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of Songs





김명수 김성규 남우현

이성종




송오브송즈 5




성종은 갤러리의 입구 옆에 위치한 데스크에 멀뚱히 앉아있었다. 전면 유리로 된 갤러리 입구 밖으로는 꽤 쌀쌀해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는 사람들이, 갤러리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제 갈길 가기 바빴다. 다행이었다, 신경 쓰고 싶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성종은 그저 가만히 앉아 몽롱한 정신을 다잡지 못하고 허공만 바라보았다. 요즘은 그런 이상한 기분이 자주 들었다. 대지 위의 온 공기가 몸을 간질이고 애무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멀리서 불어오는 건 찬바람, 가까이서 부는 건 한숨이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 그 탓에 어젯밤에는 명수와 또 다퉜다. 그 전 날 그는 분명 내일 거래처와 미팅이 있어 늦을 거라는 언질을 미리 해주었고, 퇴근 시간에도 연락이 와 저녁 챙겨 먹으라는 당부를 남겼다. 혼자 대충 저녁을 차려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 원고를 읽었다. 요 며칠 명수와의 관계는 호전 되었고, 기분이 나쁠 일도 없었다. 그랬는데 외식을 하고 돌아온 명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유 모를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대뜸 욕을 해대며 달려드는 성종을 붙잡고 진정 시키려 했으나, 명수 역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를 화나게 할 만한 일이라곤 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뭐가 문제냐 물었으나 성종은 ‘네가 문제야, 네가 싫어’라고 답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짜증과 화를 참지 못하던 성종은 잠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해졌다. 자신이 명수에게 욕을 하고 때릴 듯이 달려들었다는 걸 기억도 못하는 눈치였다.


장팀장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잠시 사무실에 들어갔다 와야 할 것 같다며, 오늘 다른 직원의 휴무라 갤러리를 봐 줄 사람이 없으니 잠깐 와달라는 청에 고분고분 그러겠노라 하고 갤러리에 와 앉아있었다. 이선생님, 어디 아픈 거 아니죠? 장팀장은 갤러리에 도착한 성종을 눈을 게슴츠레 뜨고 한참 바라보았다. 걱정보다는 의문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성종은 개의치 않고 어서 다녀오라는 말만 했으나, 장팀장의 수다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메인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았는데, 그 그림을 팔 생각이 없으면 엽서나 포스터를 만드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돈에 눈이 멀었냐는 대답을 듣고서야 장팀장은 볼 일 보고 오겠다며 갤러리를 나섰다.


밖으로 나와 갤러리를 바라보고 섰다.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전면이 유리로 된 갤러리 입구 안으로 명수의 얼굴이 보였다. 이성종이 그린 김명수의 얼굴. 대부분이 작은 캔버스에 그린 것인 성종의 다른 그림에 비해 메인 작품인 ‘아가서 4장7절’은 유독 크기가 컸다. 갤러리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안 보려 해도 안 볼 수 없는 그림이었다. ‘이런’ 그림을 메인에 걸어야 장사가 잘 된다는 장팀장의 마케팅 철학에는 동의하는 바였다. 실제로 이번 전시는 이전 보다 성공적이었으니까. 성종은 담배 연기를 후욱 불었다. 곧 겨울이 올 것 같았다. 바람이 좀 거세졌다고 느끼던 차에, 익숙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장팀장이었다.



“선생님, 저 왔어요.”

“일찍 오셨네요. 저 이제 가도 되죠?”

“시간도 이렇게 됐는데. 저랑 저녁 같이 하시죠, 오늘은.”

“장팀장님이 삽니까?”

“그럼요.”

“그래요, 그럼.”



동우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승낙을 받은 어린 소년처럼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해맑아서 따라 웃어주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지만, 성종은 담배를 피우며 제 그림을 바라보던 그 표정 그대로 동우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분한테 연락은 안 하세요?”



메인 작품을 힐긋거리며 묻는 그에 성종은 담배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다 타들어 간 꽁초를 발로 비벼 끄고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장팀장님이랑 밥 먹고 들어갈게.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성종은 동우의 뒤를 따라 갤러리 근처의 한정식 집에 앉았다. 자주 오는 곳인지 동우는 주문을 받으시는 아주머니와 친근하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애인 좀 데려오지 그러냐는 말에 일 하느라 바쁘다는 태연한 대답이 이어졌다. 훌륭한 화가시라며 자신을 가리키는 그의 소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성종은 예의바른 청년인 척 아주머니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보였다. 시답잖은 대화들과 함께 식사가 이루어졌다.



“이선생님, 알고 계세요?”

“뭘요?”

“그, 엘킴님이 전시 보러 오셨었어요.”



성종은 동우의 입에서 나온 ‘엘킴님’이란 이름이 웃겨 입으로만 슬쩍 웃었다. 어쩌면 그는, 그를 아가서 4장7절님이라고 칭해야 하는지 혹은 엘킴님이라고 칭해야 하는지 고민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왜 왔대요, 걔는?”

“본인 얼굴이 걸린 전시인데 당연히 궁금하지 않으셨을까요?”

“걔만큼 제 그림 많이 본 사람 없어요.”

“제가, 이선생님 사랑하시냐고 물었거든요.”



눈썹이 움찔 거렸다. 성종은 젓가락으로 밥을 가득 떠 입에 넣으며 눈을 치켜뜨고 맞은편에 앉은 동우를 응시했다. 동우는 그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인데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더 커진 그 눈이 무섭기도 했다.



“엘킴님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안 궁금하세요?”

“네.”

“이선생님은 그 분 사랑하세요?”



성종은 그 물음이 참 난해하다고 생각했다. 김명수를 사랑하느냐고? 몇 년 째 사랑한다는 명목하게 함께 하고 있는 연인 김명수를 여전히 사랑하느냐고? 며칠 전 명수가 제게 물었던 게 생각이 났다. 성종아, 나 사랑해? 그 때 성종은 사랑이 무어냐고 되물었다. 왜 다들 그런 걸 묻는 지 의문이었다. 사랑하는 게 뭐가 중요한데?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사랑하지 않는 게 죄는 아니잖아.



“사랑이 뭔데요, 장팀장님.”



동우는 말없이 음식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성종의 물음이 대답을 요구하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 걔도 저한테 묻더라고요, 자길 사랑하느냐고. 사랑이 뭐냐고 대답했더니 걔는 아무 말이 없었어요. 제가 걔 때문에 화나고 짜증나는 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일까요.”



사랑에 대해 정의 내려 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좋겠다. 어린 날 처음 좋아했던 사람에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대학 시절 명수 혹은 우현을 좋아했던 풋내 나던 그 여자애들이 가졌던 그것 역시 사랑이었을까. 나를 좋아한다던 우현의 고백도 사랑이었을까. 김명수는 지금껏 나에게 사랑이었을까. 출판사에서 받아온 읽고 있는 그 소설 속에서 말하려는 게 정말 사랑일까. 성경 말씀 속 아가서에서 말하는 그건 정말 사랑일까. 신이 존재한다면 붙들고 묻고 싶었다, 사랑이 대체 무엇이기에 저한테 그러시나요.




*




정리해야 할 것이 있다며 갤러리에 다시 돌아가 보겠다는 장팀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성종은 식당 앞에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다. 눈에 익은 차 한 대가 멀리서 다가와 성종의 앞에 섰다. 어김없이 담배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방금 막 나왔어. 저녁은? 먹었어?”

“응, 학원에서 대충.”

“얼굴 보기 힘들다, 우현이 너.”

“우리 학원 수강 해, 너도. 그럼 매일 잘생긴 남강사 볼 수 있잖아.”



운전을 하느라 성종에게 잠시 왔다가 다시 정면으로 돌려지는 우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제가 던진 농담이 스스로 생각해도 웃겼던지 맑은 얼굴이 해사하게 웃었다. 성종 역시 따라 웃고 말았다.



“너희 학원 비싸잖아. 나만 특별히 무료로 과외 해주는 건 어때.”

“과목은?”

“음… 소묘?”

“소묘?”



대답인지 물음인지 모를 성종의 말에 우현은 그걸 반복해 말하며 성종의 얼굴을 잠깐 돌아봤다. 고등학생 때 주구장창 그렸던 게 소묘인지라 쳐다보기도 싫다 했던 대학 시절의 성종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성종은 뭐가 즐거운지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제 퇴근시간에 맞춰 성종에게서 온 연락에서는, 데리러 와줄 수 있냐는 말이 전부였기에 또 무슨 나쁜 일이 있는 건가 싶어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성종의 얼굴은 화창해 보였다.



“집에 데려다 줘?”

“아니, 집 바로 여긴데 집에 갈 거였으면 너 안 불렀지.”

“그럼?”

“집에 맥주 있어?”

“우리 집에?”

“응, 맥주 한 캔씩 할까?”

“그러자.”



우현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살폈다. 성종의 집에 가기 위해 좌회전 신호를 받으려던 참이었는데, 본인 집에 가려면 직진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좌측으로 넣었던 방향지시등은 껐지만, 중앙 차선으로 끼어들기엔 도로가 매우 비좁고 복잡했다. 결국 좌회전을 해 돌아가야겠다 싶어 다시 방향지시등을 올렸다. 깜빡, 깜빡깜빡, 깜빡이는 소리가 밤새 도로를 수놓을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맥주 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혼자 사는 집에는 누군가 올 일이 없어, 우현은 손님이 와 앉아있는 지금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먹을 것, 마실 것은 필요 없다며 맥주 한 캔만 챙긴 성종은 우현의 침실로 모습을 감췄다. 따라 들어와 본 곳에는 침대 위도 아닌 침대 아래,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은 성종이 보였다. 그는 그 방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우현의 그림을 보고 있었다.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곳에 홀로 선 남자가 그려진 그 그림. 우현은 한참 그림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성종의 옆에 다가가 똑같이 침대를 등지고 바닥에 앉았다.



“나, 알아. 그림 속 저 사람, 나란 거.”

“너 아니야.”

“나 아니라고?”

“응, 너 아니야. 나야.”



눈이 동그래져서 자신을 바라보는 성종에 우현은 낮게 웃었다. 사실 정확한 인물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다. 성종이라 해도 맞는 것이었고, 우현 자신이라 해도 틀린 건 아니었다. 이성종이 사랑하는 바다와 갈망하는 사막이 함께 있는 그 가운데에 서있는 이성종이기도 혹은 남우현이기도 한 사람. 너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한 사람. 그렇지만 바다와 사막이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만날 수 없는 우리. 우현의 그림은 그걸 표현한 것이었다.



“너 졸작전 때 내 작품 설명 제대로 안 읽었구나.”

“그런 게 있었어?”

“너무한다, 이성종.”



우현은 미안하단 말을 서너 번 반복하는 성종의 반응에 그저 웃으며 맥주를 목구멍으로 넘길 뿐이었다.



“그래도, 내 생각하며 그린 그림 맞지?”

“……”

“내가 바다 좋아하는 거, 근데 사막에 대한 로망이 있는 거. 알잖아, 너.”

“내가 너 때문에 한 번 뿐인 졸업 작품을 네 생각하면서 그렸을까봐?”

“난 그런 줄 알았어, 지금껏.”



맥주를 들이키는 성종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검은 색 머리칼 아래로 반쯤 떠올린 눈이 예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또렷하게 뜨는 경우가 잘 없는 커다란 눈. 눈동자가 움직일 때면, 눈알이 굴러가는 소리가 또륵, 또르륵 날 것만 같은 눈. 예쁜 그 눈은 앞에 세워진 그림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을 따라 우현도 그림으로 눈을 돌렸다. 오래 전 그렸던 아주 특별한 그림이었다. 광활한 바다와 황량한 사막이 한 데 어우러진, 현실에선 아마 있을 수 없는 그림. 그 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 그 때의 우현은 그리고 싶은 게 선명했었다.



“우현아, 지금도 나 좋아하니?”

“갑자기 무슨 말이야.”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성종의 눈을 마주쳤다가 황급히 피했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를 몰라 제 그림으로 향했던 눈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여러 번 깜빡거렸다. 맥주를 들어 올렸더니 이미 다 마셔버린 빈 캔이었다. 성종의 것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맥주, 더 갖다 줄까?”

“우현아, 나랑 자고 싶어?”

“…뭐?”

“나랑 잘래?”



그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얇고 기다란 손이 뒷머리를 잡아 당겨왔고, 성종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고 인지했을 때에는, 이미 그의 입술의 감촉이 느껴지는 상태였다. 성종의 키스는 조금은 우악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성급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는 우현의 앞으로 성종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빈 맥주 캔이 넘어지는 소리들이 방 안을 메웠다. 서늘한 손이 우현의 얇은 티셔츠 안으로 들어왔다.


곧 부서질 것 같은 마른 알몸 두 개가 침대 위에 있다. 우현은 성종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달빛에 어스름 빛나는 얼굴은 하얗고 매끄러웠다. 특별한 표정 없는 성종의 얼굴이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평소엔 앞머리가 뒤덮고 있어 잘 볼 수 없었던 예쁜 이마를 손바닥으로 쓸어 올려 보았다.



“나 너 이용하는 거야.”



성종의 이마와 볼, 턱, 목을 따라 내려가던 우현의 입술이 목과 어깨쯤에서 멈추었다.



“나 무슨 병 있나봐, 정신병.”

“……”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가봐.”

“어디 아픈 건 아니야?”

“응. 그냥… 나 요새 뭔가 참을 수가 없거든. 참기가 힘들어. 그래서 화도 많이 내고 짜증도 많이 내. 갑자기 기분이 막 좋아졌다가 다시 울기도 하고. 근데 성욕도 참기가 힘들 줄은 몰랐네.”

“성종아. 너,”



성종의 목 언저리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우현은 고개를 들어 다시 그 얼굴을 마주보았다. 병이 있다고, 아프다고 말하는 얼굴 치곤 평온하고 잔잔한 수면 같은 얼굴. 평소에도 표정이 많이 없고, 기분이나 감정에 변화가 있기는 한 건지 의문스럽던 그 얼굴. 어떤 날들엔 그 얼굴로 무슨 말을 뱉을지 몰라서 무서웠던가 하면, 또 어떤 날들엔 그 얼굴이 그렇게 해사하게 웃을 수 없어서 기쁘고 좋았던. 며칠 사이 살이 더 빠진 건지 마른 볼 위로 예쁜 광대가 더 두드러져 있었다.



“다른 사람한테도 자자고 했어?”

“아니, 너 말곤 없어.”

“그래, 그럼 됐어.”



애석하게도 그 말은 정말, 그거면 충분하다는 말이었다.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이 없어도, 몸을 원하는 이유가 사랑이란 감정의 이유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이었다. 성종의 말마따나 그가 자신을 이용하는 거라 해도 괜찮았다. 성종에게 어떤 식으로라도 유일한 사람이 된다면 충분했다, 우현은. 성종의 입술에 여러 번 입 맞추었다 떼었다를 반복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이 시간이 영영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바랐다. 눈앞에 있는 이 얼굴이 금방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릴까봐 무섭기도 했다. 혹은 오늘 밤이 지나 성종을 다시 보지 못할까봐 끔찍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영영 할 수 없을 지도 모를 고백이 될 것 같은 느낌에 우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전히 좋아해, 성종아.”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성종은 눈을 꾹 감았다. 우현의 것과 맞춰졌던 입술과 손깍지 그리고 신체의 다른 부분들의 느낌이 몸에 맞지 않고 어색한 것만 같았다. 모든 게 익숙한 사람의 것과는 다른 것이라 그런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현의 밤은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달렸는데, 성종은 그걸 따라잡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 낯설고 따뜻한 품이 안아주는 게 좋아, 이상하게 웃음이 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는 그 고백에 대한 대답은 이번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태어나면 여자로 태어나리라고 생각했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여자로 태어나서, 김명수가 아닌 남우현을 사랑하리라고. 우현의 사랑은, 그건 변하지도 않고 영원할 것 같으니, 우현을 사랑하게 되어서 가득가득 영원히 사랑 받으리라고. 동성애자라고 손가락질 받기도 하는 세상이니, 우현의 행복을 위해서 여자로 태어나리라고.




*




하늘이 파랬다. 장팀장과 저녁만 먹고 들어가겠노라 명수에게 남겼던 메시지가 무안할 지경이었다. 시간은 벌써 하루가 바뀌어 새벽 4시가 넘었다. 태워다 주겠다는 우현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의 차에 올라탔다. 새벽 도로는 복잡하거나 바쁘지 않았다. 까만 어둠을 뚫고 하얀 빛들이 주변을 스쳐 지났지만, 모두 우현과 성종에겐 관심 없는 것들이었다. 고맙다고,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건넨 성종은 차에서 내려 아파트 건물 안으로 빠르게 들어섰다. 이제와 서둘러봤자 어차피 시간은 한참이나 늦었지만.


현관문을 열었을 때 부엌 등이 켜져 있어 흠칫 놀랐지만, 명수는 침실에 있는지 집 안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가방 속에서 담배와 약 가루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걸치고 있던 얇은 외투와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려놓고, 식탁에 의자를 빼 앉았다. 우현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인지, 눈앞이 흐리멍덩하고 정신이 쇠약해진 것만 같았다. 손이 좀 떨리는 것도 같다고 느꼈지만 담배 하나에 그 정도 금단 증상까지 올리는 없다며 스스로를 넘겨짚었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집은 보통 창문을 자주 열어놓고 환기를 시키는 편이었다. 그래도 집 안에서 흡연을 하다 보니 집안 곳곳에 배어있는 담배 냄새가 완벽히 사라지는 경우는 없었다. 집 주인인 두 사람 다 흡연자인데다 동물이나 식물은 일절 키우지를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명수가 식탁에서 담배를 피운 모양인지 재떨이가 식탁 위에 있었다. 성종은 그 곳에 피우던 담배를 비벼 껐다.


찬 물로 몸을 씻었다. 씻고 나와서야 그 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특별한 연락이라곤 없었고, 명수에게서 온 메시지가 몇 개 있었다.



- 성종아, 많이 늦어?

- 술 너무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와.

- 나 먼저 잘게.



메시지는 간결했고, 재촉하거나 추궁하는 문자는 없었다. 차라리 이 시간까지 장팀장과 술이라도 마시다 들어온 거였다면 이런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명수를 깨우고 싶지도 않았고, 이런 기분으로 그 품에 안겨 잠들고 싶지는 않아 거실 소파에 몸을 누였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나체 위로 소파 위에 있던 담요만 펼쳐 덮었다.


깊고 먼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정신이 차려질 듯 말 듯 갈피를 못 잡았다.



‘성종아. 이성종.’



아침 공기가 차가웠는데 몸에 닿아온 따뜻한 손이 낯설어서 몸에 소름이 돋았다. 눈을 떠 본 곳에는 인상을 가득 쓴 명수의 얼굴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본 얼굴인 것 같았다. 꿈을 꿨다. 어둠 속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그 속에서 태어난 자신이, 김명수의 목을 졸라 죽이려는 꿈이었다. 그 때 발버둥을 치던 명수는 성종의 팔을 괴팍하게 쳐내고 우악스럽게 그 몸과 팔을 비틀더니 도리어 성종의 목을 졸라왔다. 목을 졸라오던 그 손이 성종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고 있었다. 사랑하는 모든 걸 잃는 듯한 꿈이었다.



“성종아. 정신 들어?”

“……”

“왜 그래, 무슨 나쁜 꿈이라도 꿨어?”

“너, 뭐하는 거야.”

“정신 좀 차려봐. 너 온 얼굴에 인상을 쓰고 몸을 뒤틀면서 자고 있었어.”

“내가?”

“식은 땀 좀 봐.”



명수는 출근 준비를 마친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얇고 흰 니트 위로 까만 자켓을 걸치고 있었는데, 자켓 소매 안으로 삐죽 나온 니트 끝을 당겨 성종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괜찮아?”

“넌? 잘 잤어?”



요즈음의 성종답지 않게 다정한 물음이 어색해서 명수는 샐쭉 웃었다. 응, 난 잘 잤어. 아침에 일어나 마주 보고 잘 잤냐고 서로 물었던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실로 어색한 풍경이었다. 명수는 몇 시에 들어왔는지, 어디에서 무얼 하다 그렇게 늦었는지를 묻고 싶었으나 지금의 이 평화로운 아침이 끝나 버릴까봐 차마 궁금한 걸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출근은?”

“아직 시간 좀 있어. 안 늦었어, 걱정 마.”

“아침밥은?”

“내 아침밥 챙겨주던 것처럼 말한다, 너? 사과 하나 챙겼어. 가서 커피랑 먹으려고. 어제 잘 들어온 거야? 왜 방에 안 들어오고 여기서 잤어.”

“장팀장님이랑 밥 먹고 우현이 만났어.”

“……”



성종이 몸을 일으키자 어깨까지 끌어올려져 있던 담요가 무릎으로 흘러내려 떨어졌다. 명수는 성종의 일으킨 몸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황망한 시선으로 제 가슴팍만 쳐다보고 있는 명수가 의아해 시선을 아래로 떨군 성종은 그곳에서 울긋불긋한 자국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제 상체를 발견했다. 지난 밤 우현이 남긴 흔적들이었다.



“…남우현이야?”

“……”

“남우현이냐고 묻잖아.”

“우현이 잘못 없어.”



명수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대답조차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럼? 네 잘못이야?”

“내가 자자고 했어.”

“……”

“씨발, 나도 모르겠어! 그냥 그러고 싶었는데 어떡해!”



화를 내지도 않고, 더는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는 명수에게 성종은 되려 소리를 쳤다. 화를 내도 모자란 사람은 명수라는 걸 잘 알고 있는데, 이유 모를 화가 이상하게 가라앉질 않았다. 소리를 질러놓고 나니 몸에 힘이 풀리고, 눈물이 눈가를 비집고 나왔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아보겠다고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쳐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지만 명수는 아무 말이 없었고, 이내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눈물이 고인 성종의 두 눈 안으로, 현관으로 향하는 명수의 검은 등이 들어찼다.




*




몇 년 만에 휴대전화에 떠오른 이름 ‘김명수.’ 우현은 그 전화를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헷갈렸다. 학교 다닐 때에야 성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일이 많았고 친구처럼 지냈지만, 졸업한 이후로는 전혀 얼굴 볼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김명수는. 그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성종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명수와 함께 있는 게 불편했던 우현이라, 성종이 원하는 피치 못 할 경우가 아니라면 그를 만날 일이 없었다. 우현에게 있어 좋은 기억만은 아니기 때문에 만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몇 년 만에 갑자기 왜 연락을 해 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할 얘기가 있다며 시간이 언제 비냐고 묻기에, 점심시간 이후 오후 중에 시간이 있다 답했다. 사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점심을 같이 먹자 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기엔 체할 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그는. 그래도, 시간이 여의치가 않으니 미술관 근처 커피숍으로 와줄 수 있냐는 부탁의 목소리가 깨나 애처롭게 들려 그 정도 청은 들어주었다.


그리고 우현은 오늘 그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김명수는 그간 잘 지냈냐는 둥의 안부 치레의 인사는 생략했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하고 불안해 보였는데, 우현은 자신 역시 그렇게 될 거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 주문해 받아온 커피는 입에도 대지 않고 한동안 말을 고르던 김명수가 끝내 입을 열어 꺼내놓은 말은 우현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헤집어 놓았다.



‘나, 성종이 없으면 안 돼. 너도 알지.’

‘……’

‘나 성종이 없으면 죽을 거야. 못 살 거야, 걔 없으면.’

‘……’

‘근데 그런 성종이한테 몹쓸 짓을 했어, 내가. 너 성종이 약 먹는 거 알아? 아니, 먹는 거 아니고 담배랑 같이 피우는 거. 나 그걸 보고도 차마 걔한테 그게 뭐냐고 물어보질 못했어. 성종이한테 그 약을 준 사람이 왠지 내가 아는 사람인 것 같아서. 근데 그 사람, 나한테 복수하려는 거 거든. 나한테…, 성종이한테. 내가… 잠깐 돌았었나봐, 미쳤었나봐. 잠깐 만났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 약혼자였어. 근데 씨발, 그 여자가 임신을 한 거야. 그 사람 애도 아니고 내 애를.’

‘……’

‘그리고 자살 했어, 그 여자. 나 그 이후로 정신병원도 다니고 죄책감 때문에 미칠 것 같았는데, 자꾸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되더라. 근데, 그게… 성종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내가 온전한 상태인 것 같다고 느껴. 성종이만 보고 성종이만 만지고 성종이 옆에만 있으면, 숨이 턱 턱 막히는 것 같은 거야. 성종이한테 사실 대로 다 말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그게 안 돼서, …아직도.’

‘미친새끼.’

‘그 남자가 성종이한테 준 그거, 그거 때문에 우리 성종이 잘못 되면 어떡해. 성종이한테 어떻게 접근해서 걔를 어떻게 꼬신 건지도 모르겠어.’



그 말을 하는 명수는 정말로 미친 사람 같았다. 소중한 걸 몽땅 잃은 사람처럼 처연했다. 말을 하는 내내 그 눈은 시선 둘 곳을 못 찾고 좌우로 정신없이 움직여댔다. 입술은 아프기라도 한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우현은 그 말들을 잠자코 다 듣고 있기가 거북했다. 성종이 사랑하는, 몇 년을 함께 해 온 이 김명수라는 사람이, 성종에게 사랑 받을 자격은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었다. 성종아, 너는 왜 김명수를 사랑한 거야?



‘성종이한테 사실대로 다 말해. 그리고 그 애 놔줘.’

‘남우현.’

‘너는 성종이 옆에 있을 자격 없어.’

‘너야 말로 그런 판단 할 자격 없어. 넌…, 걔한테 아무 것도 아니잖아.’



그 마지막 말은 어찌 그리 뻔뻔스러울 수가 있는지. 우현은 명수를 노려보던 그대로 일어나 그를 지나쳐 커피숍을 나왔다. 명수가 했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비수로 꽂혔지만 사실이라 부정의 말 한 마디조차 내뱉지 못했다. 명수가 오늘 꺼냈던 충격적인 이야기보다, 성종이 나쁜 일에 처해있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보다 우현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던 명수가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그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편 적어오며 유독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고, 몇 배로 신경을 써 적은 부분들이 있어요.

성종의 그림에 관한 표현들, 성종과 명수의 싸인에 대한 부분들, 흡연자인 성종을 표현하는 부분들, 성종 특유의 말투와 화법.

그리고 특히나 이번 픽션에서 가장 아끼는 주인공인 우현을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몇 줄 적는 데에도 긴 시간을 소요할 정도로 공을 들였어요. 팬픽이라는 것은 이미 너무도 확실하고 뻔하게 주인공이 정해져 있는 글인지라, 주인공의 외모와 이미지에 대해서 이름만 봐도 쉽게 떠올릴 수가 있잖아요. 똑똑하고 섬세하며 자기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완벽한, 욕심 없고 한결 같으며 묵묵히 성종의 곁을 지켜주는, 예쁜 미대 오빠 우현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가장 미안하고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랍니다.

저는 스토리를 구상하며 주인공의 이미지와 주인공들이 가진 그들에게 소중한 것들, 그들만이 가진 특징들도 함께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스토리는 뻔할 수가 있지만 주인공과 그들을 서로 엮어주는 개체들이 뻔하게 만들어지는 건 싫어서요. 제가 신경 써 적은 부분들이 읽으시는 분들께도 특별하게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