 뒤통수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그날 밤 나는 그가 곡 작업을 하고 있는 작업실을 찾아갔다. 우지호는 소파에 모로 누워 쪽잠을 자고 있었다. 전에 어디선가 담요를 본 것 같아 작업실을 휘휘 둘러보았다. 의자에 걸쳐져 있는 담요를 그의 기다란 몸 위로 펼쳤다. 나는 그를 위해 사온 커피 두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잠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입술이 열리기까지.

 

왔으면 깨우던가, 잠에 취했던 방금 깬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나는 더 자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앉아봐” 우지호는 세 글자로 나를 붙잡고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날 나는 한참을 울었고 그는 그런 나를 달래는 대신 제 담요를 내게 덮어주고 녹음실 안으로 들어가 소리를 지르고 벽을 쳐대며 악을 썼다. 그날 나는 우리가 나눈 아니, 그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을 울며 다 잊어버렸다. 아마 우지호도 잊으려고 그런 미친 놈 같은 행동을 했을 거라 여겨진다.

 

그날 이후로 나는 괜찮은 척을 하려고 애를 썼다. 작업실에만 처박혀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우지호와 마주칠 일도 없는데 혹시나 그가 불쑥 집에 오지 않을까 싶어 괜찮은 척을 하려고, 정말 애를 썼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무도 먹지 않는 아침밥을 혼자 챙겨 먹고, 운동을 했다. 점심엔 주로 지훈이나 태일 형과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곤 했고, 오후 시간엔 민혁 형과 춤 연습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다. 저녁밥을 다 먹고 지훈이와 형들의 떠드는 이야길 들으며 억지로 웃고 있어도 우지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걸 며칠을 반복했다.

 

결국은 내가 참지 못하고 그의 작업실을 다시 찾았다. 멱살을 잡고 흔들며 욕이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개새끼야, 너는 내가 그날 그렇게 울고 혼자 돌아갔는데 궁금하지도 않아? 나를 그렇게 울려 놓고도 미안하단 말도 없어?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나서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해놓고 위로조차 안 해?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이 말들이 어떤 마음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말하고 싶었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괜찮지 않은 나의 괜찮은 척이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으니까. 맘을 단단히 먹고 작업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지만 우지호는 없었다. 작업실을 지키고 있던 경이 내게 웬일이냐 물었다.

 

혼자 여행을 갔단다. 지금쯤 아마 연습실에 있을 거라 했다. 경의 말에 나는 여행? 되물으며 미간을 좁혔다. 박경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회사 연습실에는 정말 우지호가 있었다. 혼자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봤자 우리 노래에 우리 안무였다. 나는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고 우지호도 곧 하던 몸짓을 멈추고 거울을 통해 나를 보았다. 나는 인상을 쓰며 화를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우지호가 성큼성큼 연습실을 가로질러 가더니 의자에 놓아두었던 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행동을 눈으로 좇았다. 우지호가 손에 들린 작은 기계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나는 너무 놀라서 부서진 파편들이 흩어진 곳으로 달려가며 너 미쳤어? 소리를 쳤다.

 

견딜 수가 없어서 미친 척이라도 해보려고 그런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미친 척이라도 해보려고! 너 하나 때문에 만나지도 않던 여자를 만나겠다고 생지랄을 했는데 이 년도 저 년도 다 아닌가봐. 빌어먹을 핸드폰 하루 종일 울려대는데 내가 기다리는 연락은 한 통도 오지를 않잖아. 그래서 혹시나 내가 뭔가 아직도 잘못 생각하고 있나 싶어서 니가 그 새끼랑 함께 했던 곳, 니가 그 새끼랑 좋아 죽었던 곳, 내가 너 땜에 그 새끼랑 싸웠던 곳, 니가 그 새끼랑 연락하던 이곳까지 왔는데, 씨발 연락 대신 직접 왔네, 내가 기다리던 니가. 이제 우리 집 앞에 가서 니가 그 새끼한테 버려지던 것만 회상하면 되는데 왜 벌써 왔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입만 멍하니 벌린 채 그의 지친 얼굴을 바라보았다. 분에 찬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내가 아픈 이유에 대해서 그가 착각하고 힘들어 할 거란 걸 생각 못했다. 그는 분명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것일 거라 여겼을 테고, 나는 그가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건 추호도 예상 못하고 내 힘든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이기적인 것은 또 나였단 말인가. 우지호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지만 더 무얼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저 그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흐느끼는 어깨를 감싸주고 싶었다.

 

그날, 우지호가 나를 울렸던 그날, 그가 한 말 중 내가 잊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우리는, 나, 너, 그리고 그 새끼, 우리 셋은, 그냥…… 서로 사랑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야, 유권아.'

 

그래서 지켜야 하는 것은.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계절이 겨울 문턱에 걸쳤을 때야 나는 온전히 괜찮아졌다. 그동안 무엇 때문에 아팠는지도 잊었고,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힘들었는지 고통스러웠는지 모두 잊어버렸다. 잊어버렸다고 믿었다. 그래야만 괜찮을 수 있었다.

 

12월이 왔고 사람들은 더 두터운 옷을 꺼내 입었다. 나무는 나뭇잎들을 모두 바닥으로 떨구었지만 그 자리엔 어느새 새하얀 서리와 때론 눈송이들이 내려앉았다. 벌써 12월 중순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앓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괜찮아진 이유는 우지호가 나를 이제 더 이상 예전 같은 마음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지호는 나대신 다른 것들에 마음을 주려 노력했다. 제 말대로 여자를 만나기도 했고, 음악에 몇 날 며칠을 투자하는가 하면, 다른 뮤지션들과의 힙합 공연 준비로 바쁘기도 했고, 정신없이 연말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더 생각한 후에야 깨달았다. 아, 잘못 되었구나.

 

우지호와 나 같은 사람은 사랑 받는 일에 익숙하다. 연예인으로 살아 온지 삼년이 지났고 우리는 그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아왔다. 그것을 구분할 줄을 알았어야 했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우지호의 사랑마저 다른 것들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다만 나의 ‘그 사람’에 대한 사랑만큼은 다른 것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게 틀렸다는 것을 나는 우지호가 나에게서 관심을 멀리하고 난 후 시간이 얼마 지나고 깨달았다. 내가 어리석었음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늦여름의 모든 날들처럼 나는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곧 크리스마스고 연말 그리고 새해였다. 바쁘고 정신없어야 하는 시기인데 나는 방에 틀어박혀 모든 연락을 두절하고 초조함에 가슴 졸였다. 돌려놓고 싶었다.

 

애정결핍이라도 있는 사람마냥 나는 수시로 우지호에게 보고 싶다든가 같이 좀 있어 달라든가 하는 수상한 메시지를 남겼다. 수신인이 메시지를 읽었다는 표시가 나타났지만 단 한 번도 그는 답이 없었다. 그리고 아마 나는 답을 바라고 그렇게 꾸준히 메시지를 남겼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보고 싶어, 지호야. 보고 싶다. 지금 좀 볼 수 있어? 지호야, 어디야. 우지호, 얼굴 좀 보자. 밥 같이 먹어주면 안 돼? 녹음실이야? 내가 갈까. 보고 싶다고, 우지호.

 

그렇게 어느덧 봄이 오고, 우리에게도 시작해야 할 시기가 왔지만 우지호는 내게로 오지 않았다. 곡 작업을 시작하고 녹음을 하고, 컨셉 회의와 앨범 작업까지 모두 거쳤지만 그와 나에겐 이렇다 할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우리의 계절도 여름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새로운 옷을 입으며 최선의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뀔 때까지도 우지호와 내 사이에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만든 이와 표현하는 이의, 어느 정도의 공감과 적지 않은 타협이 있었을 뿐. 그렇지만 나는 우리 관계에 대한 어떠한 '표현'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의 불안정하고 시들어가는 마음까지도, 우지호의 무덤덤하고 태연한 태도에 조용히 숨겨야 했다.

 

 

뜻밖의 일은 그 이름에 걸맞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일어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예기치 못한 순간’은 어쩌면 누군가에겐 기다려왔던 순간일지도. 지난날에 내가 우지호에게 보냈던 메시지들만큼이나 그와 나의 관계가 수상해지기 시작했다.

 

 

 

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