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of Songs

 

 


김명수 김성규 남우현

이성종

 

 

 

송오브송즈 3




스물세 살에 만났던 김명수는 성종에게 첫 번째 사람이었다. 현대미술사 수업에서 처음 만났던 명수에게서 느꼈던 이상한 기분을 그 당시 성종은 잘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첫 눈에 반한다는 그런 경험은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 사람을 좋아할 것 같다는 분명하고 확실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그를 처음 봤던 날 그런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눈을 꾹 감아버렸던 그것처럼, 성종은 한 동안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끔찍할 것까진 없었지만, 남자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분명 나쁜 기억이었던 고등학생 시절 이후로 처음 좋아하게 된 사람이 결국 또 남자라는 사실이 싫었다. 사람에게 마음을 안 주려고, 스스로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왔던 시간들을 무시하고, 처음 만나 이제 막 통성명을 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느꼈다는 자체가 성종은 싫었다.

 

우려했던 것보다 명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성종의 그림에 항상 진중한 태도를 보여줬고, 성종이 작업하는 시간을 묵묵히 함께 공유했다. 그렇지만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고, 어려운 영화를 좋아하고, 시집이나 수필을 즐겨 읽는 그는 성종과는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일이 즐거웠던 당시의 성종은 자신이 그에게 급하게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 감정을 스스로 인지했을 때에는 좋아한다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라 있었는데,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서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혼자 며칠을 끙끙 앓던 그 때, 화를 내며 찾아온 명수 앞에서 성종은 누가 죽은 것처럼 울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단 하루도 서로를 떠난 적이 없었다. 둘 사이에 고백의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으나, 같이 살기 시작하고, 성종은 명수를, 명수는 성종을 그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두 사람은 그게 사랑이라고 어림잡았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 지나온 스물 몇 해 중 명수에게 소중했던,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물은 적이 없으나, 성종에게는 그가 첫 번째 사람이었다.

 

성종은 제 손목에 자리한 타투를 만지작거렸다. 그건 벌써 5년 동안이나 그 자리에 까맣게 피어있었다.

 

 

“타투가 있네요.”

 

 

목소리가 생경하게 들려왔다. 술 때문이었을까. 연인과의 지난 이야기를 푸념처럼 늘어놓는 성종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남자가 성종의 오른 손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급 일식집의 연한 주황빛을 받은 남자의 얼굴은 말갛게 미소 짓고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던 초밥 대신 술을 더 많이 마신 탓에 정신이 약간은 몽롱해진 상태였다. 술이 없었다면 초면인 이 남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거다.

 

 

“제 그림에는 제 싸인이 있거든요. 그 자식 손목에도 제 싸인이 있고요.”

“그럼 성종씨 손목에는 그 사람 싸인이 있겠네요.”

“네, 보실래요?”

 

 

손목을 삐딱하게 틀어 제 얼굴 옆에 올려보였다. 하얀 손목에는 L.Kim이라는 영문이, 누군가 직접 필기를 한 모양으로 적혀 있었다. 남자는 성종의 얼굴 대신 손목을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엘킴? 성은 김인 것 같은데.”

“네. 엘은, 엘은 그러니까…”

 

 

벌써 그렇게 취한 것 같지는 않은데. 성종은 올렸던 팔을 내리며 조금 무거워진 눈꺼풀을 고쳐 뜨고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남자는 뭔가 즐거운지 미소를 지으며 그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제 성에서 딴 거래요. 제 성이 이니까 엘, 이, 이잖아요. 그 엘이래요.”

“그렇구나. 예술가는 아니라고 했는데, 엘이라는 이름이 뭔가 예명인 것 같기도 하네요.”

“그 자식이 가끔 그림을 그리더라고요. 근데 그림에 싸인이 없었어요. 모든 작품은 주인이 필요한데, 걔는 그걸 모르더라고요. 내가 무얼 그렸든 내 그림엔 내가 담겨있는 건데.”

“그럼 성종씨에겐 그 사람이 담겨있고, 그 사람에겐 성종씨가 담겨있는 건가요? 서로에게 서로의 싸인을 새겼으니까.”

 

 

무심코 고개를 끄덕거렸다. 타투를 같이 새기자 했던 말이 어쩌면 성종이 명수에게 건넸던 첫 번째 고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하나부터 열까지의 모든 걸 네가 만든 건 아니었지만, 너를 만난 이후의 나는 네가 만들었다. 너를 만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평생 갖고 살아왔다면, 너의 이름을 나에게 새기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 이름이라는 것은 죽어 무덤까지 가져갈 것이라서, 그림 역시 불 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새겨진 그 이름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라서. 내 몸에 네 이름을 새긴다는 건 나의 평생을 약속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 사랑하는 사람이 왜 미운 거예요?”

 

 

입술을 달싹 거렸다. 성종의 앞으로 빨간 회가 올려 진 초밥 한 점이 놓여졌다. 초밥을 딱히 즐겨 먹는 편도 아니거니와 이런 고급 일식집에 올 일도 없는 성종이었다. 언젠가 명수가 데려갔던 초밥 집에 앉아 몇 점 집어먹지도 않고, 튀김 따위나 깨작거리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먹던 음식을 남겨두고 근처 부대찌개 집에 갔던 기억. 제 딴에는 맛있고 좋은 걸 먹이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거다. 그렇지만 성종에겐 집 앞 분식집에서 먹는 김치찌개나 단골 가게의 순대국밥이 더 입에 맞았다. 그림쟁이가 버는 돈이 얼마나 된다고. 오늘 식사 계산은 저쪽에서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집에 돌아갈 정신 정도는 붙잡고 있을 생각이었으나, 계산을 하고 나갈 때가 되면 좀 더 취한 척을 해볼까 하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식사를 하자는 제안도 저쪽에서 꺼낸 것이었으니 말이다.

 

갤러리에 도착했을 때 귀찮을 법한 장팀장의 수다를 다 받아주고 있는 그를 마주했다. 다시 오셨네요? 라고 물으니 남자는 이 그림이 다시 보고 싶었거든요, 라며 메인 작품을 가리켰다. 그다지 반갑지는 않은 이유였으나 본인도 김명수를 피해 나온 이상 시간을 좀 때우다 들어 갈 요량이었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하자는 남자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갤러리로 가는 길에 다시 확인해 본 남자의 명함에는, 김성규라는 이름 위로 정신과 전문의라는 글자가 있었다.

 

 

“여자가 있나 봐요.”

 

 

성종은 움찔거리는 성규의 눈썹을 눈치 채지 못한 채 말을 이어갔다.

 

 

“걔가 뭔가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제가 계속 피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퇴근하고 오자마자 막 울더라고요, 미친놈이. 근데 그 말이 뭔지 모르니까 나도 무서워서 닥치라고 그랬어요. 왠지 그걸 들어 버리면 세상이 다 무너질 것 같아서요. 하늘이 주저앉고 땅이 꺼질 것 같아서요. 오늘도 도망 나온 거예요, 마침 그 새끼 퇴근 시간에 오셨더라고요.”

“저도 퇴근하고 바로 간 거였는데 문 닫았을까봐 걱정했거든요. 근데 다행히 갤러리가 8시까지 열려 있다더라구요.”

“근데,”

 

 

눈을 게슴츠레 떴다. 성종은 제 뒷말을 기다리는 남자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지금 흡연을 하면 술기운이 올라 더 취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담배 한 대가 절실히 피우고 싶었다.

 

 

“왜 다시 찾아오셨어요?”

 

 

성규는 낮게 웃었다. 왜 이제야 묻느냐는 것 같았다. 첫 만남에도 느꼈던 거지만 이성종이란 사람은 상대에게 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성규는 그런 성종의 태도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럴 것이라고 짚어보았다.

 

 

“우울증 치료해 드리고 싶어서요.”

“무슨 소리세요, 그게.”

“성종씨한테서 우울증 환자들이 가진 느낌을 많이 받아서요.”

“지금 저 병신, 아니 환자 취급 하시는 거예요?”

“그런 거 아니에요. 편의상 환자라고 부를 뿐이지 우울증 치료 받는 분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겉으론 아주 멀쩡한데 마음속만 아픈 거 있잖아요.”

“저 어디 아픈 데 없어요. 사람 잘못 보신 거 같은데. 그리고 저 그런 치료 받을 돈도 없어요. 그림 팔아서 뭐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 줄 아시나 본데, 타깃 잘못 고르셨어요. 죄송하네요.”



성규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날 것처럼 소지품을 챙기는 성종의 손목을 붙잡았다. 반은 풀린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는 성종에게 성규는 고개를 휘휘 저어보였다.

 

 

“저 고객 필요한 거 아니에요. 이래봬도 잘 나가서 예약 가득가득 차있을 정도로 바빠요, 돈도 잘 벌고.”

 

 

제 자랑 하기가 머쓱하다는 듯 뒷목을 살짝 쓰다듬는 성규를 가만 바라보았다. 우울증이라니. 성종은 자신이 취해서 사람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있는 건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했다.

 

 

“목적이 뭔데요.”

“그런 거 없어요. 돈 받을 생각도 없고. 그냥 치료 해드리고 싶었어요, 처음 만났던 그 날부터.”

“제가 우울증이 있는지 정신병이 있는지 그쪽이 어떻게 아는데요.”

“보셨잖아요, 명함.”

 

 

성종은 윗니로 아랫입술을 몇 번 꾹꾹 눌렀다. 알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본 적도 없고,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봐준 적도 없다. 누가 됐든 제 머릿속이라며 제 마음속이라며 뇌와 심장을 꺼내 보여준다 한들 그걸 파헤쳐볼 마음도 없었고, 자신 역시 남에게 그걸 보여줄 생각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이 남자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서 정말 그런 증상이 보인다면 그건 모두 김명수 때문일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이유도 알아낼 수 있나요?”

“당연하죠.”

“그래요, 그럼. 저 담배 좀 필게요.”

 

 

등 뒤로 걸쳐두었던 얇은 자켓을 팔과 어깨에 꿰어 입고 가게 밖으로 나섰다. 칙, 치익. 빨갛게 피어올랐던 불이 꺼진 자리로 탁한 색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를 내뱉는 소리가 한숨처럼 퍼져나갔다.

 

 

 

*

 

 

 

집에 도착했을 때는 열한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몽롱한 정신을 다 잡으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좁은 거실에는,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니 당연히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명수가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오른쪽으로 삐딱하게 꺾여있는 고개는 무언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성종은 신발을 벗으며 아무 말 없는 명수를 힐끔 쳐다보곤 역시 말없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 갔다 왔어. 연락은 왜 안 되고.”

“언제부터 내 걱정을 그렇게 했다고. 고객 만났어, 고객.”

 

 

걱정 어린 명수의 목소리에 비해 말투가 많이 성의가 없었나. 개인적으로 고객을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고객을 만났다고 한 건 거짓말인 게 너무 티가 났나. 건성으로 뱉은 말들 후에야 찝찝함이 몰려왔다. 성종은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와 제 앞에 서있는 명수에 흠칫 놀랐다. 잠이 부족한 건지, 오늘 업무가 고됐는지 그의 눈에는 피곤이 가득 차들어 있었다.

 

 

“너 되게 피곤해 보여. 얼른 자.”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그냥 지나쳐 가려하니 명수가 손목을 붙잡아 세웠다. 술 냄새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그냥 좀 마셨어. 너는 술 안 먹고 다니니? 왜 그래, 갑자기.”

“누구 만났어, 너. 무슨 고객이랑 술을 이렇게 마셔!”

“아, 왜 소리를 치고 그래!”

 

 

잡혀있던 손목을 힘껏 뿌리쳤다. 사실 그는 그다지 그렇게 큰 소리를 낸 것도 아니었다. 몇 시간 내내 연락이 안 되었으니 걱정이 될 만도했고, 지금껏 고객을 만났던 이례가 없었으니 충분히 물어볼 법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성종은 자신이 이유 없는 화가 났기 때문에 상대도 화가 났다고 판단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김명수가 화가 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늦게 들어와서? 늦게 들어온 주제에 연락 한 통 하지 않아서?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내가 그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와서? 아니면, 나를 기다린 그를 보고도 모른 척 해서?

 

 

“집에 잘 들어왔으면 됐지, 왜 화를 내고 지랄이야, 미친 새끼야!”

 

 

성종은 그에게 미친 새끼라고 내뱉으면서도 자신 역시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사실 그가 조금 화를 냈다고 해도 덩달아 화를 낼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늦어서 미안해, 연락 못 해서 미안해, 미안하단 그 한 마디면 됐을 텐데. 떠오르는 생각과는 다르게 몸과 입은 왜 그걸 따라주지 않는지. 뭔가를 꾹꾹 참고 있는 듯 보이는 명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성종은 다시 큰 소리를 냈다.

 

 

“내가, 씨발, 뭐 남자라도 만났을까봐? 어? 너는 여자 잘만 만나고 다니면서 나는 누구 좀 만나면 안 돼? 행여나 내가 누굴 만났다고 한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다시 말해봐, 이성종. 너 지금, 무슨 상관이냐고 했어?”

“그래, 무슨 상관인데! 내가 누굴 만나서 밥을 먹든 떡을 치든! 신경이나 쓰이니? 너랑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잖아!”

“말 똑바로 해, 너. 그게 어떻게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야 이 씨발새끼야!”

 

 

발악을 하듯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그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밀쳤다. 술이 잔뜩 들어간 팔에는 힘이 없어서, 명수는 몇 발자국 뒷걸음질을 쳤을 뿐이었다.

 

 

“네가 다른 여자 만나는 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 그럼?! 두 달 동안 너한테서 나는 향수 냄새 참아줬잖아, 개새끼야. 내가 아무 말 않고 있으니까 병신 같아? 아직도 너 밖에 모르는 등신으로 보이니?”

“이성종!!!”

 

 

양 손으로 어깨를 붙들어오는 명수를 앞에 두고 숨을 골랐다.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서인지 숨이 찼다. 명수는 곧 울기라도 할 것처럼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었다. 역겨웠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이 역겨워지는 순간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그리고 의무인 것처럼 학교라는 곳엘 다니기 시작했는데, 12년 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건 다 뭐였을까. 열심히 공부해서, 열심히 그림 그려서 대학 갔는데, 대학 4년 동안 배웠던 건 또 다 뭐였을까. 부모님은 알고 계실까. 성종은 지금 제 앞에서 제 이름을 목이 찢어져라 크게 불러놓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시울만 붉히고 있는 명수를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진짜 재수 없어, 너.”

 

 

짧은 몇 마디를 내뱉은 성종은, 제 어깨를 붙잡고 있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뿌리쳐냈다. 집에 들어왔던 그대로 다시 돌아섰다. 신발을 대충 꿰어 신고 현관문을 괴팍하게 열었다. 그런 그를 명수는 붙잡지 않았다.

 

 

 

*

 

 

 

- 우현아, 나 좀 재워줘.

 

 

늦은 밤 걸려온 전화에 어리석은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전화기 건너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처연해서, 제 멋대로 두근거린 가슴이 밉기까지 했다. 학생들의 작품을 살펴보고 다음 날 수업해야 할 목록들을 정리 중이던 우현은 오랜 친구의 전화 한 통에 기분이 하늘을 올랐다가 바닥으로 치솟기를 왕복했다.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을 시간에 조금이라도 빨리 성종의 얼굴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책상에서 일어나 차키를 찾아 집을 나섰다.

 

도착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앞에는 성종이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성종아.”

 

 

우현의 차를 단박에 알아본 성종은 피우다 만 담배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 양 손으로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우현은 조수석의 문이 열리고 자연스럽게 올라탄 성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걱정했던 것보단 맑은 얼굴이었지만 우현은 안도할 수만은 없는 한숨을 폭 쉬었다.

 

 

“아파트 밑에 있으면 저 새끼가 나 잡으러 내려 올까봐 단지 앞까지 나와 있었어. 미안, 담배 냄새 나지. 나 술도 좀 많이 마셨어.”

 

 

안전벨트를 당겨 채우며 말한 성종은 우현에게로 얼굴을 들어 보이며 얼핏 웃었다. 흡연을 하지 않는 우현의 차에는 담배 냄새 같은 게 날 일이 없었지만, 성종을 태운 날이면 차 안 공기가 달라지곤 했다. 기다리는 동안 한두 대 피운 게 아닌 모양인지, 성종이 차에 타자마자 담배 냄새가 강하게 닿아오긴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이 마셨다는 말과는 다르게 술 냄새는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독한 담배 냄새도 스무 살 때부터 성종의 옆에서 10년째 맡아온 익숙한 향이었다. 우현은 고개를 설설 저었다.

 

 

“자고 있을 줄 알았더니 전화 바로 받더라.”

“애들 수업할 거 좀 보고 있었어. 퇴근한 지도 얼마 안 됐고.”

“학교에 취직할 순 없었나. 학원은 애들이 학교를 끝나고 오니까 너무 늦잖아, 시간이. 그래도 공무원 선생보단 학원 선생이 돈 더 잘 벌지?”

 

 

무슨 일이 있어서 이 시간에 전화를 해 재워달라고 한 건지 추궁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성종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사실 평소에 그는 잘 웃는 편이 아닌 사람이어서 오히려 그가 웃으며 건네는 농담이 낯설기도 했지만 말이다. 성종의 나른한 목소리를 들으며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발을 떼었다. 차가 출발하자 성종은 조수석의 시트로 등을 바짝 기댔다.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평소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손과 발을 움직여 운전을 했다.

 

 

“요새 바쁘지. 미안해.”

 

 

말없이 고개만 저어보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 미술학원 취직을 선택한 우현은, 고등학생 시절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때보다 학원 강사가 된 후가 더 정신이 없고 바빴다. 여름방학엔 입시 준비하는 학생들과 학원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만 했고, 2학기가 시작 되면 일부러라도 신경이 날카로워져야만 했다. 9월에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되면 10월에는 실기고사가 있었다. 그렇게 수시가 끝나면 한숨 돌릴 틈도 없이 12월에는 정시 접수가 시작 되었다. 그리고 1월에는 또 실기고사. 학원 강사로서 살아온 몇 년 동안 우현의 여름부터 겨울까지는 학생들 그림을 봐주느라 정신없이 지나갔다. 마침 10월이었다, 지금은.

 

 

“그거, 그만 두면 안 돼? 학원 말이야.”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냥. 너 바쁜 거 싫어서. 나 만날 시간도 많이 없잖아. 친구라곤 너밖에 없는데 너 바쁠까봐 아무 때나 연락도 못하고, 실기 앞둘 때면 얼굴 보기도 힘든 거 싫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우현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제 생각을 내비쳐본 적이 없는 성종이었기 때문이다.

 

 

“학원 그만 두면? 나 뭐 해먹고 살아?”

“돈 많이 벌어둔 거 아냐? 잘생기고 젊은 강사가 가르치기도 잘 한다고, 너 요새 제일 잘 나가는 강사라고 소문 자자해, 학부모들 사이에서. 물론 내가 학부모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작년에 네가 맡은 애들 다 우리 학교 보냈다며.”

 

 

핸들을 잡은 손이 유연하게 커브를 돌았다. 뜻밖의 칭찬 같은 말에 멋쩍은 웃음소리가 새나갔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미술 대학에 수석 입학한 우현은, 입학 때부터 졸업까지 ‘수석 입학’이란 타이틀에 걸맞는 학생이었다. 석,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교수로 부임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마다하는 우현에게 졸업을 앞두고 성종이 물었었다, 뭘 할 거냐고. 그때 우현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었다. 공부를 더 하는 것은 싫었으나 공부를 하고 있다는 틀에서 벗어나는 것도 싫었다. 아이러니한 고민이었다.

 

 

“그림 그려서 파는 건 어때? 너 졸업 작품도 미술관에서 연락 왔었는데 안 팔았잖아. 김명수 그 새끼 기획안 슬쩍 훔쳐봤는데 작품 꽤 비싸게 사들이더라. 그러고 보니까 졸업 작품은 집에 꽁꽁 감춰놨어? 오늘 오랜만에 보는 거야, 우현아?”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가 다정해서 속이 울렁거렸다. 응, 집에 있어. 짧은 대답과 함께 예쁘게 웃어 보이는 우현이었다.

 

멀지 않은 우현의 집에 도착한 성종은 몇 년 만에 와 본 그 집이 꽤나 낯설어서 잠시 두리번거렸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는 것 하나는 여전했다. 나 좀 씻어도 되지? 물음을 던져 놓고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겉옷과 양말 따위를 휙휙 벗어 거실 바닥에 툭툭 흘렸다. 우현은 그런 성종을 잠자코 바라보다가 작은 거실 한 켠에 마련해둔 제 작업 공간이나 마찬가지인 커다란 책상에 가 앉았다. 퇴근하고 돌아와 살펴보던 것들이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우현아, 들어가서 자자. 깜빡 잠이 들었는지 책상 위로 상체가 엎어져있었다. 머리 위로 들려오는 몽롱한 목소리와 어깨를 잡아 일으켜오는 서늘한 손. 고개를 돌려보니 수증기처럼 뽀얀 얼굴이 웃는 둥 마는 둥 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웃지 않는 반듯한 눈 아래로 입 꼬리만 끌어올린 얼굴. 우현은 제 손목을 잡아끌어 침실로 들어서는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어디서 찾았는지 성종은 헐렁한 우현의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뭐해, 이리 와.”

 

 

우현은 제 넓지도 좁지도 않은 침대 안쪽으로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고 눕는 성종을 멀뚱히 바라만 보았다. 재워 달라는 부탁에 부리나케 달려 나가 그를 데려온 건 사실이었으나, 정말 제 집에서 재워야 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 때처럼 게임을 하다가, 혹은 과제를 함께 하다가 시간이 늦어 좁은 자취방에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자던 때와는 다르니까.

 

너는 내가 했던 고백을 다 들었잖아. 그 때 아무 말 없는 네 앞에서 웃었던 나를 기억하잖아. 그 이후로도 너를 오랫동안 계속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 네 곁에 다른 사람이 생겼을 때도 나는 그냥, 친구로라도 너를 계속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는 거, 너 알고 있었잖아. 가장 오랜 시간을 가장 공을 들여 그렸던 내 졸업 작품, 그거 너를 위한 그림이었다는 것도 알았잖아. 네가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거. 네가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 단 한 번도 너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는 거. 다 알고 있었잖아, 모른 척 했을 뿐이잖아. 우현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그래서 그 때 그 감정들이 지금도 여전한지. 그리고 성종에게도 묻고 싶었다, 네가 보기에 나는 여전하니?

 

 

“우현아.”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리며 어서 올라와 누우라는 듯 구는 성종은 마치 집 주인 같았다. 누가 봐도 그 침대의 주인은 이성종처럼 보였다. 우현은 그 꾸밈없는 태도가 밉다가도, 잘 알고 있던 이성종 그대로의 모습이라 미워할 수도 없었다. 재차 이름을 불러오는 성종에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의 몸에 붙지 않으려고 침대 끄트머리에 몸을 가까이 했다.

 

 

“내가 너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우현을 향해 모로 누워있던 성종은 제 침대에 편하게 눕지도 못하는 그를 보며 웃었다. 우현은 그런 거 아니라며, 네가 불편할까봐 그렇다고 답했다. 그 말투가 하도 어색해서 성종은 피식, 피식 웃었다. 안쪽으로 들어와, 가까이와. 성종은 팔을 뻗어 우현의 가슴을 감싸 안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우현은 그가 하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여전히 서늘한 그 손이 옆구리께로 닿아오고, 단단하지는 못한 팔이 몸통을 감싸 오는 느낌에 세포 하나하나가 전율하는 것 같았다. 강하게 힘을 주지도 않은 그 손과 팔이 끌어당기는 대로, 그대로 끌려갔다. 성종의 몸에 밀착한 제 몸이 금방이라도 부들부들 떨 것만 같았다. 성종의 다 마르지 못한 머리칼에서 나는 샴푸 냄새와 옅은 술 냄새가 코에 낯설게 다가왔다. 몸통을 감싸왔던 팔이 떨어져 나가고야 참았던 밭은 숨이 쏟아졌다.

 

 

“나 좀 취했어, 알지?”

“넌 평소에도 좀 취한 사람 같아.”

“알아. 3학년 땐가 복학한 선배 하나가 나한테 그랬잖아, 마약 하냐고. 그 새끼도 정신 나간 새끼였어.”

“왜 이렇게 욕이 늘었어, 너.”

“그런 것 같아? 김명수 그 새끼 때문일 거야.”

 

 

우현은 천장을 향해 똑바로 누운 채 고개만 성종 쪽으로 돌려보았다. 여전히 우현을 향해 모로 누워있는 성종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입술만 움직이고 있었다. 두툼한 입술이 좀 부르튼 것 같았다.

 

 

“손님이 와서 밥 먹다가 술도 좀 마셨어, 그냥. 근데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좀 늦게 돌아온다고 내가 죽어? 술 좀 마신다고 내가 죽어? 아님 지가 죽어, 씨발. 너무 엿 같은 거야, 그게. 내가 문자 한 통 안 남기고 몇 시간 동안 연락 다 씹었으니 걔도 화 낼만 했어. 근데 그냥, 그냥…”

 

 

성종의 말은 느렸다. 그는 단어 두세 개 사이에 틈을 두었고, 문장 하나하나 사이에 뜸을 들였다. 평소에도 나른한 말투의 성종이었는데 술과 피곤 때문인지, 눈을 감고 입술만 움직이며 누워있는 그의 문장들은 혼잣말을 하듯 조용하고 몽롱했다.

 

 

“우현아, 네가 보기에 내가 그 새끼 때문에 망가지고 있는 것 같니?”

“…응?”

“나 뭔가 달라진 것 같으냔 말이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달라지진 않았는지 해서. 무슨 개소린가 싶지. 걔 만난 지가 벌써 5년? 6년은 됐는데.”

“명수랑 얘기 해 본 거야?”

“아니, 그냥 내가 막 화냈어. 걔 사정은 듣지도 않고. 근데 그거 들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래서 오늘도 걔 퇴근 시간에 도망 나갔다가…. 우현아, 있지.”

 

 

조금 뜸을 들이다가 제 이름을 불러오는 성종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감은 눈 사이로 눈물이 비집고 나오는 데도 꾹 참고 숨을 고르는 성종이 있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우현의 앞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던 성종이 울고 있었다. 우현은 조용히 몸을 돌려 성종을 바라보고 누웠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흐느끼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악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더 슬퍼서 우현은 성종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자식이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나 그냥…. 걔가 말하려는 그걸 들어버리면… 세상이 끝날 것 같은 거야. 내가 막… 죽을 것 같은 거야.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져 버릴 것 같고, 바다 속에 혼자 떨어져서… 죽지도 못하고 평생 고통스럽게 헤엄만 칠 것 같고. 뭔지 아니, 우현아.”

 

 

울음 때문에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는 성종의 모습은, 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 목소리처럼 처연했다. 어깨를 부들부들 떨어가면서 울음을 참으려고. 곧 터질 것 같은 그 울음을 참으려고 하염없이 눈물만 주륵주륵 흘리는.

 

 

“성종아, 네가 우니까 내가 꼭 그럴 것 같다. 네가 그렇게 우니까 세상이 끝날 것 같아, 지금.”

 

 

그제 서야 눈을 떠 바라본 곳에는 입술을 꾹 다물고 슬픈 눈을 한 우현의 얼굴이 있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그 얼굴이 미안했다. 우현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성종의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그 손목을 꽉 붙잡았다. 흠칫 놀란 듯 보이는 우현의 얼굴을 보고도 모른 척,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흡연을 하지도 않고, 이제는 직접 그림을 그리지도 않는 우현의 품에서는 담배 냄새도, 물감 냄새도 나지 않았다. 욕실에 있던 바디 용품들의 옅고 은은한 냄새였다. 열이 많은 우현이. 술을 깨려고 찬 물로 무식하게 씻은 탓에 차가운 제 몸에 비해 우현의 품은 한참이나 따뜻했다.

 

 

“내일은 집에 돌아갈게. 오늘만 이렇게 있어주라.”

 

 

그건 부탁인 것 같기도, 명령인 것 같기도 했다. 당연히 거절하지 못할 우현이란 걸 알아서 성종이 뱉은 말은 퍽이나 태연했다.

 

마른 어깨와 등을 감싸 안아 보았다. 몸은 말랐지만 그래도 남자인지라 체구가 작지는 않아서, 그 몸이 품에 쏙 들어오지는 않았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품을 파고든 성종의 머리통을 쓰다듬기도 해 보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뭐가 이렇게 다 어색한지. 잠이 올까 싶은 밤이었다.

 

 

 

*

 

 

 

출근 시간이 늦은 터라 오전 내내 뒤척거리며 계속 잠을 청하는 우현을 두고 그의 집을 나섰다. 묻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꺼내 입었던 그의 옷가지는 곱게 개어 방 한 쪽에 두었다. 불을 켜지 않았던 밤엔 어두워서 몰랐는데, 침실 벽 한 쪽에 그림이 있었다. 우현의 졸업 작품이었는데, 크기가 상당히 큰 그것은 벽 하나를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잠든 우현을 등지고 그 그림을 한참 쳐다보았다. 모래사막과 광활한 바다를 함께 표현한 그 그림은 전엔 본 적 없던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사막과 바다가 함께일 수가 있냐고 의문을 가졌던 어렸던 날의 성종에게, 졸업작품전에서 마주한 우현의 그림은 그 앞을 한참 동안 떠나지 못하게 했다.

 

 

‘나는 바다 속에서 살고 싶어. 언젠가 바다로 갈 거야.’

‘근데 가끔은 사막으로도 가고 싶어. 랭보처럼 살다 죽으면 좋을 것도 같아.’

 

 

우현의 그림 한 가운데에는 사람 하나가 서 있었는데, 형체를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크기였다. 성종은 그게 자신일 거라고 확신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명수는 이미 출근을 하고 없었다. 과음을 한 탓인지 속이 좋지 않아 라면을 끓여 국물만 대충 마시고 면발은 죄다 버렸다. 옷을 갈아입었다. 거울을 보고 머리칼을 정돈했다. 어느새 이렇게 또 길어버렸을까.

 

다시 마주한 김성규라는 사람은 예약이 가득 차 바쁘다 했던 어젯밤의 말과는 다르게 바로 와도 좋다며 명함에 적힌 사무실 위치로 오라는 말과 함께 통화를 마쳤다. 그 사람을 왜 다시 찾아왔는지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지만, 무의식에 몸을 맡기고 그렇게나 싫었던 대중교통까지 이용했다. 기분이 묘했다.

 

그곳에 오래 있을 생각도 없었고, 성규 역시 바빠 보였다. 다음 환자를 만나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성종을 부른 모양이었다. 성규는 별 다른 말은 없었다. 그저 어젯밤 연인과 다툰 이야기를 꺼내는 성종을 지켜만 보았다. 원래 정신병 치료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이 없는 걸까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던 그 날도 성종은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제 이야기만 늘어놓았었고, 두 번째 만남이었던 어제도 주구장창 자기 얘기만 했다. 성격인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듣고만 있던 성규가 책상 서랍에서 하얗고 작은 종이뭉치를 꺼내서 건네 왔다.

 

 

‘흡연 하실 때 담배에 이걸 수시로 묻혀서 피워보세요.’

‘뭐예요, 마약인가.’

‘의료용 약초를 말려서 만든 건데, 흡연자들에게 이렇게 처방해요. 정신 안정에 도움이 될 거예요.’

 

 

그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었으나, 건네 준 종이뭉치를 들고 그의 사무실을 나섰다. 실내에서 실외로 나오면 꼭 담배를 피워야만 하는 습관 같은 게 들어버려서, 성종은 건물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얀 종이 끝을 잡고 그것을 펼쳤다. 풀을 말려 가루를 낸 것 같은 것들이 그 안에 있었다. 담배 끝에 그걸 조금씩 톡톡 두드려 묻혀보았다. 잿빛 연기가 가을 하늘로 뿌옇게 올랐다.

 

 

 

 

 

 

 

 


대학은 다녀서 무슨 소용이지.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 분자가 왜 도출이 됐는지,

아인슈타인 놈이 무슨 말을 지껄였는 지가 무슨 소용이지.

그녀가 커피가 좀 쓰다고 하면 무슨 말을 해야할 지를 모르겠는데.




제목인 송오브송즈는, 성종이 그린 명수의 그림 이름인 '아가서'의 영문명 Song of Songs예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