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of Songs
김명수 김성규 남우현
이성종
송오브송즈 4
어젯밤에는 원고를 읽다 화장실에서 자위를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출판사에서 받아온 글은 선정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건전한 소설이었는데 말이다. 요 며칠 명수는 퇴근을 하자마자 집에 돌아왔다. 작업실에서 꼼짝 않는 성종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을 몇 차례 건네긴 했으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원고를 읽다 작업실에서 나와 보면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밥을 깨작거리고 있거나, 휑한 식탁에 가만히 턱을 괘고 앉아있거나 했다. 어제 혼자 화장실에서 성 욕구를 해소하고 나왔을 때에 그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흰 옷을 입은 명수의 등은 예쁘기도 했다.
그사이 한 번 더 만났던 정신과 전문의는 성종을 앉혀놓고 긴 시간 과거를 회상하게만 했다. 대체 이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 제 우울증이라는 것과 무슨 관련인지 미심쩍었지만, 성종은 제 연인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을 떠듬떠듬 꺼내보였다.
걔는, 그런 이상한 과일 맛 나는 담배 같은 거 피우는 애 아니었거든요. 같이 편의점 가면 항상 ‘마쎄 팩 주세요’ 하던 애였어요. 그거 일본 담배라고 피우지 말라고 잔소리도 엄청 했었는데, 나는. 근데 몇 년 전에 담배 이름에 ‘마일드’나 ‘라이트’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 담배가 독하지 않다는 이미지를 준다나, 그러면서 이름이 바뀌었어요, 메비우스로. 근데 마침 또 뭐 그게 방사능 담배라느니 하면서 난리난리를 치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래서 또 잔소리했죠, 방사능 먹고 뒤지려고 그러냐고. 잔소리를 하든, 담배가 이름을 바꾸든, 편의점 가면 항상 걔는 그랬어요, ‘마쎄 팩 주세요.’ 그 때는 이름 바뀐 지도 얼마 안 됐고 했으니까 편의점 알바들도 그거 다 알아들었을 텐데, 요새는 알바 하는 애들이 우리랑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어린 친구들이니까 모를 거예요. 편의점 사장님 정도면 아실 지도 모르겠다. 그랬어요, 암튼. 그런데 미술관 취직하고 몇 달 뒤부턴가, 갑자기 무슨 과일 향 나는 담배를 사서 피우는 거예요. 커피 향도 피워보고 무슨 요거트 향도 피워보고 그러더니, 맘에 드는 걸 찾았나 봐요. 청포도인 것 같던데. 나는 그런 건 별로예요. 걔한테서 나던 마쎄 팩 냄새, 좋아했는데. 현대미술사 수업 같이 들을 때, 강의 시작하기 전에 책상에 엎드려서 눈 감고 있으면 걔는 말없이 제 옆에 와서 앉았어요. 그럼 항상 고소한 냄새가 났는데, 고개 들어보면 걔가 말끔히 웃고 있었고요.
아, 걔랑 저는 2학년 때 만났어요. 전공 수업 이름을 아직도 안 잊어버려요, 걔 때문에. 현대미술사. 진짜 나는 그 수업 너무 지루하고 재미도 없었는데, 걔를 알게 된 이후로 그 수업 있는 날은 걔 옆에 앉아있는 재미 때문에 등교했던 것 같아요. 난 그 수업 들을 땐 항상 맨 뒷자리에 숨듯이 앉아있었는데, 걔도 늘 그랬어요. 타과 생이라 그랬던 건지, 뭐 이유는 모르겠어요. 둘이 항상 뒷자리에 앉았는데 타과 생인 걔가 수업은 더 열심히 들었어요, 나보다. 공부 하나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내가 엎어져서 잔 날이면 필기 한 거 보여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난 그다지 친화력 있는 사람 아니거든요, 성격이 좋은 편도 아니고. 그런데 이상하게 걔랑은 엄청 빨리 친해졌어요. 제가 봐도 걔는 연예인 해도 될 정도로 잘생겼거든요. 나이 몇 개 먹으면서는 잘 웃지도 않지만, 어렸을 땐 잘 웃기도 하던 애였는데 웃을 때 좀 멍청해 보이는 거 말곤 진짜 어디 흠 잡을 데 없게 잘생겼어요. 친하지도 않은 과 여자애들이 자꾸 와서는 걔 좀 소개시켜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너무 짜증났죠, 내가 걔한테 친구 이상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걸 나도 알았거든요. 그 때 아마 활짝 웃으면서 그 여자애들한테, 응 제발 꺼져, 라고 말했었을 거예요.
그런 얘기들이었다. 오래된, 오래 돼서 잊어버렸을 법도 한 그런 이야기들. 의사라는 사람은 듣는 일 외에 딱히 하는 게 없었다. 성종은 번번이 제 이야기만 늘어놓게 되는 이 상황들이 싫다가도 명수와의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일이 재밌기도 했다. 억지로 생각해내려고 하지 않으면 없었던 게 될 수도 있는 일들이 떠오를 때면 특히나 그랬다. 그 때는 아주 소중한 추억이었을 텐데, 잊지 않으려고 꼭 꼭 기억해 두려고 눈에 가득 담으려고 했을 텐데. 성종은 문득, 지금 이 의사 앞에서 하는 말들을 제 연인 앞에서 꺼낸다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미 다 잊어버린, 소중하지도 않고 아무 의미도 없는 추억들일까. 그런 것들을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나를 지독하다고 말할까. 그런 생각들이 스쳤다. 처방해준 약은 잘 복용하고 있냐는 물음에, 먹지도 못하는 말린 풀가루 따위나 준 주제에 물음이 꽤나 의사 선생 같으시다는 까칠한 대답도 잊지 않았다.
처방 받은 그 ‘약’은 잘 복용 중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은 거의 작업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 귀찮게 자꾸만 연락을 해대던 장팀장은 이상하게도 그 며칠 동안은 연락도 잘 없었고, 우현 역시 바쁜 모양인지 연락이 뜸했다. 성종은 먹고 싸고 자는 일 외에는 작업실에 틀어 박혀 느린 속도로 원고를 읽고 담배만 피웠다. 하도 담배를 많이 피우다 보니 담배를 사러 나가야만 하는 것도 귀찮아, 보루 째로 사다 놓고 집 밖으로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원고를 읽는 속도는 느리기 그지없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종이를 넘겨보다가 양치와 세수만 대충 하고 거실 소파에 몸을 뉘였다. 늦은 시간인데 자고 있을 명수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짧은 미팅이 있어 출판사에 들렀다. 원고는 다 읽었느냔 물음에 인상을 팍 썼다. 제시하신 날짜까지 아직 많이 남지 않았나요? 쏘아 붙이며 재촉하지 말라는 의사를 드러내니, 출판사 측에서는 알았다며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다. 독서에 취미가 없는 사람이 그림 한 장 그리려고 열심히 종이 뭉치를 넘겨가며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걸 알아주는 이가 한 명도 없다. 다음부턴 이런 제의가 들어와도 소설은 피해야겠다고 늦게 서야 다짐했다.
출판사에서 나와 보니 명수의 퇴근시간이 다 되었다. 오랜만에 외출을 한 날이라 그런지 오늘은 집에 바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당장 김명수의 얼굴을 보고 싶기도 했다. 요 며칠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한 탓일까도 싶었다. 출판사에서 거리가 좀 있는 그의 미술관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퇴근시간이라 북적거리는 그 기다란 운송수단 안에 몸을 싣는 게 끔찍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에게 출판사 주소를 문자로 보내주고 데리러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못되게 굴었던 게 미안해 오늘만큼은 퇴근 시간에 맞춰 직접 찾아가 사과라도 하고 저녁을 먹자 할 요량이었다.
“비나 와라, 씨발.”
결국 담배를 빼어 문 입술 새로 욕지기가 새나갔다. 횡단보도 너머로 보이는 미술관 앞에는 이제 막 퇴근을 한 김명수가, 자신을 기다리던 웬 여자와 함께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구두 굽 부러져라, 씨발년.”
*
명수는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내일은 그의 휴무일이었다. 미술관 앞에 갔다가 그냥 집에 돌아온 성종은 작업실에 틀어박혀 몇 시간 내도록 반 정도가 남은 원고만 들춰보았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담배만 피워댄 입에서는 단 내가 났다. 화풀이라도 하듯 괴팍하게 양치질을 하고 샤워까지 마치고 나왔더니, 이제 막 들어온 김명수가 서 있었다. 퇴근을 했음에도, 약속이 있어 집에 늦게 들어왔음에도, 연락 하나 없던 김명수가.
“어디 갔다 왔어? 왜 이제야 씻어?”
그의 물음은 너무 태연하게 다정해서 성종은 기분이 더 나빠졌다.
“딸쳤다, 왜.”
“…뭐?”
“딸쳤다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얼굴로 되묻는 명수에게, 오른 손으로 느슨하게 주먹을 쥐고 위아래로 흔들어 보였다. 성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었는데, 명수는 성종을 잠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 어제도 꼴려서 혼자 했어. 네가 웬 여자랑 섹스 하는 걸 상상했더니 미치겠더라고.”
명수의 얼굴을 노려보다 이내 시선을 거뒀다. 더 말해 뭐하나 싶은 심정이 되었다. 아무 말도 않고 묵묵히 서있기만 하는 그를 뒤로 하고 침실로 걸었다.
성종은 방의 불을 끄고 수면 등을 약하게 켜두었다. 잠은 오지 않고, 피폐해진 정신 때문에 피곤하기만 했다. 눈을 꾹 감고 벽을 바라보고 누워있으니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씻고 잘 준비를 마친 김명수이리라. 성종은 자는 척을 하려고 일부러 돌아보지도 않았고, 죽은 듯이 숨만 쉬며 움직이지도 않았다. 옷가지를 걸어놓는지 옷장을 여는 등의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묵직한 몸이 침대 위로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성종아.”
단정한 그 목소리가 듣기가 싫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사과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다시 이렇게 꼴도 보기가 싫어졌는지. 예쁜 말은 단 한 마디도 못 할 것 같아 오늘은 대화를 하면 안 되는 날이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화는 내면 낼수록 더 커질 테니까. 이렇게 싸우는 날만 계속 되다보면 언젠가는 싸우지도 못할 날이 올 지도 모르니까. 자는 척을 하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 성종이었다. 그런 성종의 뒤로 가까이 밀착해 온 명수는, 팔 하나는 성종의 몸 아래로 끼워 넣고 다른 하나는 몸 위로 둘러,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얇은 티셔츠 위로 닿아오는 따뜻한 체온은 차갑지도 않은데 성종은 소름이 돋았다.
“성종아, 나 좀 봐봐.”
명수는 성종의 어깨에 고개를 괴고 제 볼을 성종의 볼에 부비적거렸다. 한동안 본 적도 없는 낯선 애교에 성종은 그가 취한 건가 싶었지만 술 냄새라고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게 더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안 자는 거 다 알아. 나 좀 봐봐, 응? 나 좀 안아줘.”
이건 또 무슨 괘씸한 태도일까 싶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불같이 화를 내고 집을 나가 외박을 하고, 돌아온 후 며칠 동안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했기로서니 저도 똑같이 연락 한 통 없이 다른 사람을 만나느라 밤늦게야 집에 들어와 놓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취하는 저 태도는. 성종은 그것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감았던 눈을 뜨고 몸을 돌렸다. 옅게 미소를 짓고 있는 명수의 얼굴이 보였다. 때려줘도 시원찮을 얼굴이었다.
“무슨 개소리야, 너 자꾸.”
“아직도 화 안 풀렸어?”
“그게 지금 할 소리니?”
“내가 연락도 없이 늦어서 화났어? 미안해.”
미안하단 말을 너무도 순순히 내뱉는 저 입술은 분명 그것 말고도 할 말이 있을 텐데. 그걸 추궁해야 하는 건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실을 따지고 들어야 하는지 분간이 서지 않았다. 성종은, 명수가 오늘의 일, 그러니까 그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에 대해서 당연히 용서 해줄 거란 착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나 그에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 부분에 대한 해결을 보려고 했던 적은 없는 성종이었으니까. 미안하단 말이면 충분할 지도 모른다고, 이성종에겐 김명수밖에 없어서 그 정도 방황 정도는 받아줄 거라고. 미안하단 한 마디로 시작된 피해망상은 끝도 없이 불어나서 성종은 머리가 아팠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화를 내고 짜증을 내야만 할 것 같았다.
“미안해? 연락도 없이 늦어서?”
“……”
“네가 오늘 만나고 온 여자에 대해선 안 미안하니?”
성종은 몸을 일으키고 앉아 누워있는 명수의 예쁜 입술만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퇴근 시간에 미술관 앞에 갔다가 다 봤어. 웬 여자랑 같이 어디 가더라, 너.”
“성종아, 그건,”
“닥쳐, 듣기 싫어.”
“성종아!”
오늘도 한 침대에서 같이 자긴 글렀다 싶어 이불을 들춰내고 일어나려 했더니, 명수의 손이 우악스럽게 손목을 잡아왔다.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급했는지, 손목을 너무 세게 잡아당긴 탓에 몸이 통째로 쓰러졌다. 다시 침대에 등을 대고 누운 꼴이 된 성종은 제 위에 올라타 앉아있는 명수가 어이가 없었다.
“뭐하니, 너. 비켜.”
“못 비켜.”
“어쩌자는 건데.”
명수는 한 동안 대답이 없었다. 성종은 잠자코 있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갑자기 졸음이 확 몰려오는 것 같았다. 반쯤 감긴 눈을 마저 감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명수를 쳐다보았다. 또렷하게 뜨지 못한 눈꺼풀 사이로 김명수의 처연한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예쁘고 고운 얼굴이었다. 끝이 살짝 젖은 머리카락을 살살 털어 말려주고 싶었다. 새카만 눈은 깨나 슬퍼보였지만 뭐가 그리 슬픈지 알 수가 없었다. 꾹 다물린 입술을 게슴츠레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잘생긴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명수는 성종의 얼굴 왼쪽으로 제 얼굴을 파묻고 성종의 몸을 가득 끌어안았다. 성종은 커다란 그의 몸 아래에 깔리듯이 누워있는 데다, 안아오는 힘이 강해서 숨이 막히는 것도 같았다.
“내가 다 미안해, 성종아.”
“꺼져, 김명수.”
“성종아.”
“꺼지라고, 좀!”
성종은 주먹을 쥐어 명수의 등을 내리쳤다. 무릎을 접어 발을 들어 명수의 다리를 차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끄떡 않고, 아픈 기색도 없이 성종을 끌어안은 팔에만 힘을 더 주었다. 온몸을 비틀며 발버둥을 치는 성종에 명수는 꼭 울 것 같은 목소리로 그의 귀에 대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죽여, 성종아. 나 네 품에서 죽으면 지금 죽어도 좋아.”
“씨발 새끼야,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꺼져, 제발.”
한참을 발버둥 치던 성종은 결국 무거운 그 몸을 밀어내지 못하고 거친 숨을 쉬었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근본도 없고 개연성도 없는, 대뜸 죽여 달라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이대로 딱 그냥 죽어버렸으면 싶은 건 오히려 자신이었다. 그동안 명수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나 싶어졌다. 여전히 확실히 믿을 수는 없으나,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는 그 진단의 원인이 정말 김명수인가 싶어진 거였다. 나를 병신으로 만들고 있는 건, 내 연인 김명수인가. 나를 정신병자로 만들고 있는 건, 내가 몇 년을 바쳐 사랑한 김명수인가. 성종의 양 눈 꼬리를 타고 눈물이 비죽 흘러나왔다. 성종의 왼쪽 얼굴에 제 얼굴을 붙이고 있던 명수는 뜨거운 물 같은 게 볼에 닿아오는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마주 본 곳에는 눈물을 잔뜩 흘리고 있는 사랑하는 성종의 얼굴이 있었다.
“개새끼야.”
“성종아.”
“이 씨발 새끼야.”
명수는 몸을 부둥켜안고 있던 팔을 풀어내고 손을 올려 성종의 눈물을 닦아냈다. 누워있는 탓에 귀 쪽으로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아보겠다고, 성종의 조그만 얼굴을 양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붉은 입술로 내뱉는 말들은 예쁜 성종과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으나, 듣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잠자코 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과 턱. 잠시 고르지 못한 숨을 내뱉던 성종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널 어떻게 죽여.”
“성종아.”
“네가 있어야… 내가 살아있는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성종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잠시 가만히 있었다. 여전히 눈물을 내보내고 있는 눈을 감지도 뜨지도 못하고 그렇게 그냥 가만히 있었다. 제 입술에 닿아온 연인의 입술이 익숙하다가도 낯설었다. 말을 끊어내고 불쑥 찾아온 그 얄쌍한 입술이 미운 건 아니었는데, 그래서 어쩔 줄을 몰라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있었다. 그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입술은, 급하게 다가와 놓고는 본인도 제 행동에 놀란 모양인지 아랫입술을 지분거리기만 했다. 그러기를 한참, 윗입술을 제 입술 사이에 가득 머금었다가 다시 아랫입술로 돌아왔다가 또 윗입술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명수의 고개가 살짝 비틀어지고 제 입술과 그의 입술이 맞물리듯이 딱 들어맞던 그 순간에, 성종은 양 팔을 들어 명수의 목을 감싸고 뒷머리를 손에 가득 그러쥐었다. 뜨겁고 말캉한 혀가 입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성종은 그제 서야 눈을 감았는데, 제 입술에 붙어있던 명수의 입술이 턱을 타고 내려가 목덜미를 지분거리다, 가슴께로 내려가는 느낌에 다시 눈을 떴다. 지금 그냥 죽어버렸으면 싶은 건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뜨거운 숨결이 닿아오는 곳마다 죽었던 세포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밭은 숨이 입술을 뚫고 나와 공기 중으로 섞여들었다. 손을 얹고 있던 뒤통수의 머리칼을 조금 세게 그러쥐니 성종의 가슴께에 머물던 명수의 얼굴이 그를 바라본다.
“명수야.”
“응.”
“너, 되게 반짝반짝해.”
“나도 사랑해, 성종아.”
*
휴일 아침은 따뜻하고 평온했다. 근무지가 없는 성종에게는 출근할 곳 역시 없는 터라, 명수의 휴일이 자신의 휴일이기도 했다. 휴일 전 날에는 보통 거실에 앉아 함께 맥주를 마시며 늦게까지 영화를 보곤 했다. 가끔은 심야영화를 보러 가까운 극장에 가기도 했으나, 계절에 따라 집밖으로 나가기 싫은 때가 많았다. 밤늦은 시간까지 영화 두세 개를 몰아보고 나면 대개 명수는 성종의 무릎에 고개를 누이고 잠들어 있었다. 그들의 영화는 보통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최신 영화로 시작해서 명수가 좋아하는 오래 된 영화로 끝을 맺곤 했는데, 성종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놓고 잠들어 버리는 명수를 타박하기도 했다. 그렇게 긴 밤을 보내고 다음날 일어나면 해는 항상 중천에 떠 있었다.
웬일로 일찍 눈이 떠져 시간을 확인해 보니 고작 8시쯤이었다. 블라인드를 걷어놓은 탓에 침실로는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을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고개를 틀어 옆을 보니 명수의 얼굴 위로 그 햇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희고 반짝거렸다. 잠든 얼굴은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한데, 그 몸은 뭔가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성종의 몸을 잔뜩 끌어안고 있었다. 손을 들어 반짝거리는 그 얼굴을 쓰다듬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 너는. 네가 누굴 죽였대도 너를 떠나지 않을 내가, 여기 이렇게 있는데. 명수야, 뭐가 그렇게 무서워.”
성종은 작은 목소리로 떠듬떠듬 잠든 명수 앞에 말을 꺼내놓았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목소리는 볼품없었다. 어차피 듣는 이도 없으니 개의치 않았다. 좀 더 자야할 것 같았다. 안겨있는 그대로가 포근하고 좋아서, 성종은 따뜻한 명수의 품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깊게 파고들었다. 단단한 팔이 성종의 몸을 더욱 가득 끌어안아왔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때는 정오쯤이었다. 따스했던 기운이 사라지고 서늘해진 옆자리가 느껴져 깨어보니, 명수가 그곳에 없었다. 양손으로 눈을 비비적거리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담배를 먼저 피워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상하게 요즘 담배를 피우는 횟수가 늘었고, 담배에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수시로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초조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침실에서 나와 보니 명수는 욕실에 있는지,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기지개를 크게 키며 거실을 가로질렀다. 작업실에 들어가 담배를 꺼내들었다. 그 옆에 있던 정신과 의사에게서 받아온 치료약도 잊지 않고 펴들었다. 조금씩만 복용하라고 했던 그것을 성종은 많이 복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횟수도 많을뿐더러, 담배를 피우는 사이사이 타들어가는 담배 끝에 톡톡 조금씩 묻혀 피우던 그것을 요즘은 꽤 많이 묻혀 피우고 있었다. 그것이 중독 증세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그걸 복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머릿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넓고 파란 초원 위에 혼자 누워, 풀들이 간질이는 것을 가만히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담배를 피우고 있노라니 명수가 작업실 안으로 들어왔다. 등 뒤에서 가득 끌어안아 오는 몸이 아침과는 다르게 차가웠다. 명수는 양 팔로 성종의 배를 감싸 안고, 고개를 성종의 오른쪽 어깨에 올렸다.
“나도. 나도 담배.”
“네 거 피워.”
“싫어. 네가 피우던 거 줘.”
성종은 피실피실 웃다가 명수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는 대신, 얼마 남지 않은 그것을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제 얼굴 바로 옆에 있는 명수의 입술로 가까이 다가갔다. 얇게 벌려져 있던 그 입술에 제 입술을 끼워 맞추고 담배 연기를 훅 뿜었다. 명수가 얼굴을 떼어내며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낮게 웃는 성종의 입술 새에서 남은 연기들이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담배 냄새가 좀 이상해.”
“과일 맛 담배 피우는 너한텐 이상하겠지.”
기침을 하다 목을 가다듬고 건네 오는 말에 성종은 미소 짓고 있던 그 얼굴로 태연하게 답했다. 마지막 한 모금을 더 빨아들이고 짧아진 꽁초를 탁자 위에 있던 재떨이에 비벼 껐다. 여전히 성종의 몸을 꼭 안고 있는 명수 탓에 조금 움직이는 것도 번거로웠다. 성종이 손에서 담배를 내려놓자 명수는 그의 몸을 돌려 가슴을 맞대고 다시 그를 안았다. 성종은 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지는 상체를 명수에게로 기댔다. 맞닿은 가슴에서 그의 심장 박동이 미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뭐 읽고 있어, 요즘?”
“원고.”
명수는 성종의 대답이 너무 짧고 간결해서 서운한 기분이 되었다. 그 성의 없는 대답이 괘씸해서 손가락을 세워 성종의 옆구리를 간질였다. 간지럼을 많이 타는 성종은 그가 그렇게 간질일 때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해. 소설이야, 소설.”
원치 않은 웃음이 터져 나와 성종의 목소리에 섞여들었다.
“무슨 내용인데?”
“다 안 읽었어.”
굵고 커다란 손이 다시 성종의 옆구리를 간질였다. 성종은 간지럼을 못 참고 온 몸을 비틀었다. 성종의 웃음소리가 괴롭게 들리는 반면, 그걸 듣고 있는 명수의 웃음소리는 즐거워 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웃다 명수가 간질이던 손을 멈추고 다시 가득 끌어안아주자 성종은 입을 열었다.
“어떤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어서 감염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사람들은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지옥 같은 세상 이야기야. 살아남은 사람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여정을 떠나고.”
“무서운 이야기네.”
“응. 여자 애 둘이 나와. 사랑 같은 거 없는 세상에서 사랑이 중요하다는 걸, 우리 삶에 사랑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려는 것 같은 주인공들. 뭐 출판사에서는 그렇게 설명 해줬는데, 난 아직 잘 모르겠어.”
“재미있어? 너 다 읽으면 나도 읽어볼까?”
명수는 성종이 조곤조곤 말을 할 때마다 제 어깨 위에 닿은 그의 턱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느낌들이 좋았다. 이성종 특유의 목소리도, 말투도. 하나같이 다 오랜 시간을 사랑해왔던 것들이었다. 그의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랜 시간 보아온 것은 자신뿐이라고 늘 생각했다.
“엄청 마음에 드는 대사가 있어서.”
“뭔데? 알려줘.”
“내가 ‘꼭 나의 너 같네.’라고 말하면 도리가 ‘응?’이라고 되물어. 그럼 나는 ‘내용은 모르지만 자꾸 생각나는 거.’라고 대답해.”
“자꾸 생각나는 거. 너한텐 나야?”
성종은 명수의 물음에 잠시 말을 잃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명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넌데?”
“나도 너였지.”
“뭐야, 왜 과거형이야?”
“요즘 네가 좀 밉거든.”
성종은 맞닿았던 가슴을 슬며시 때고, 힘없이 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명수의 얼굴을 마주보고 섰다. 양 손으로 그 조그만 얼굴을 가득 쥐어보았다. 그세 살이 좀 빠진 걸까. 그의 잘생긴 턱 선이 더 뚜렷해진 것 같았다.
“키스 해줘.”
짧은 말을 남기고 가만히 있노라니 연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가늘게 뜨고 있던 그의 눈이 감기고, 얇게 벌어졌던 입술이 제 입술과 겹쳐져 오는 걸 보고, 느꼈다. 김명수는 한참 동안 그렇게 성종의 입술을 물고 있다가, 고개를 때었다. 슬몃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연인의 얼굴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성종은 그의 잘생긴 얼굴을 하나하나 꼼꼼히 훑어보았다. 눈썹에서 시작해, 눈, 코로 내려와 인중을 타고 입술까지. 완벽한 김명수. 모난 데가 없는 김명수. 죽은 몸이 썩지 않는다면 이대로 죽여서 평생 두고 보고 싶은 김명수. 늙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을 것만 같았던 스물 세 살의 김명수. 앳됐던 6년 전보다 지금의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리는 이성종의 연인, 김명수.
성종이 어깨 위로 팔을 둘러 안아왔다. 마른 가슴팍이 다시 닿아오고, 조금 긴 머리칼이 옆얼굴을 간질였다. 성종의 담배 냄새가 훅 다가왔지만 어느 하나도 싫지 않았다. 손을 들어 그의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반짝반짝한 우리 명수.”
“나 사랑해?”
“……”
“성종아. 나, 사랑해?”
“사랑이 뭔데?”
성종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싸늘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할 말을 잃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사랑이 뭔지 대답해 줄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성종을 사랑하는가. 그 물음에는 항상, 그렇다고 대답하는 게 당연했던 명수였다. 사랑이 무언진 잘 모르겠지만 내가 너에게 느끼는 이 감정들이 사랑이라면, 나는 너를 사랑해.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진 못했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끌어안고 있는 성종의 납작한 가슴이 규칙적으로 느리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혼란스러운 눈동자가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 때 명수의 눈으로 낯선 것들이 들어왔다. 바로 옆에 있던 탁자 위였다. 좀 전 성종이 담배를 비벼 껐던 재떨이가 있는 그 탁자. 재떨이 옆으로는 성종의 담뱃갑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가루들, 그리고 흰 명함이 하나 있었다. 명함에 쓰인 이름을 보았다. 김 성 규.
“김명수.”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왜 아무 말이 없어, 너. 밥 먹자, 배고프다.”
명수는 그러자는 대답을 짧게 남기고 제 품에서 벗어나려는 성종을 놓아주었다.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
내 인생의 A, B, C가 아니라 완벽한 고유명사로 기억될 사람이. 어떤 이는 지름길로 나타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가장 먼 길을 지난하게 지나고 모든 것이 무감 해진 때에야 비로소 거기 있는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기적을 만나려면 그곳까지 가야한다.
성종이 읽고 있는 원고 속 제가 정말 좋아하는 그 대사는, 최진영 작가의 소설인 '해가 지는 곳으로'의 일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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