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of Songs




김명수 김성규 남우현

이성종




송오브송즈 6




허망한 표정을 짓다 뒷모습만 보이고 출근을 해버린 명수를 보내고 성종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울음이 진정이 되지를 않아 울고 싶지 않아도 울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좀 그쳤을 즈음엔 부족한 잠을 더 자보겠다고 소파 위에 다시 몸을 길게 눕혔지만 쉽게 잠 들 수도 없었다. 그렇게 가버린 명수에 대한 걱정도 아니었고, 지난밤을 함께 보냈던 우현에 대한 생각 때문도 아니었다. 끔찍했던 그 꿈을 다시 꿀까봐 두려웠다. 꿈이었는데도 너무 생생한 그 느낌은 명수가 몸을 흔들어 깨웠던 그 순간에도, 마치 명수가 제 어깨를 잡고 있는 게 아니라 목을 조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난 며칠 동안 작업했던 일러스트를 오늘은 출판사에 넘겨야만 했다. 다행히 평온히 잠에서 깬 성종은 몸을 씻고 대충 옷을 찾아 입었다. 작업을 마무리한 그림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버스에 몸을 싣고 나서야 안중에도 없던 휴대전화를 꺼내보았다. 딱 한 통 뿐인 새벽에 온 새 메시지는 우현의 것이었다.



- 나 집에 잘 왔어. 푹 쉬어.



시간을 보니 답장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벌써 오후 4시였다.


출판사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노래를 좀 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잘 이용하지 않아 늘 가지고 다니는 얇은 가방 바닥에 나뒹굴던 흰 이어폰을 꺼냈다. 음악을 듣는 어플리케이션을 명수와 공유하는 탓에, 재생 목록에는 그가 만들어 둔 플레이리스트가 몇 있었다. 이어폰은 꽂았으나 듣고 싶은 노래는 없어, 그 목록 중 첫 번째 목록을 재생시켰다. 데미안 라이스의 우울한 노래들이 여러 곡 이어졌다. 음악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엔 왠지 후련했다. 출판사에 계약한 그림을 제출하고 나니 해야 할 모든 일을 마친 것만 같았다.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퇴근을 한 김명수가 거실에 앉아있었다. TV를 키지도 않았고,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성종은 가벼운 가방과 걸치고 나갔던 얇은 외투를 식탁 의자에 걸어놓으며 태연하게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명수야, 저녁 먹었어?”

“아니.”

“저녁 대충 같이 먹자.”

“생각 없어.”



냉장고 문을 열고 반찬을 몇 가지 꺼내던 성종은 문 옆으로 고개를 내밀고 명수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성종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래, 그럼. 성종은 짧은 대답을 남기고 명수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뒀다. 움직이던 손을 마저 움직였다. 국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마 전기밥솥 안엔 40시간이 넘도록 보온 중인 밥이 있기는 있어, 성종은 그것을 밥그릇에 퍼 담고 식탁에 앉았다.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잘 이용하지 않는 그는 젓가락만 조그맣게 움직이며, 밥도 조금 반찬도 조금씩을 느릿느릿 먹었다.


성종은 명수가 화를 내지 않는 게 의아했다. 오늘 아침 그에게 보여 버리고 말았던 제 가슴팍에 적나라하게 새겨져 있던 그것들은 너무 뻔히 우현과의 정사가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을 하며 앉아있는 걸까, 김명수는. 전원을 켜지도 않은 저 새카만 TV 화면을 왜 쳐다보고 있는 걸까, 김명수는.


그 때 그 의문스러운 몸이 움직였다. 성종은 밥을 먹는 것보다 더욱 집중하고 있던 명수에게서 황급히 시선을 떼고 눈을 내리깔았다. 오래 되어 색이 누렇게 변하기 직전의 쌀밥이 눈 안 가득 들어왔다. 명수가 맞은 편 의자를 드르륵 소리가 나게 빼내어 앉았다. 성종은 씹고 있던 밥알들을 꿀꺽 삼켰다.



“그 약,”

“……”

“그만 피워, 성종아.”



젓가락질을 하던 손가락을 다시 움직였다. 마트에서 사온 장조림과 깻잎 장아찌 따위를 집어 밥그릇에 올렸다. 다른 손은 밥그릇을 들고 있었다.



“약, 나 줘. 버려줄게.”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까만 가루 있잖아.”



성종은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고 느꼈다. 저녁 생각이 없다고 답하던 아까 그 목소리와 느낌이 달랐다. 그의 눈을 마주쳐버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단 한 번 들어 올리지도 못하고, 그 눈은 식탁 위의 몇 개 없는 반찬들만 향하고 있었다.



“그거 버려, 성종아. 그만 피워.”

“네가 그게 뭔 줄 알고 버리라 말라, 피우라 말라야.”



성종은 결국 들고 있던 밥그릇과 젓가락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둔탁한 마찰음들이 적막한 공기를 울렸다. 그제 서야 고개를 들어 쳐다본 곳에는 핼쑥한 얼굴이 있었다. 핏기가 없고 파리한 얼굴이었다.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던 네 얼굴은 어느새 이렇게 야위어 버린 걸까. 그간 너에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내가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너는 그렇게 마른 볼을 갖게 된 걸까. 간신히 초점을 잡고 있는 것 같은 너의 그 눈. 힘이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보이는 표정. 우린 또 싸우게 되는 걸까. 내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말하면 넌 어떤 말을 할까. 그 병이 너 때문에 생긴 것이라 말하면 넌 어떤 반응일까. 명수야, 요새 우리는 매일이 다툼이고 매일이 요란스러웠는데 그건 모두 나 때문이었니. 내가 무언가를 잘못 했던 걸까. 그렇다면 어디서부터였을까. 네 마음이 방황하는 걸 내가 못 잡아 주어서, 다 알면서도 너를 방치해서 그랬던 거니. 그게 아니라면,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었니.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말 하는데, 수상했던 그 시간들은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 너는 누구니, 명수야. 내가 알던 김명수가 맞니.



겨우 마주 봤는데, 마침내 마주 본 그 얼굴이 형편없는 꼴을 하고 있어서 속이 상했다.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있지도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돋우려 했던 입맛마저 사라졌다. 성종은 반찬의 뚜껑을 닫았다. 도로 냉장고 안에 넣어두려고 앉았던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김성규. 그 사람, 그만 만나.”



냉장고 문을 열고 반찬을 집어넣던 성종은, 익숙한 목소리가 내뱉은 낯설지 않은 이름 때문에 놀라 순간 흠칫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모른 척. 냉장고 문을 닫고 돌아와 식탁에 남겨져있던 밥그릇과 젓가락을 손에 들었다. 명수에게서 등을 돌리는 그 순간에 그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 약인지 뭔지, 김성규가 준 거 맞잖아.”



성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게 맞는 거였다. 그저 짧고 머리 아픈 의문이 몇 가지 들 뿐이었다. 약에 대해서도, 김성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했다. 왜 그 약을 복용하지 말라는 건지, 왜 그 김성규라는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것에 대한 이유도 궁금했다. 전후 설명도 없이 무작정 제 할 말만 뱉어내는 명수의 대화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것들을 먼저 물어볼 마음 따위는 들지 않았다.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라고 말하던 어른들의 잔소리를 듣고 있는 사춘기 소년이 된 기분도 들었다.


들고 온 식기도구를 싱크대 안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설거지 같은 건 애초에 할 생각도 없었다.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명수가 보였지만 본 체 만 체 하고 지나쳤다. 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오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욕실에서 나왔을 때에도 명수는 식탁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여전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채로였다. 성종은 끝이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다 그의 앞에 다시 가 앉았다. 어리석은 제 연인을 심연으로부터 구해주고 싶었으나,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다.



“뭐가 무섭니, 명수야.”



성종은 제 목소리가 꼭 목숨을 받으러 온 저승사자 같다고 생각했다. 죽는 게 무섭니, 라고 물어야 할 것 같은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그건 자신을 향한 물음이기도 했다. 나는 무서웠는데. 아니, 너를 만난 이후로 행복했던 시간들 속의 나는 죽는다는 걸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성종의 물음에도 명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한참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눈은 성종을 다시 바라보았는데, 금세 그 고개는 다시 아래를 향해 꺾였다. 그리고 굳게 다물렸던 입이 열렸다.



“그 사람 믿지 마. 그 약도 믿지 말고.”

“……”

“제발… 성종아, 제발.”

“……”

“네가, 네가… 사라질까봐 무서워.”



성종은 들썩이는 명수의 어깨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흐느끼는 목소리가 안타까워서 덩달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번 가을엔, 사랑하는 사람의 우는 모습만 보아도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걸 여러 번 깨달았다. 사랑? 사랑이라니. 이번 가을엔 삼십 년 가까이를 살아오며 특별히 고민 해본 적도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따지고 들었던 일도 있었는데. 그런데 사랑이라니. 성종은 알았다, 자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냥 김명수가 되어 왔었다는 것을. 그리고 ‘김명수’는 당연한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거기 있었다는 것을.



“그럼 너는 믿어도 되는 거야? 나는 네가 나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무서운 걸.”



뱉은 말들이 미안했다. 명수가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그 말을 하려 할 때마다 그걸 막아버렸던 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건 여전히 듣고 싶지가 않았다. 그걸 듣는 순간에야말로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았다, 이 사랑이 다 끝나버릴 것 같았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큰 소리를 내어 울어버리는 명수를 지나쳐 침실로 들어갔다. 잠이 오기는 할까 싶은 밤이었다.




*




해가 뜰 때까지도 명수는 침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창 너머에서 들어오는 빛에 눈을 뜬 성종은, 차가운 제 옆자리를 더듬어 보다가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눕지도 못하고 다리를 감싸 안아 웅크려 앉은 채로, 모은 팔 안에 얼굴을 묻고 잠든 명수가 보였다. 성종은 그 옆에 다가가 앉아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잠에서 깼는지 팔을 풀어낸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 봐봐. 몸 돌려서. 다리 올리고.”



성종은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의 말대로 명수는 양 다리를 소파 위로 올리고 돌아앉아 성종을 보았다. 성종은 고개를 기울여 반쯤 숙여진 그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밤 새 울었는지 부은 눈이 형편없었다. 명수의 양 다리를 억지로 벌렸다. 힘없이 늘어져있던 두 다리는 저항 없이 성종의 손이 하는 대로 따랐다. 성종은 그의 두 다리를 뻗게 해 제 몸을 둥글게 감싸게 했다. 그리고 제 다리도 양쪽으로 벌리고, 명수의 양 허벅지 위로 하나씩 올렸다. 힘을 조금 주어 다리로 명수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몸이 가까이 닿으니 명수는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고 성종에게 그대로 다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성종은 그의 얼굴을 양 손에 가득 담아 보았다. 왜 그렇게 울었니, 불쌍한 영혼아. 반짝반짝 빛나는 내 사랑아.


“명수야, 잘 들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명수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내 고백이야.”

“……”

“난 네가 어떤 사람이었더라도 사랑했을 거야. 6년 전 그 때로 다시 돌아가 너를 또 만나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거야. 분명해, 확신해. 너의 그 고상한 독서 취향, 괴상한 영화 취향, 지루한 음악 취향을 다 아는 지금의 나일지라도 6년 전의 너를 사랑했을 거야. 큐레이터 하겠다고, 대학원까지 공부하겠다고, 그래서 너 공부하는 동안 멀리 계신 네 부모님 대신 내가 뒷바라지 했어야 했던 거, 다 알고 다 겪은 지금의 나 역시도 6년 전의 너를 사랑했을 거야.”

“……”

“그리고, 사랑해. 네가 어떤 사람이더라도 사랑해. 네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사랑해. 네가 나한테 질려서, 지쳐서, 어떤 이유가 됐든 간에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해. 네가 인생 최대의 실수를 했다고 해도, 하물며 네가 살인을 했다고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해. 네가 나를 떠나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대도 사랑해, 명수야.”

“…성종아.”

“혹시나 내가 너를 떠나게 되더라도, 그건 절대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닐 거야.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네가 지금 나를 죽인다고 해도, 난 죽어서도 그리고 다시 태어나서도 널 사랑할 거야. 사랑해, 명수야.”



명수가 서럽게 흐느껴 울었다. 성종은 그의 작은 머리통을 끌어당겼다. 성종의 마른 어깨에 파묻은 명수의 얼굴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성종은 그 들썩이는 어깨를 도닥였다.


6년 동안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랑’한다는 말을 오늘은 몇 번이나 했는지 몰랐다. 그를 괴롭게 하는 그 정체를 알 수는 없었으나, 오늘 자신이 건넨 고백들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명수야, 우리는 이 사랑을 떠나가지 않을 수 있을까?




*




오전 내도록 명수와 그렇게 끌어안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지만 울음소리, 숨소리, 심장이 뛰는 소리 따위로 소통을 했다. 명수는 울다가 그치고 울다가 그치기를 몇 번 반복했다. 성종은, 나중엔 힘에 부쳐 우는 것도 버거워 하는 명수를 대신해 울어주기도 했다. 둘 사이의 균열은 성종의 전화벨이 울리면서였다. 어기적거리며 몸을 일으킨 성종은 ‘우현’이라는 이름이 떠오른 제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았다.


우. 현. 처음 그 이름을 알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성종은 그 이름이 끔찍하게 예쁘다고 생각해왔다. 동그랗고 부드러운 글자들의 모양도, 날카로울 게 없는 발음도, 하나 같이 예쁘지 않은 게 없었다. 게다가 유치하지도 촌스럽지도 않은 그 이름. 남의 이름을 소유할 수 있는 권한 같은 게 있다면 가장 먼저 갖고 싶은 이름이었다.


씻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내려와 본 아파트 앞에는 우현이 있었다. 지금껏 우현은 단 한 번도 ‘너희 집 앞이니까 지금 나와’ 같은 연락을 해 온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성종은 갑작스런 우현의 방문이 낯설었다. 우느라 모든 기력을 다 소진한 것 같은 명수를 집에 그대로 두고 온 게 신경이 쓰였다. 찾아온 사람이 우현이 아니었다면 성종은 오늘 하루 종일 집 밖으로 얼씬도 않고 명수의 곁을 지켰을 거였다. 그렇지만 우현이었다. 그 연인의 흉흉했던 하루를 방해하러 온 사람은 다름 아닌 우현이었다. 성종은 우현의 까닭을 알고 싶었다. 별다른 인사도 없이 근처 벤치로 향하는 성종의 발에 가을바람이 채였다.



“성종아, 울었니?”



글쎄. 울었던 건 나였을까, 김명수였을까. 어젯밤부터 조금 전까지 울음소리와 눈물로 가득하던 그 집에서, 과연 울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성종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괜히 슬며시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아니야. 남우현이라면 언제든 괜찮아.”



성종은 빈 말인 듯 빈 말 아닌 그 말이 괜히 미안해져서 혼자 머쓱해했다. 그리고 평소라면 재밌는 농담을 들은 사람처럼 웃어보였을 우현이 전혀 그러질 않아 의아했다. 우현의 표정은 뭔가 아주 대단한 결심을 한 사람처럼, 아주 중요한 할 말을 앞둔 사람처럼, 어쩌면 비장하게도 보였다. 우현답지 않은 얼굴이었다.



“네가 그랬었잖아. 미술학원 그만 두면 안 되냐고.”

“응, 그랬지. 설마 학원 그만 둘 거야?”

“나 유학 가려고, 성종아.”

“…뭐?”



멍청하게 되물었다. 똑똑히 들었으면서, 무슨 말인지 이해했으면서, 괜히. 어떤 말을 꺼낼지 몰라 괜히 무섭기도 했던 우현의 얼굴은 금세 풀어졌다. 엷게 미소를 짓는 우현의 얼굴이 반가워서 성종은 그저 멀뚱히 바라만 보았다.



“너도 알잖아, 나 졸업 하면서도 졸업하기 싫어했던 거. 그런데 공부를 더 하는 건 또 싫어서 그냥 취업했던 거.”

“……”

“다시 해보려고.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근데 무슨… 유학이야. 어, 어디로 가는데? …확실히 정한 거야, 너?”



느리게 짧은 문장들을 내뱉으며 성종은 말을 조금 더듬기도 했다. 잘 이해 못 하겠어, 잘 받아들이지 못 하겠어, 라는 분명한 의미가 담긴 표현이었다.



“응, 프랑스 갈 거야. 빠르면 올 겨울, 늦어도 내년 봄에는 갈 것 같아.”

“…프랑스?”

“내 졸업 작품.”

“……”

“그 때 학과장 교수님이 해외 갤러리 중에 내 작품 컨셉에 맞는 컬렉션이 몇 군데 있다고 그 쪽에 내 그림 보여줬었거든. 근데 그 그림은 내가 그냥 갖고 있고 싶어서 연락 와도 싫다고 했어. 교수님은 계속 공부를 더 할 생각이 없냐고 그러시더라. 그러다가… 작년에 또 연락을 받았거든. 교수님 소개로 어떻게, 좋은 기회가 돼서 가기로 결정 했어.”



성종은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성종 자신 역시 한참을 그 앞에서 넋을 놓았던 그 그림. 성종 자신이 사랑하는 바다와 꿈에 그리던 사막이 한 데 어우러져 신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던 우현의 그 그림.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라면, 죽기 전 유일한 소망은 그 그림 속에 꼭 가보는 것이었다. 세상에 둘도 없을, 모두가 극찬했던 훌륭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어린 나이에 그런 그림을 그려냈던 우현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싶은 수재라며 교수님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었다. 성종 역시 생각했었다, 미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그쳐 제 그림은 그리지도 않게 되는 건 신이 주신 달란트에 대한 능욕이라고, 그러기엔 너무 아까운 실력이라고. 그런데, 곧 떠날 거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있는 자신은 왜 뭐에 머리를 얻어맞기라도 한 것 같은지 알 수 없었다.



“나 때문이네.”

“응?”

“그 그림, 나 때문에 그린 거 맞잖아.”

“그래, 인정할게. 맞아.”

“그럼 지금 너 나 때문에 떠나는 거잖아. 나 때문에 그린 그 그림 때문에 가는 거잖아.”

“……”

“그 때 그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물감을 퍼 붓든, 불로 태워 버리든 했어야 했어. 그럼 네가 이렇게 떠날 일도 없을 텐데.”

“성종아.”



처음에 우현은 그 말의 의미가, 귀엽게 자기애를 표현하는 이미 익숙한 그 나르시시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두 문장을 말하는 성종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고, 진심으로 스스로를 탓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때 그 그림을 내가 없애 버렸다면! 아니, 네가 그 그림을 그리는 걸 막았더라면! 아니, 네가 그런 그림을 떠올릴 수도 없게 내가 네 앞에 나타나지 않았었다면!



“이런 말 좀 웃긴 거 아는데,”

“……”

“나한텐 김명수가 있고, 너는 날 여전히 좋아하는 걸 알아서 이런 말 어이없을 거 같은데. 그런데 나 너 없으면 왠지 안 될 것 같아, 힘들 것 같아.

“같이, 갈래?”

 

 

성종은 작게 몸을 떨었다. 바닥만 보고 있던 시선을 들어 우현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뭐라고 했니, 우현아.

 

 

“같이 가자, 성종아.”

“…하, 하하. 무슨 소리야. 갑자기 내가 무슨 프랑스야. 말도 안 통하는 데 가서 나 뭐하고 살아.”



당황한 웃음소리가 너무도 정직하고 어색하게 터져 나갔다. 성종은 안 돼, 안 돼, 하며 같은 웃음소리로 웃었다. 고개를 세게 저었다. 정말로 그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걱정 하지 마. 굳이 네가 원하지 않는 그림 그려가면서 살게 안 할게, 내가.”

“너 몇 년 째 서울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강사였던 거 알겠는데, 은수저 정도는 물고 태어난 것도 잘 알고 있는데.”

“명수 때문인 거 알아.”

“그래. 김명수가 있잖아.”



우현은 물기가 밴 듯한 성종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게 좋았다. 그에 딱 어울리는 초연한 표정도. 성종이 가진 그 특유의 것들은 스무 살, 그 어렸을 때부터 존재하던 것이었는데 우현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종의 그런 특징들을 매력적으로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여느 괴팍하고 무식해 보이는 남자애들과는 두드러지게 차별을 보이는 것이었다. 차원이 다른 섬세한 말투와 목소리, 표정. 성종을 처음 알았던 그 때부터 지금껏 좋아했던 그것.


너는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네 고유의 것들을 일그러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성종아. 부탁 있어.”

“응, 뭔데.”

“명수랑 헤어져 주라.”

“무슨… 부탁이 그래.”

“제발 명수랑 헤어져 줘. 부탁이야.”



성종은 그 부탁의 이유를 모르는데도 우현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서, 부탁을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9년이란 시간을 우현과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다. 그 시간 중 성종과 명수가 함께 한 시간은 6년이었다. 우현은 성종의 옆에서 그들의 그 시간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켜봐 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남우현은 김명수와 헤어지란다. 김명수는 김성규를 만나지 말란다. 갑자기 다들 나에게 왜 그러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성종은 외투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나온 담뱃갑과 약봉투를 꺼냈다. 담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이 약 때문인지는 몰랐다. 피우지 않으면 안 됐다. 피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손이 이전보다 심하게 떨렸다. 성종은 떨리는 오른 손목을 왼 손으로 붙들고 담배를 꺼내려 했다. 그 때 다른 손이 다가왔다.



“뭐 하는 짓이야.”

“피우지 마, 성종아.”

“남우현!”



바닥에 떨어진 담뱃갑과 봉투에서 몽땅 쏟아져 바람과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검은 가루들을 성종은 황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것들을 성종의 무릎에서 쳐내버린 그 손으로 우현은 성종의 손을 붙잡았다. 성종은 안간힘을 다 해 그 손을 뿌리쳐 내고 소리 쳤다.



“미쳤어, 너?!”

“너 그게 뭔 줄 알고 피우는 거야. 의사한테 정확히 물어는 봤어?”

“너도 김명수랑 똑같구나. 왜, 너도 그 의사 만나지 말라고 하지 그래.”



성종의 그런 표정은 본 적이 없었다. 눈을 매섭게 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그 얼굴. 우현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얼굴이 슬퍼서 눈물이 차올랐다. 성종으로부터 뿌리쳐진 손은 갈 곳을 잃고 우현에게로 다시 돌아왔고, 성종은 벤치에서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담뱃갑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약 봉투를 쥐고 바닥에 얼마 남아있지 않은 가루들을 쓸어 담으려 했다.



“그만해, 성종아.”

“비켜.”

“성종아, 제발. 제발 그만해.”

“비키라고!!!”



성종을 따라 벤치에서 내려와 바닥에 꿇어앉은 우현이, 그의 양 어깨를 붙잡으며 검은 가루들을 모으려는 행동을 저지했다. 그 손을 한 번 밀쳐냈지만 더 강한 힘으로 다시 붙들어오자 성종은 이성적인 사고를 못하는 사람처럼 소리를 빽 질렀다.



“네가 뭔데. 뭔데, 씨발. 나한테 왜 그러는데!”

“데려다 줄게. 그 의사한테 물어봐. 너한테 왜 그러는지.”



그 목소리는 성종의 것과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여전히 차분했는데, 성종의 손처럼 떨리고 있었다. 성종은 바닥에 주저앉아 오랜 친구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뭐가 그리 슬픈 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울음소리는 내고 싶지 않았는지, 예쁜 입술을 꾹 다물고 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였다.




*




저, 두통이 심해요. 꽤 됐어요. 어지러울 때도 많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다 해요. 중독 증세가 심해요. 잠깐 일이 있어 담배를 몇 시간 못 피우면 그걸 못 참아서 너무 힘들어요. 그 때마다 두통도 너무 심하고, 손이 막 부들부들 떨리기도 해요. 분노 조절이 안 될 때가 많아요. 엄청 화를 냈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 왜 화를 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어요. 대화를 할 때 가끔은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데 그걸 바로 인지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아니, 다 알아 들었는데 그걸 내가 혼자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9년 지기 친구가 있는데요. 걔가 저더러 김명수랑 헤어지래요. 제발 부탁이라면서. 김명수는 저더러 의사선생님 만나지 말래요. 걔도 제발 부탁이라면서. 내가 너무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나한테 부탁할 것도 드럽게 없나 봐요. 기껏 한다는 소리들이 죄다 헤어져라, 만나지 마라, 그런 것들뿐이니. 어이가 없어서 왔어요. 다들 나한테 왜 그럴까요.


우현은 성종을 차에 태워 성규의 주소를 읊게 했다. 대답 대신 꺼내준 명함에 적힌 주소에 도착해 성종을 내려준 우현은 필요하면 전화 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전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는데도 성종은 성규를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약 더 필요하면 드릴게요. 그건 성종씨가 선택해요.”



인사도 안부를 묻지도 않는 성종의 안색을 살피던 성규는 성종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길지 않은 침묵 끝에 두통이 심하다며 꺼내놓은 성종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성규도 입을 열었다.



“약혼자가 있었거든요. 내년 봄에 결혼 할 예정이었어요.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약혼녀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걸 눈치 챘어요. 누굴 만나는지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 지인 중 한 명이 미술관에서 일하거든요. 성종씨랑 제가 처음 만났던 그 미술관. 잠깐의 유흥이겠거니 했는데 2주, 3주가 지나더니 한 달은 금방 지나더라고요. 그렇게 두 달이 다 되어갈 쯤에 제 약혼녀가 그러더라고요, 임신 했다고. 그리고 며칠 뒤에 자살했어요, 죄책감이 컸나 봐요. 저랑 제 약혼녀는 애초에 아이를 가질 생각조차 없었고, 서로 합의 한 후 결혼 예정이 확실해 졌을 때 저는 수술 했거든요. 제 아이를 가질 수가 없었어요, 저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바람이 나더니 그 남자의 아이까지 임신해 와서는 결국 자살을 해버렸잖아요. 근데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우는 것도 하루면 충분했고, 슬퍼하고 절망하는 것도 며칠이면 충분했어요. 죽여 버리고 싶은 그 자식 얼굴이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그 날 그 미술관에 갔어요. 그리고 성종씨를 만났고요. 그냥 그 사람의 친구나 지인이겠거니 했는데, 성종씨 스스로 얘기 하더라고요. 그 사람의 애인이고 동거 중이라고.”

“그래서 그 때, 복수해야겠단 생각이 드셨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김명수라는 그 사람한테 복수를 한다한들 내 인생이 달라지는 건 없거든요. 근데 무의식 저 편에는 나만 불행할 수 없다는 이기심이 있었나 봐요. 성종씨에게서 우울증 증세가 보인다는 건 거짓말이었어요. 물론 없진 않았는데, 선천적인 걸 거라고 생각했어요. 치료 받을 필요가 없는. 그리고 그 약은, 의료용 대마예요. 쉬워요, 파킨슨 병 치료 중인 동료 의사한테서 구했어요.”

“그럼 저 지금, 마약 중독이라도 됐다는 건가요?”

“미안해요. 성종씨가 그걸 그렇게 단시간에 많이 섭취할 거라곤 나도 예상 못 했고. 사람마다 반응이 다른데, 성종씨는 약에 약한 몸인가 보네요. 단기 기억 손상, 움직임 조절 능력 저하, 인지 능력 저하, 어지러움에 두통까지. 그리고 아마 그 약 때문에 없던 우울증이 생긴 것 같네요.”



명수가 했던 말처럼, 우현이 했던 말처럼, 지금 이 김성규라는 남자가 하는 말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의 말이 끝나고도 한참을 생각했다. 이 남자야 말로 미친 건 아닐까. 사랑하는 여자를 그런 식으로 잃고 나면 사람이 이렇게 미칠 수도 있는 걸까. 잘못이 김명수에게만 있는 건 아니잖아. 그 여자에게도 잘못이 있는 거잖아. 정신병을 고쳐주겠다더니 정신병을 만들어준 이 남자에게 성종은, 내 잘못도 아닌데 나한테 왜 그랬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당신이 그러고도 진짜 의사냐고.


그렇지만 성종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숨을 차분하게 쉬려고 애를 쓰며 단어를 골라보았다.



“약, 주세요. 원하신 그대로 완벽하게 망가져 드릴게요.”



책상 위로 손을 뻗어 성규가 꺼내 두었던 약 봉투를 챙겼다.



“이대로 죽든 살든 이미 이렇게 된 인생, 저는 이대로 살게요.”

“……”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하세요. 김명수 건들지 마요.”

“……”

“죗값은 제가 다 치룰 테니까, 우리 명수는 그냥 좀… 둬주세요. 제발요.”



말을 마친 성종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앉았던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그의 사무실을 나섰다. 명수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죗값을 치르러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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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