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쫑 조각

2013. 1. 3. 16:58 from 오래된 글들/Short

 

"짝사랑 하냐?"

 

눈알이 또르륵 굴러갔다. 녀석이 나를 보던 시선을 황급히 돌리곤 입술을 삐죽이더니 맥주캔을 집어들었다. 나도 다시 눈알을 굴렸다. 물어봐 놓고 피하는 건 무슨 심보야.

한참 정적이 흘렀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녀석도 다시 묻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게 더 신경이 쓰여서 잘만 마시던 맥주가 맛이 없게 느껴졌다. 녀석이 리모컨으로 채널을 마구 돌리다 전원을 꺼버렸다. 그렇게 녀석은 TV 마저도 우리의 정적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그건 왜 묻냐."

 

맥주를 다시 한 모금 목구멍으로 넘기고 태연한 말투로 물었다. 녀석은 뚱-한 표정으로 꺼진 TV 화면을 바라보다 그냥, 하고 툭 던지듯 대답했다. 어처구니, 가 이런 상황에서 어울리는 말이었지, 아마.

 

"뭐야. 있냐? 있어? 진짜? 와, 이성종 그렇게 안 봤는데……. 와-"

"뭘 그렇게 안 봐, 병신아.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누군데? 누군데.

 

녀석이 아예 몸을 내 쪽으로 틀어 목을 빼고 물어왔다. 거북이마냥 나를 향해 빠진 고개가 귀여웠다. 말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군데, 누군데? 하는 모습도 아이 같이 귀여웠다. 하여튼 남우현……. 나는 우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탁 밀어내며 다시 맥주캔을 입으로 가져갔다. 녀석은 다시 허리를 숙이고 목을 빼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야, 형님한테 얘기해봐. 혹시 또 아냐. 이 형님이 문제를 해결해 줄지. 원래 사랑이란 게 혼자 끙끙 앓는다고 해결 되는 게 아니에요."

"미친……."

"어떤 기지밴지, 니가 좋아하는 앤 진짜 복 받았다."

"너야, 등신아."

 

너야, 등신아. 녀석이 벙-찐 표정을 하고 나를 보았다, 자라 같은 그 자세 그대로. 약간 아래서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표정이 뭐라고? 묻는 것 같았다. 너라고. 남우현,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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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