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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30 [김명수/이성종] 송오브송즈 1




Song of Songs




김명수 김성규 남우현

이성종




송오브송즈 1




비가 올 것 같이 하늘이 흐렸다. 갤러리에서 집은 멀지 않았지만 비가 온다면 걸어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버스를 타고 싶진 않았다. 사람이 많고 북적이는 곳은 질색인 성종이었다. 곧 시작할 전시회 첫 날에 오프닝 파티를 갖자 했던 장팀장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한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늘 혼잡한 서울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지 않아, 성종의 집은 늘 학교 근처에서 작업실 근처 등으로만 이사해 왔었다. 이번 전시회 역시 내키진 않았지만 승낙한 이유는 갤러리가 집과 가까운 장점이 한 몫 했다.



“작품 다 좋은데?”



흐린 날씨에 비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찌나 포근한지. 성종은 쥐고 있던 커피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현은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을 등지고 서 있었다.


메인 작품은 갤러리에 들어오자마자 정면에 바로 보이는 곳에 걸려 있었고, 다른 그림들은 메인 작품을 기준으로 양 뒤 쪽으로 나뉘어 전시 되어 있었다. 성종은 메인 작품으로 걸어놓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장팀장이 무조건 메인은 이걸로 걸어야 한다고 몇 날 며칠을 우긴 탓에 결정권을 넘겼다. 이번 전시회의 기획을 도맡은 장팀장은 성종의 작업실(이자 집)을 처음 방문 했던 날, 그 그림을 발견하고 며칠 동안 그것에 대해서만 수다를 했더란다.


흰 캔버스 안에는 길고 얇은 혹은 짧고 굵은 검은 선과 점으로만 그려진 남자의 벗은 상반신만이 눕다 만 자세로 삐딱하게 새겨져 있었다. 성종의 모든 그림에는 색이 없었고, 우현은 그런 그의 그림을 좋아했다.



“한동안 뜸하다 싶었는데. 실력 안 죽었네, 이성종.”

“실력은 무슨 실력. 저번 전시 때 온 손님 중에 한 명은 뭐라 그랬는지 알아? 이런 건 일곱 살배기 자기 딸도 그리겠대. 어떤 사람은 이런 걸 무슨 돈 받고 보여 주냐고. 또 어떤 사람은 그림에 성의가 너무 없는 거 아니녜.”



눈을 착 내리깔고 푸념을 해대는 성종에 우현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기분 나쁘지 않은 웃음이었지만 동의의 의미가 조금은 담겨 있었다. 채색을 하지 않는 성종의 작업실엔 흰 색과 검은 색 외의 색이 있어본 적이 없고, 그렇다고 그의 그림이 아주 공들여 그린 것 같은 사실주의화도 아니었다.



“그래도 난 네 그림 좋아. 어떤 그림들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상상할 거리도 없는 게 있고, 어떤 그림들은 너무 난해해서 뭘 표현한 건지 이해도 안 가는 게 있는데, 네 그림은 뚜렷하면서도 불투명하잖아. 물론 채색 안 해도 되는 건 너무 부럽고.”



장난스레 웃는 우현에 성종은 그를 슬쩍 노려보다가 이내 따라 웃어버린다.



“근데, 메인이 왜 이거야?”



우현은 조금 머뭇거렸다. 성종은 그의 뒤에 걸려있는 커다란 그림을 흘깃 쳐다보다 시선을 우현에게로 다시 옮겼다.



“이 그림, 전시에 걸었던 적 한 번도 없었잖아.”

“응, 집에서 매일 보는 얼굴, 일 하는 데에서까지 보기 싫어서.”

“그린 지도 꽤 된 거 아니야?”

“대학 때 그린 거니까 몇 년 됐지. 몰라, 장팀장이 집에 왔다가 저거 보곤 메인은 무조건 저거라고 하도 우겨대서 어쩔 수 없었어.”



우현은 말없이 몸을 돌려 그림을 바라보고 섰다. 캔버스 위 선이 마무리 된 부분 아래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1408. 5년 전의 8월. 성종의 작품 철학이 뚜렷해지기 이전의 그림이었다. 그래서 갤러리에 걸린 다른 그림들에 비해 좀 더 섬세하고, 말마따나 성의 있는 그림이었다.


성종은 여전히 그게 맘에 들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딱 봐도 지금 내 그림이랑 다르잖아. 누군진 몰라도 저런 얼굴을 대문에 걸어놔야 장사가 잘 된다나 뭐라나. 옛말에 얼굴 뜯어 먹고 사는 거 아니랬는데, 내가 저 새끼 얼굴 뜯어 먹고 사는 꼴 됐다. 하여튼 재수 없어. 볼멘소리를 가만 듣고 있던 우현은 시선을 들어 그림 속 남자의 손목을 보았다. 다른 그림들과의 분명한 차이점이 또 있다. 날짜 옆에 있어야 할 성종의 싸인이 이 그림에는 그림 속 남자의 손목에 있다.



“그래도 네가 아끼는 그림이기도 하잖아.”

“그땐 그랬지.”



돌아본 곳엔 성종이 양 어깨와 눈썹을 동시에 들어 보이며 서 있었다.



“그만 가자. 비 오기 전에 집에 갈래.”



우현은 얌전히 성종의 뒤를 따랐다. 성종은 주말이라 쉬고 싶었을 텐데 그림 봐주러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걸음을 서둘러 가버렸다. 우현은 멀어지는 성종의 등을 한참 바라보다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픈 날 퇴근하고 오라며 손을 흔들던 조금 전 성종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폼이 넓어 살짝 흘러내린 소매 위로 그러났던 그의 손목을. 그곳에는 까만 타투가 있었다. 그림 속 남자의 손목에는 성종의 싸인인 ‘서ng조ng’이 있었다면, 성종의 손목에는 ‘L.Kim’이라는 싸인이 새겨져 있었다. 그 그림 속 남자의 싸인이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현은 걸음을 재촉했다. 이성종, 우산은 있으려나. 버스 타기 싫을 텐데.




*




비가 오기 전에 집에 들어가려고 우현에게 인사도 성의 없게 건네고 도망치듯 서둘렀는데 결국 비를 쫄딱 맞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현이 저녁밥이라도 사주고 올 것을. 제 그림 봐달라고 불러놓고 정말 그림만 보여주고 보내버린 게 뒤늦게 서야 미안해진 성종이다.


초가을이라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덕에 몇 장 걸치지 않은 젖은 옷을 대충 벗어 현관 바닥에 팽개쳤다. 담배를 어디에 뒀더라. 비에 젖어 무거워진 검은 색 에코백 안을 뒤지니 폭삭 젖은 담뱃갑이 손에 잡혔다. 반도 안 피웠는데. 입술 새로 짧은 욕지기가 새나왔다. 무슨 놈의 비가 가방도 젖고, 가방 안의 담뱃갑도 젖고, 담뱃갑 안의 담배까지 젖을 정도로 내리고 지랄이야. 담뱃갑을 거실 가운데에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졌다.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거실을 지나쳐 침실로 들어섰다. 침대 옆 탁상 위에 동거인의 담배가 보였다. 젖은 손을 브리프에 슥슥 문질렀다. 다행인지 속옷까지 젖지는 않아서 손의 물기를 닦아낼 수 있었다.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을 들이 마신 후 숨을 뱉으니 뿌연 연기가 눈 앞으로 일렁였다.



“아, 남자새끼가 무슨 과일 맛 나는 담배를 피워.”

“남의 담배 피는 주제에 불만이 많다.”



다정하지도 날카롭거나 쌀쌀맞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돌아본 곳엔 동거인 김명수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있었다. 바지 밑단과 양말만 젖은 꼴을 보아하니 우산을 들고 나간 모양이었다. 성종의 얼굴에는 이마에서부터 빗물이 미간과 눈 사이를 가로질러 왼쪽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초능력 생겼어? 소리도 없이 문 따고 들어오는?”

“현관문도 안 닫고 빨가벗고 그러고 있는 넌 무슨 초능력이냐? 옷은 왜 죄다 여기다 벗어 놓고.”



명수가 한숨을 쉬며 젖은 발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성종은 그가 양말을 벗어 빨래 바구니에 넣고, 현관 앞에 어질러져 있는 제 옷가지까지 주워 바구니에 담는 양을 지켜보았다. 담배를 몇 모금 연달아 피웠다.



“비가 엿같이 와. 우현이가 그림 보러 와줬는데 비 때문에 커피 한 잔 먹이고 그냥 보냈어.”

“걔도 지극정성이다. 네 그림 뭐 볼 거 있다고.”

“너한텐 봐달라고 할 생각도 없으니까 좀 닥쳐. 재수 없는 새끼.”

“넌 나이 먹고 입만 더러워졌어.”

“너 같은 새끼랑 살아서 그래. 담배도 드럽게 맛없는 거 피는 너 같은 새끼랑.”



상대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성종의 입술 새로 담배 연기가 비집고 나왔다. 셔츠 단추를 끌르는 명수의 등 뒤로 다가가 그의 양 팔에 제 팔을 끼워 넣고 가슴팍을 둘러 안았다. 명수가 성종의 손에 들려있던 담배를 빼앗았다. 얼마 남지 않은 그것의 필터를 엄지와 검지로 잡아 그 끝을 제 입술 사이로 가져가는 그 손가락을, 성종은 그의 어깨에 고개를 괸 채 바라보았다.



“여자 생겼어?”

“나 어젯밤에도 너랑 섹스 했어.”

“셔츠에서 여자 향수 냄새 나.”

“……”

“두 달 전부터.”



명수는 말이 없었다. 성종은 그의 셔츠 깃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익숙한 향이었다. 대학 때 명수를 따라다니던 풋내 나는 여자 애들에게서 나던 그런 꽃 향 같은 것. 기분이 나빴다. 비 때문인가.



“김명수 개새끼야.”



입을 크게 벌려 명수의 허연 목덜미를 콱 깨물었다.




*




바빠 죽겠는데 오라 가라야, 재수 없는 새끼가. 왼 팔에 안고 있는 서류 뭉치가 묵직했다. 오늘 컨펌 받아야 하는 작품들 기획안을 집에 놓고 왔다며 점심시간 맞춰 가져와 달라는 명수의 전화에 성종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실 바쁜 일은 없었다. 오늘부터 시작인 자신의 전시회에는 저녁 때 들러 장팀장에게 얼굴만 비출 예정이었고, 그 외에 딱히 할 일이라곤 없었다. 오늘 우현이 갤러리에 다시 들러준다면 그에게 저녁이나 살까 하던 중이라, 해가 질 때까지는 집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없었다.


미술관 문을 밀어 들어서니 오른 편에 위치한 안내 데스크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반겨준다. 이 여잔가. 성종은 무표정의 얼굴로 그녀 앞에 다가섰다. 거의 노려보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성종에 여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관람 안내가 필요한지를 묻는다.



“김명수씨 만나러 왔는데요.”

“어떤 용무로 찾으시는지,”

“병신새끼가 기획안을 집에 두고 가서요. 오늘 날씨가 더워서 기분이 안 좋으니까 빨리 튀어오라고 전해주세요.”

“아… 네.”



여자는 친절에 대한 사명감이 가득한 얼굴로 대답하며 불편한 웃음소리까지 내보였다. 성종은 데스크에 삐딱하게 기대어 섰다. 여자가 잠시 ‘staff only’라고 팻말이 붙여진 데스크 뒤편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금세 돌아왔다. 들어갔다 나오는 데에 걸린 시간으로 보아 제 말을 그대로 전하진 않은 것 같다고 성종은 생각했다.


그리고 곧 그 문이 다시 한 번 열리고 명수가 걸어 나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입고 있는 저 빌어먹을 흰 셔츠는 디자인이 살짝 씩 다른 것들로 옷장 안에 몇 장이나 걸려있는지. 빌어먹을 그 향수 냄새가 이 여자에게서는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왔어?”

“어. 이제 간다.”



두툼한 서류 뭉치를 명수의 품으로 떠밀듯이 안겨준 성종은 망설임도 없이 바로 뒤를 휙 돌아버렸다.



“점심 같이 먹고 가지.”

“너랑 먹느니 장팀장이랑 오프닝 파티 하는 게 낫겠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술관의 정문으로 걸어가 버리는 성종의 뒤통수를 잠깐 바라보던 명수도 이내 다시 staff only의 방으로 들어간다.


비가 왔던 날, 성종은 제 옆에 누운 명수를 발로 차고 온 몸으로 밀어내 침대 아래로 떨어트렸다. 바닥에 떨어져 인상을 구긴 채 자신을 바라보는 명수에게 베개를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꺼져, 더러운 새끼야! 두 달이나 참았어! 향수 냄새 역겨워서 너랑 못 자겠어. 바닥에 주저앉아 앞머리를 쓸어 넘기던 명수는 제 옆에 나뒹구는 베개 두개를 집어 들어 하나는 성종에게 돌려주고 제 것인 다른 하나를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개새끼. 뭐가 예쁘다고 심부름까지 해다 줘.”



미술관을 나서자마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저기요. 웬 남자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누군가 본인에게 말을 걸 거라는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라이터를 꺼내 동그랗게 감싸 담배 끝을 가린 왼손바닥 안으로 불을 켰다. 한 숨 들이켜고 뱉어내는데 좀 전의 그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또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누구세요.”



미술관에서 나올 때 스쳐 지나온, 정문 앞에 서있던 남자였다. 찢어진 눈꼬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이 날카로운 것 치고 나쁜 인상은 아니었다. 보기 좋게 벌어진 어깨와 가슴팍 위에는 연분홍의 캐주얼한 셔츠가 입혀져 있었다. 30대 초중반은 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사람에게선 그마다 풍기는 느낌이 있기 마련이다.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혹은 옆 학교 촬영과에서 혹은 학교 모델을 선정할 때 받았던 모델 제안을 다 거절하고, 군에서 지낸 2년 정도 외의 시간은 학업에만 매달려 석사까지 따낸 얼굴값 못하는 강의실, 독서실 붙박이었던 김명수에겐 그런 느낌이 있었다. 사람, 관심 없어요. 여자, 관심 없어요. 술, 클럽, 관심 없어요. 그런 느낌.


그렇다면 이 사람은. 김성규라고 합니다. 악수를 청하며 건네진 남자의 오른 손을 물끄럼 내려다보았다. 저 눈은 어딘지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 같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에 처음 듣는 이름임이 확실한데, 왜인지 이 사람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고작 나보다 몇 년 더 살았을 뿐인데 이상하게 그 몇 년 터울이 확 느껴지던, 신입생 때 보던 대학 선배들에게서 느꼈던 느낌. 성종은 남자의 손을 잡았다.



“네, 뭐. 이성종인데요. 혹시, 제 그림 보셨어요?”




*




“생각해보니까 이번 팜플렛에는 제 사진도 안 넣었는데, 제 전시회 보고 저를 알아봤을 거라고 생각한 게 좀 웃기기도 하고.”



성규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성종과 갤러리 밖으로 나란히 걸어나왔다. 표정이 많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았다. 말투는 굉장히 나른했다. 말 하는 게 귀찮은 것 같은 말투와 목소리인데, 그렇다고 그의 단어나 문장들이 대화 자체를 귀찮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성규가 유심히 바라보았던 작품들에 대해서는 묻지 않아도 먼저 설명을 해 준 성종이었으니까.


모르는 사람이 별 목적 없이 말을 걸면 경계부터 하고, 이상하게 받아들일 법도 한데, 이 이성종이란 사람은 첫 느낌부터가 달랐다. 꾹 다물린 입은 덜 구부러진 뒤집힌 알파벳 U의 모양을 하고 있었고, 조금 멍텅해 보이는 두 눈은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보던 것과 비슷했다. 눈이 상당히 큰데 그 큰 눈을 또렷이 다 뜨지 않아서 그래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웃긴 건 자신을 돌아보던 그 얼굴이 남자치고 꽤 예쁘게 생겼다는 것과 그 얼굴로 뱉는 나른하고 조금은 무기력한 목소리와 말투가 찰떡같이 잘 어울린다는 점이었다. 묘한 분위기를 가진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제 그림 보셨어요?’라는 물음에 당황하기도 잠시. 그림이요? 되물으니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살짝 까딱거리곤 앞장 서 가버리는 이 이상한 남자를 따라와 버린 성규였다.



“저는 그림 그리는 게 일이거든요. 근데 뭐 화가 이런 건 아니고. 그냥 먹고 살려고 그림 그려다 전시 하고, 누가 산다 하면 팔기도 해요. 오늘이 3년 만에 하는 제 개인전 첫 날이거든요. 그림 좋아하세요? 전시회나 미술관 자주 다니시나. 그럼 안 되는데. 좋은 작품 너무 많이 보신 후에 제 그림 보면 그림 같지도 않은 거 팔아서 날로 먹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근데 저도 나름대로 공들여서 그린 거거든요. 작가들도 각자 작품 세계와 철학이 있단 말이에요? 당연히 저도 제 나름대로 저만의 것을 만들어 내느라 노력 했고요. 근데 그걸 사람들은 몰라주거든요. 아참, 오늘 저는 저녁에 가서 얼굴만 비추고 올 생각이었는데. 성함이, 김성규씨였나? 덕분에 제 전시회에 제가 일찍 출근하게 됐네요, 그것도 첫 날부터. 아마 장팀장이 지금 내 얼굴 보면 놀라 자빠질 지도 몰라요. 이번 제 작품들 다 팔릴 기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호들갑 떨 수도 있어요.”



성규는, 걷는 동안 단 한 번을 자신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경우도 없이 제 할 말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성종의 옆모습을 힐끔거리며 그가 가는대로 따라 걸었다. 혼자 쉬지 않고 떠들어대던 그는 그들이 처음 만났던 미술관에서 많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조그만 갤러리에 도착해서야 성규를 돌아보았다. 이 이성종이란 남자는 내가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알고 이 긴 얘기를 계속해 온 걸까, 라는 의문이 성규의 뇌리를 스쳤다.


과연 갤러리에 입장하니 장팀장으로 추측 되는 인물이 등장하여 세상에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진하고 강한 인상인데 사람 자체는 소년 같은 느낌이었다.



“이 쪽은, 우리 이선생님 지인이신가 보네요. 장동우라고 합니다.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예. 김성규 입니다.”

“천천히 둘러보시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



자신에게 인사를 건넨 후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우와 성종에게서 거리를 두고, 성규는 갤러리에 들어오자마자 보였던 작품 앞에 섰다. 인물화이지만 인물을 자세하게 그리진 않은 그림. 그렇지만 그림 속 눈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미술관에서 성종과 대화하던 그 남자. 상당히 잘생긴 얼굴이라 인상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짙고 검은 머리칼 아래로 새카맣던 눈동자. 옅은 쌍커풀과 크지는 않았던 눈. 저 눈은 분명했다.



“저 새끼 얼굴로 입장료 팔아먹으려고 문 앞에 걸어놓은 거예요. 제가 그렸다고 말하기도 싫으니까 유심히 안 보셔도 돼요, 이건.”

“누군데요?”

“글쎄요.”



옆에 다가온 성종이 늘어지는 목소리로 그림에 대한 제 나름의 설명을 들려주었다. 누구냐는 물음에 잠시 그림 속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성종은 오른 팔을 들어 검지손가락으로 그림 속 남자의 오른 손목을 가리켰다.



“한 때는 이성종이었던 사람인가.”



성종이 들릴 듯 말 듯 작게 말했다. 다시 있던 자리로 떨어지는 그의 오른 손목에는 그림 속 문구인 ‘서ng조ng’ 대신 다른 것이 보였다.


갤러리에서 나와 마주 선 두 사람 사이로 더운 바람이 훅 끼쳤다. 9월 말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여름으로 며칠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림 봐주셔서 고마워요.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아!”



급하게 뒷주머니에 꽂아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여전히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성종은 그것을 받아들었다.



“의사 선생님이셨네.”

“오늘 작품 잘 봤습니다. 또 봬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후 성종에게서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들어와서 작품 주인 노릇 좀 하라는 동우의 목소리와 싫다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성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군복무를 마치고 스물 셋에 2학년으로 복학 했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2학년 1학기 선택 과목 중 현대미술사란 수업에서였다.


강의 시작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탓에 강의실 뒷문으로 슬금슬금 들어와 맨 뒷자리에 조용히 착석했다. 저 앞에 자신을 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우현에게 인사 대신 코를 찡긋거려 보였다.


한 시간 내내 졸다가 의자 여러 개가 바닥을 끌며 드르륵 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담배를 한 대 피워야겠어서 가방을 뒤적거렸지만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학기가 반 이상 지났지만 우현 외에 잘 아는 사람도 없었고, 복학생인지라 강의실 안 대부분은 후배들이었다. 담배를 구걸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우현을 힐긋 보니 몇몇 후배 애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어차피 우현은 흡연자도 아니었다.


쉬는 시간 내로 편의점에 다녀올 자신이 없어 포기하려던 찰나, 옆자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헐레벌떡 들어와 바로 졸기 시작해서 모르고 있었는데, 그곳엔 낯선 얼굴의 남자가 있었다. 휴대폰과 담뱃갑만 챙겨 일어나는 폼이 누가 봐도 담배를 피우러 가는 폼이었다.



“저기.”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는 남자의 얼굴을 성종은 잠시 빤히 쳐다보았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떨쳐내고 싶어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떴다. 남자는 그대로 성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담배 한 대만요.”



검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최대한 불쌍해 보이게 그리고 사람 좋아 보이게 웃었다. 남자는 대답 없이 개비 하나를 꺼내 성종에게 내밀었다.



“저기.”



책상과 의자에서 벗어나려는 남자를 다시 불러 세우자 미간을 아주 약간 찡그린 얼굴로 돌아본다. 또 뭐요, 라고 말할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굳게 다물린 입술은 이번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라이터도,”

“같이 가던가요.”



남자를 따라 건물 뒤 흡연구역으로 나왔다. 꽤 많은 수의 흡연자들이 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뿌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벤치에 남자와 나란히 앉았다. 그늘을 벗어난 탓에 초여름의 햇빛이 두 사람의 머리통을 뜨겁게 때렸다. 담배를 입에 물자 라이터를 든 남자의 손이 다가와 불을 켜주었다.



“담배 이상하게 잡네요.”



남자는 말 없이 연기를 후우 뿜었다. 성종의 손가락에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가 꽂혀 있었지만, 남자는 엄지와 검지로 담배를 잡고 있었다. 성종은 그렇게 담배를 잡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회화과예요?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예술학과요.”

“아아. 현대미술사 왜 들어요? 재미도 드럽게 없는데.”

“그림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 좀 껴있어 보려고요.”

“그래서, 그림쟁이들이랑 앉아있어 보니까 어때요?”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성종을 돌아보며 입술 끝만 열어 왼쪽으로 연기를 뱉었다.



“몇 살이에요?”

“스물 셋이요.”

“이름은?”

“이성종.”

“친구 할까?”



성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구, 뭔가 낯선 단어였다. 저 무감해 보이는 얼굴에서 나온 단어 치곤 굉장히 다정한 말이었다. 친구가 뭐였더라. 성종은 문득 우현을 떠올렸다.


고등학생 때 남자인 자신이 여자가 아닌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성종은 사람에게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당시 좋아했던 남자 애에게 고백했으나, 그가 성종을 무참히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이 싫었고, 자신의 그런 정체성에 대해서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싫었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 1년생이 되어 우현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뜻밖에 먼저 고백을 받은 성종이었다. 남자로서 남자에게 들은 첫 고백. 살면서 처음 가져본 느낌이었다. 불쾌하지도 않았지만 기쁘지도 않았다. 그때 우현은 그냥 웃어버렸다. 다음 날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친구’가 되어 가깝게 지냈다. 그렇지만 성종은 알고 있었다, 우현이 지금까지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우현을 추억하던 성종은 입을 열었다.



“나 게이야.”

“그런데?”



주위에서 저들끼리 떠들던 타인들이 건물 안으로 속속 사라졌다. 두 사람을 맴도는 공기가 조용해졌고 성종은 담배를 뻐끔뻐끔 피웠다. 남자가 제 휴대폰 잠금을 풀어 내밀어왔다. 성종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전화번호 열 한 자리를 입력해 돌려주었다. 잠시 후 성종의 전화기에 진동과 함께 문자가 왔다. 낯선 번호로 온 메시지에는 ‘김명수’라고 쓰여 있었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




 

 

 

 

 

 

 

 

 

 

 

 

 

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