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of Songs




김명수 남우현

이성종




송오브송즈 7




“아쿠아 파이브요.”

“네?”

“팔리아멘트 아쿠아 파이브 하나 주세요.”

“아, 네.”



성종은 담배를 요구하는 제 말이 불친절했다는 생각은 뒷전으로 한 채, 늘 피우던 담배의 풀네임을 다시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알바생이 바뀌었다. 전에 있던 애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서는 내 얼굴만 봐도 내가 피우는 담배를 꺼내 바코드까지 찍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성종은 항상 담배를 사러 오는 집 앞 편의점에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돌아온 집에 김명수는 없었다. 휴무일이니 출근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오후에 잠깐 무슨 미팅이 있을 거라고 한 것도 같았다. 다행이었다. 지금 당장은 그의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으니까.


편의점에서 나와 포장을 뜯은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 있던 그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저씨! 명수오빠는요?”



뒤를 돌아본 곳에는 거의 1년 가까이를 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여자애의 얼굴이 있었다. 그 애가 처음 편의점에 나타났을 땐 고등학교 3학년짜리였다. 붙임성이 워낙 좋은 애였다. 성종 혼자 담배를 사러 올 때에는 살갑게 인사만 하는 게 전부였는데, 언젠가 명수와 함께 편의점에 갔을 때엔 눈을 초롱초롱 뜨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성종은 그 때 그 애가 김명수에게 반했다는 걸 깨달았는데, 눈치 없는 김명수는 그 애가 자신을 1년 째 좋아하고 있다는 걸 여전히 몰랐다. 성종은 그 애가 여전히 자신은 ‘아저씨,’ 명수는 ‘오빠’라고 부르는 게 기분이 나빴으나, 이미 여러 번 그 문제로 귀여운 말다툼을 나눈 후라 이젠 그걸 고쳐보겠다는 마음도 접었다.



“김명수 죽었어.”



성종의 퉁명스런 대답에 스무 살짜리는 에에엑! 진짜요?! 라며 과한 리액션을 보였다. 성종은 그저 시큰둥한 얼굴로 피우던 담배를 마저 피웠다. 어차피 속아 넘어갈 거란 생각으로 던진 농담도 아니었고, 이 스무 살짜리는 그런 낡아빠진 농담에 속아 넘어갈 아이도 아니었다.



“아저씨가 죽였어요? 언제? 어떻게? 왜?”



성종은 저보다 머리통 하나가 작은 정도의 키를 가진 여자 애를 심드렁하게 내려다보았다. 처음 봤을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성인이 되어서인지 조금 성숙해진 것 같다는 것. 그리고 화장술인지 의학기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목구비가 조금 예뻐졌다는 것. 그렇지만 저 장난스런 말투와 목소리, 얼굴은 한결같다. 제발 내가 장난을 더 칠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저 개구쟁이 같은 눈동자. 대답이 시원찮으면 아저씨 노잼, 이라며 입술을 일그러뜨릴 것 같은 기대에 찬 저 눈빛.



“내가 죽였으면 뭐, 어쩔 건데.”

“명수오빠한테 고백하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죽여 버려서 못 하잖아요.”

“너는 그 자식 어디가 그렇게 좋니?”



짧게 타들어간 담배 때문에 연기가 얼굴에 가깝게 올라와 눈이 따가워지는 걸 느꼈다. 눈물이 살짝 배어 나왔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서있지 않았는데, 성종이 일부러 소녀에게서 몸을 틀어 담배 연기가 그 애에게 가지 않게 한 거였다.



“잘생겼잖아요.”

“…그게 다야?”

“네! 아저씨는요?”

“나, 뭐.”

“아저씨는 명수오빠 왜 좋아하냐고요.”



그게 티가 났나. 이 어린 애는 이웃에 사는 동네 게이 둘을 보고도 태연하다. 하긴, 요즘 세상에 동성애자라고 비하하는 게 더 이상한 건가. 성종은 마지막 모금을 머금고 꽁초를 바닥에 버렸다. 소녀에게 담배 연기가 가지 않도록 고개를 완전히 돌려 연기를 뿜었다. 골목을 돌아 우현의 차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잘 지내라, 꼬맹이. 이 아저씨는 이사 간다.”

“이사요? 어디로? 명수오빠도 같이?”

“그 자식은 여기 있을 거야.”

“그럼 아저씨 혼자 가요?”



그세 정이 좀 들었는지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하니 서운한 맘이 들었다. 조그만 여자 애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괴팍하게 쓰다듬었다.



“아니, 내 새 애인이랑.”



성종은 마침 제 앞에 정차한 차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 타기 전 소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녀는 멀뚱히 성종의 손바닥을 보다가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얼굴을 보려고 하는지 고개를 기웃거렸다.



“누구야? 아는 사람 중에 저렇게 어린 여자 애가 있었어?”

“김명수 팬.”

“팬?”

“응, 내 라이벌이었어.”



우현은 소리는 내지 않고 피식 웃었다. 그 의사란 사람에게 데려다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성종에게 전화가 왔었다. 집 앞으로 데리러 와 달라고. 대화를 잘 하고 오긴 한 건지, 무슨 얘길 듣고 왔는지 궁금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성종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릴 우현이었다. 다만 걱정했던 것보다 성종의 얼굴이 나빠 보이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냥 아무 데나 잠깐 드라이브를 하자는 말에 우현은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목적지 없이 차는 출발했다.



“우현아.”

“응?”

“궁금해 죽겠지?”

“어? 뭐가?”

“내가 의사 선생한테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지?”



대답 대신 성종의 얼굴을 잠깐 돌아보았다. 여전히 그 얼굴엔 특별한 표정이 없었다. 가끔은 모든 게 무료해 보이는 그 얼굴 때문에 이성종이란 사람은 과연 감정이란 게 있는 사람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9년 전, 스무 살에 처음 만났던 그 때부터 그랬다.



“나 너 따라갈게.”

“뭐?”

“프랑슨지 어딘지. 같이 가자고. 나 데려가.”

“너 진심이야?”

“너는 진심 아니었어?”

“성종아.”

“나 모아둔 돈도 별로 없고, 프랑스어도 할 줄 몰라. 네가 나 먹여 살려. 책임 져야 돼. 내 비행기 값은 내가 낼게.”



충격적인 고백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멍청한 표정으로 성종을 한참 바라보았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겠다는 우현의 통보를 듣고 발끈하던 이성종과는 차원이 다른 태도였다. 남의 일엔 예민하게 구는 구석이 있으면서, 자신의 일엔 이상하리만치 태연할 때가 있다. 우현이 보아온 성종은 그렇게 가끔 묘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겼기에 몇 시간 사이에 그런 결정을 내린 건지는 모르겠으나 우선은 지켜봐야 할 일인 것 같았다.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뒤의 차들이 울리는 클랙슨에 정신이 들었다. 놀란 마음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엑셀을 밟았다. 성종아, 너를 만드는 건 대체 무엇이니?




*




“어딜 간다고요?”



성종은 우현에게 갤러리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목적지 없이 한참을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우현의 차는 결국 다시 익숙한 동네로 돌아와, 익숙한 성종의 전시가 진행 중인 갤러리 앞에 섰다.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차에서 내려 갤러리로 들어가는 성종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본 우현이었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반갑게 맞아주는 동우에, 성종은 이례 없던 얼굴로 웃어보였다. 동우는 본 적 없는 그렇게 웃는 얼굴이 무섭게 느껴졌다. 다른 때라면 웬일로 왔냐는 말로 시작해 이런 저런 수다를 늘어놓았을 텐데, 성종의 그 얼굴은 섬뜩하기도 했다.



“도망가요, 프랑스로.”

“프랑스요? 무슨 일 있어요? 어, 언제 가는데요?”

“곧 가요. 겨울 중에. 장팀장님, 죄송하지만 전시회 정리 해주실 수 있을까요? 두 달이나 남았는데 마무리 못 짓고 가서 죄송해요.”

“아니요, 못 해요.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계약 위반이에요, 이거.”

“죄송해요. 당장 정리하는 게 어려우면, 일정 다 끝나고 제 그림들은 장팀장님이 좀 맡아주세요.”

“아니요, 싫어요. 이선생님이 직접 와서 가져가세요.”

“그럼 김명수 연락처 알려 드릴게요. 전시 일정 끝나면 걔한테 그림 가져가라고 하세요. 걔라면 아마 제 그림 가져갈 거예요.”



황망한 시선으로 성종을 바라보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손가락을 움직였다. 곧 동우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한 통 왔다. 성종에게서 온 김명수의 연락처였다. 동우는 제 전화기를 보다가 다시 성종의 얼굴로 시선을 두었다. 이상하리만치 태연하고 평온해 보이는 저 얼굴은 어떤 이유를 숨기고 있는 걸까. 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건지, 가긴 어딜 가냐며 절대 전시회 못 접는다고 붙잡아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엘킴님은 같이 안 가시는 거예요?”

“네, 저 혼자 망명가는 거예요. 죄를 하도 많이 지어서.”

“대체 이유가 뭐예요, 이선생님.”



죄를 많이 지었다는 말을 하는 성종의 표정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걸까, 왜 사랑하는 사람은 남겨두고 혼자 간다는 걸까. 동우는 성종의 뒤로 보이는 메인작품을 힐긋 보았다. 헤어진 걸까. 헤어졌다면 그림을 저 사람에게 맡겨달란 말은 하지 않을 텐데. 머릿속을 스치는 짧은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끝나지 못한 그 생각들 사이에 ‘선택에 대한 존중’이란 결론을 쑤셔 넣었다. 아직 어려, 라고 하기엔 적지는 않은 나이인데, 그런 때에 이런 선택을 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걸 테니까. 그리고 그런 선택을 말리거나 떠난다는 사람을 붙잡기에 성종과의 관계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3년 전 성종의 첫 전시에서 처음 만나 이어진 인연이 이번 전시까지 온 거였고, 성종에게 동우는 제 전시회의 기획자일 뿐이고, 동우에게 성종은 전시회에 작품을 걸어준 작가일 뿐이었다. 동우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장 전시회를 접는 것도 할 수 없지만, 떠난다는 사람을 붙잡을 자격도 없었다.


성종의 그 쓸쓸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이고,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고, 이유가 없는 것도 이유라고.”




*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은 성종이라 떠난다는 소식도 알릴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성격부터가 누군가와 꾸준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거나, 무슨 소식이 있을 때마다 매번 알린다거나 하는 성격이 못 되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평생 살았던 한국을 갑자기 떠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갤러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부모님껜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어떤 말로 어떻게 설명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특히나 아버지는 네 멋대로 하라며 내놓은 자식 취급을 할 것이 뻔했다. 괜찮았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갑자기 웬 프랑스냐며 놀란 기색을 내비치셨지만 가지 말라거나 하는 부정의 표시는 없었다. 천천히 걸으며 통화를 마치니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로써 성종은 모든 사람에게 통보를 마쳤다. 이제 김명수에게만 말하면 되는 거였다. 난생 처음으로 사랑한단 고백을 한 게 불과 오늘 아침이었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성종은 바로 명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무얼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명수는 현관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서 있다가 성종이 들어오는 걸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성종은 생각했다, 그런 얼굴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왔지만 걸음이 머뭇거렸다. 다른 할 말이 머릿속에 가득 차 저녁은 먹었느냐 묻는 명수에게 대답을 해주지 못 했다. 좀 먼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성종은 무얼 망설이냐며 스스로를 재촉했다.



“헤어지자, 명수야.”



그 말이 그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장난으로 들렸을까? 아니면 그 짧은 말을 통하여, 그동안 말하지 못 했던 사실들이 밝혀졌다는 걸 눈치 챘을까? 성종은 숨을 죽이고 명수의 눈 대신 입술을 바라보았다. 저 입술은 과연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 대답을 하긴 할 것인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는 괴상한 생각도 들었다.



“남우현이 말해줬어?”

“의사한테 들었어.”



성종은 의외로 침착한 명수의 반응이 의아했다. 모든 사실을 알리게 되었을 때 성종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사람처럼 명수는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랬구나. 미안해. 하나부터 열까지 미안하지 않은 게 없다. 뭐부터 말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미안해, 성종아.”

“그래. 그러니까, 이쯤에서 그만 하자, 우리.”



명수의 사과가 맘에 들지 않지는 않았다. 아니, 간결하고 좋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이 미안한 지 다 듣고 있었다간 속이 병들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다른 사람을 만난 일, 책임 지지 못할 것을 저지른 일, 그 이후로도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받은 일. 성종은 그 마지막에 ‘그가 지금껏 자신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을 일’을 제외 시켰다. 명수가 고백을 하려했던 몇 번의 시도를 기억하고 있고, 그걸 번번이 막았던 건 다름 아닌 성종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



이별이란 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던가.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6년이란 시간이 별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너희는 평생 갈 줄 알았냐며 놀리는 것처럼. 그래서 대체 사랑이 뭐냐고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성종은 혓바닥을 슬쩍 내밀어 마른 입술을 적셨다. 명수가 무슨 말을 더 할 것 같았다.



“같이 사는 것까지도 안 바랄게. 네가 원하면 따로 살아도 괜찮아. 대신 너 보고 싶을 때마다 만날 수 있게는 해주라. 그냥 잠깐 밥 먹거나 커피만 마셔도 좋아. 매일매일 연락해서 귀찮게 하지도 않을게.”

“……”

“그 정도 마지막 기회는 주라, 성종아.”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좀 전까지만 해도 놀라거나 슬픈 기색이 없던 명수였는데, 용서를 구하는 저 모습은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시선을 둘 곳을 못 찾고, 입술은 떨리는 것도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싶지만 사실은 지금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좋을지 모르겠는 사람 같았다. 성종은 차마 그 모습을 계속 볼 자신이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 덤덤하게 얘기했던 것처럼 명수에게도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었는데. 꾹 감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나 한국 떠날 거야. 우현이랑.”

“…뭐?”

“그래서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이번 겨울에 갈 거야. 언제 올지는 몰라. 그러니까 마지막 기회라느니 그런 미련 버려.”

“이성종!”



감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면 그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가까이 다가오지 싶던 명수의 두 손이 양 어깨를 붙들어 왔다. 강하게 잡아오는 그 손에 몸이 작지 않게 흔들렸다. 얼굴 바로 앞에서 이름을 힘주어 부르는데도 눈을 뜨고 쳐다볼 수가 없었다. 동요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소리치지 마. 김명수 너, 화낼 자격 없어.”

“내가… 내가 어떻게 할까, 성종아. 내가 어떻게 해야 너 안 보낼 수 있어, 응?”

“네가 뭘 해도 난 갈 거야. 너 다 용서할 거고, …그리고 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다 잊어.”

“이성종!!”

“없었던 일인 듯 살아.”



성종의 감은 두 눈 사이를 비집고 눈물이 새나왔다. 성종은 눈물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랫입술만 꾹 깨물다가, 어깨를 흔들며 이름을 외쳐오는 명수에 눈을 떴다. 그 얼굴이 덩달아 울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성종은 눈 안 가득 들어온 명수의 우는 얼굴이 흐릿하게 보여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그 때마다 굵은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어떻게 너를 잊고, 네가 없었던 듯이 살아!”

“그렇게 못 하겠으면 하지 마! 평생 그렇게 나 끙끙 앓으면서 살아. 난 너 다 잊고 살 거니까.”



바로 앞에서 소리를 쳐대는 명수에 머리가 아팠다. 안 그래도 두통을 앓는 요즘이었는데, 누군가 얼굴 앞에서 큰 소리를 내니 더 아픈 것 같았다. 그럴 때면 꼭 어지럽기까지 해서 성종 자신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 했건만, 결국 명수를 따라 큰 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너 미쳤어? 대체 왜 그러는데!!”

“그래, 미쳤다, 씨발새끼야!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성종은 제 어깨를 붙들고 있던 명수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 쳤다. 이성종! 이름을 부르며 제 손목을 잡아오는 손을 또 뿌리치고, 성종아! 라고 더 크게 이름을 부르며 팔뚝을 잡아오는 손을 또 뿌리쳤다.



“제발 꺼져, 제발! …너 같은 새끼 상종도 하기 싫으니까.”

“야!!!”



성종은 명수가 자신을 ‘야’라고 부른 것에 놀랐다. 지금껏 한 번도 그 단 한 글자로 된 단어로 자신을 부른 적이 없는 명수였다. 그 목소리가 너무 커서 놀라기도 했다. 잠시 넋을 잃고 명수의 얼굴을 쳐다보다, 다시 붙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비틀었다. 그가 그 손목을 아주 세게 잡아당겼고 성종은 힘이 풀린 다리로 맥없이 끌려갔다. 마른 손아귀가 얼굴을 우악스럽게 붙잡아왔다. 성종은 제 입술에 부딪혀온 명수의 입술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입술을 열지 않으려고 꾹 다물었고, 맞붙은 얼굴을 떼어내려고 고개를 뒤로 젖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굴을 붙잡아온 손의 힘이 너무 강해 역부족이었다.



“야 이 씨발새끼야!!!”



끝내 명수를 밀어내고 큰 소리로 욕을 내질렀다. 그 순간 두통이 심해졌는데,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눈앞에 피가 보였다. 성종이 명수의 아랫입술을 힘껏 깨문 탓에 그곳에서 나온 피가 줄줄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성종아! 이성종!!”



입술을 붙잡고 손에 묻어나온 피를 보던 명수는 제 앞으로 고꾸라져 쓰러진 성종에 놀라 주저앉았다. 제 피가 가득 묻은 그 손으로 성종의 어깨며 얼굴을 흔들었다. 힘이 하나도 없이 축 늘어진 몸은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입술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식탁까지 무릎으로 기어가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거, 거기 119죠? 사람이, 사람이 쓰러졌는데요.”



통화를 마친 명수는 성종의 곁으로 돌아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어떡하면 좋지, 어떡해야 돼, 성종아. 그가 사라질까봐 무섭다 했던 지난밤의 고백이 머릿속을 스쳤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왜 네가 아파, 왜 네가 쓰러져. 죄는 내가 지었는데 왜 네가 그걸 다 떠안고 있어. 명수는 성종의 가슴팍에 옆얼굴을 댄 채 그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그의 심장은 뛰고 있었는데 명수 자신의 심장은 멈춘 것만 같았다.


혹시나 내가 너를 떠나게 되더라도, 그건 절대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닐 거야.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네가 지금 나를 죽인다고 해도, 난 죽어서도 그리고 다시 태어나서도 널 사랑할 거야. 사랑해, 명수야.




*




지난 장마였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명수가 좋아하는 장마. 며칠 내도록 잠시도 맑았던 날이 없어 빨래가 마르지 않았다. 거실 한 가운데에 건조대를 펼쳐 빨래를 널었다. 성종은 차가운 거실 바닥에 누워 빨래들을 바라보았다. 전시회를 앞두고 있어 작업량이 많았던 탓에 집 밖으로 나갈 일이 많지 않은 성종의 옷 대신, 얇고 단정한 명수의 옷들이 대부분 걸려 있었다. 대체 이 우중충하고 어두운 비 오는 날이 왜 좋은지 모르겠는 김명수의 것들. 덥고 습한 공기가 집안 가득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저도 모르는 사이 잠들었던 성종은 눈을 비비적거렸다. 몸을 일으키지 않고 고개만 살짝 들어 올렸다. 뚜렷하지 않은 시야로 마른 다리가 다가왔다.



‘낮잠 잤어?’



다정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파 위에 가방을 얹어두고 성종의 머리맡에 앉았다. 응. 입도 열지 않고 목울대로만 소리를 내 대답했다. 그의 손이 다가와 방바닥에 붙어있던 머리를 들어올렸다. 성종의 고개가 그의 허벅지에 얹어졌다.



‘그림은? 다 그렸어?’

‘비 냄새 나, 너.’

‘싫어? 씻고 올까?’

‘떨어지기 싫어. 씻으려면 같이 씻어.’



가볍고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얼굴 위에서 들려왔다. 성종은 얌전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너는 이렇게 아래에서 봐도 잘생겼니. 반칙이야. 머리카락을 건들이던 손이 귀를 만지작거려 왔다. 성종은 눈을 여러 번 느리게 깜빡였다.


여름만 되면 마르네, 우리 성종이는. 어느 시에서 본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다던 문장이 생각났다. 다정한 편도, 무뚝뚝한 편도 아닌 그였지만 굳이 따지자면 무뚝뚝한 편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종은. 그래도 여름만 되면 제 연인이 평소보다 더 말라버린다는 걸 매년 기억해주는 그는 다정한 편이라고도 생각했다. 여름만 되면 그랬다. 날씨가 더워지면 입맛이 없어져 끼니를 거르는 횟수가 늘었고, 그에 반해 더위에 이겨보겠다고 체력은 많이 소비하는 편이었다. 8월까지 그런 날들을 보내고 나면, 9월부터는 다시 살이 좀 붙기 시작하는 제 몸이 스스로도 신기한 성종이었다.



‘성종아, 올해는 휴가 어디로 갈까?’

‘휴가? 언젠데?’

‘7월 말.’



머리칼을 쓸어주는 명수의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서걱서걱 소리가 날 것 같고 곧 바스라질 것 같은 건조한 움직임. 그 하얀 손목에서 옅게 나는 익숙한 그의 향수 냄새. 오래 전 독립출판사에서 구입 했던 서적 중에 한 권에서 책 냄새 대신 향수 냄새가 났었는데, 그 향이 너무 좋아 이용하지도 않는 SNS에 가입해 작가에게 연락까지 해서 알아냈던 향수. 성종은 명수가 아침에 막 그것을 뿌렸을 때의 향도 좋아했지만, 퇴근하고 돌아와 옅게 남아있는 그 손목의 향도 좋아했다. 자신이 그 향수를 뿌렸을 땐 명수에게서 나는 그 향이 나지 않아 의아했는데, 향수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향을 낸다고 들었던 말이 있었다. 김명수에게선 그 책에서 나던 향이 똑같이 났다. 성종은 그 때부터 명수의 살이 서걱서걱 소리가 날 것 같은 종이 같다고, 피부는 곧 바스라질 것 같은 나무의 결 같다고 생각했다.



‘올 해는 집에 있어도 괜찮아? 나 작업할 거 많아.’

‘그럼 겨울에 스키장 가자.’

‘무슨 스키장이야. 겨울에 강릉 가자, 바다 보러.’

‘얼어 죽어.’

‘스키 타다 얼어 죽나, 바다 보다 얼어 죽나, 똑같아.’



심통이 났는지 제 머리칼을 마구 흐트러뜨리는 명수의 손을 그러게끔 두었다. 명수는 작년 겨울에도 스키장에 가자고 했는데 성종의 강력한 반대로 실천하지 못 했었다. 성종에게 휴가란 휴식을 취하러 가는 일이었고, 애초에 몸을 많이 움직이거나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는 활동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있는 명수는, 말로는 스포츠를 같이 즐기자고 하지만 항상 싫다 하는 성종에게 져주어 왔다.



‘대신 저녁 먹고 나가서 산책 하자.’

‘정말?’

‘응, 우산 없이.’

‘정말?!’



눈에 띄게 기뻐 보이는 명수의 얼굴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 성종에 비해 명수는 매일 비가 왔으면 좋겠다 말할 정도로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신발과 바지가 젖는 게 싫지도 않은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비가 오고 있으면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다. 휴무에도 집에 있다가 갑자기 비가 오거나 하면 어떻게든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명수였다. 게다가 우산 없이 걷는 걸 좋아하기도 했다. 성종은 가끔 비가 오는 날 밤에 명수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우산 없이 산책을 하자고 하기도 했다. 그게 왜 좋은지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푹 젖은 몸으로 엘리베이터를 타 발 아래로 방울방울 떨어져 모이는 빗물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명수야,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은 유리 같았던 것 같아. 어떤 때는 가슴 뛰어 벅찬 시간을 보냈고, 어떤 때는 어린 열병을 앓기도 했고, 어떤 때는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었지. 그게 너에게 어떤 시간이었든 그 시간들을 아름답게 기억해 주겠니. 찬란했지만 유리처럼 부서질 것 같았던 그 시간들. 그 시간이 나를 만들었거든.




*




찢어진 입술을 치료 받고 성종이 누워있는 병실로 돌아왔다. 의사의 소견은 평소 앓고 있던 두통이나 어지럼증의 악화로 일시적인 쇼크가 와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명수는 성종의 침대 가까이로 다가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의 손을 잡고 침대 위로 상체만 엎드린 채 까무룩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침대 위엔 성종이 없었다. 제대로 정신을 다잡지 못하고 방황하다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놀라 몸을 일으켰다. 성종아, 이성종. 명수는 구급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입술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잠을 자는 그 동안에도 성종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 때 병실 문이 열리고 성종이 들어왔다. 하얀 바탕에 파란색으로 병원 이름이 잔뜩 새겨진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그가 힘없는 걸음으로 걸어들어 왔다. 명수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달려갔다. 성종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성종아, 괜찮아? 괜찮은 거 맞아? 내가, 내가 다 잘못 했어. 내가 다 미안해. 미안해, 성종아. 미안해, 미안해.”



명수는 그렇게 한참 동안 성종을 안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명수의 품에 안긴 성종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 그가 의아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멀쩡하게 다시 눈을 떠주었으니 그거면 되었다. 성종의 어깨를 꽉 그러쥐었던 명수는 감싸 안았던 팔을 풀어내고 그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그 때 성종이 꺼낸 첫 마디에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 되었다.



“누구세요?”



성종이 깨어나기 전 담당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곧 깨어나시긴 할 건데, 깨어나셨을 때 과거의 어떤 부분을 기억 못하실 수도 있어요. 복용하고 계신 약으로 봐서는 이렇게 쓰러졌을 경우 단기 기억 손실의 우려가 있거든요. 이게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혹은 언제의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고는 말씀을 못 드립니다. 바로 어제 일만 기억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3년 전부터 5년 전까지의 기억을 잃은 사람도 봤어요. 혹시나 환자 분이 그런 증상을 보인다고 해도, 손실된 기억에 대해서는 회복될 가능성이 크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시고요.’



명수는 적어도 그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곤 상상 하지 못 했다. 지은 죄에 대한 벌이 이렇게 돌아오는 걸까. 성종이 자신을 영영 기억해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끔찍한 상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나는 너의 곁에 있을 수 있을까.


성종아, 우리는 이 사랑을 떠나가지 않을 수 있을까?









   

향수에 대한 부분은, 몇 년 전 실제로 제가 했던 일을 그대로 적은 거예요.

사랑하는 향수는 발망 옴므랍니다.


보통 저는 글을 쓸 때 명수의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데미안 라이스를 많이 들어요.



의문스러운 부분들이 많으실 테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아마 하나일 것 같아요,

제가 계속 글을 통해서 얘기해 왔던 거예요.

사랑이 뭐냐고 묻는 성종과 저의 답변이 같다는 것...

저들의 모든 행동은 사랑에서 비롯된 건데 차마 사랑이 뭔지는 얘기할 수가 없는.

그러니 의문스러운 부분들을 일부러 이해하거나 해석하려고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서 짧은 코멘트 남겼어요. : )

 


 

 

 

 

 

 

 

 

 

 

 

 

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