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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25 [우지호/김유권] 그냥 가요 번외 (비밀방)

 

그냥 가요 번외

 

 

 

 

 

사랑 받고 있나요? 행복한가요? 사랑하는 일이 행복한가요? 왜, 그러지 못하죠?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지켜보는 일에 지쳤나요? 기다리는 일에도? 사랑 받고 있나요? 왜, 그러지 못하죠? 상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괜찮습니다. 이제는 서로의 사랑을 이해하니까요. 우리에겐 함께할 많은 날들도 존재하고 있어요. 비록 그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변질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물론 가능성은 있습니다. 나의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놓으려고 하고 있거든요. 그러나 더 이상 그에게 그 일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가 한 번 쯤은 나를 돌아봐주길 바라고 있지요. 우리 사랑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괜찮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려내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줄 아세요? 그들 중 어느 쪽으로도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세요?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이에게 마음을 조금 열어보려 합니다. 비록 그 사람이 지금은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말이죠.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은 분명 나 때문에 두통에 시달릴 게 뻔하거든요. 그래도 우리는 괜찮습니다. 전쟁 같았던 서로의 사랑을 이해하니까요. 우리는, 괜찮습니다.

 

 

 

*

 

 

 

지훈이가 등 뒤에서 나를 가득 끌어안았다. 또, 또. 내가 숨을 쓰읍, 들이쉬며 나무라자 녀석은 보란 듯이 내 옆머리에 얼굴을 부비며 내 배 위로 깍지까지 껴온다. 보란 듯이, 아주 보란 듯이. 그게 처음엔 별 반응이 없어서 지훈도 재미없다며 툴툴 거렸었는데 그러기만 했지 그런 행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이유가 궁금해 슬쩍 들여다보니 앞에선 티내지 못하고 뒤에서 지훈을 압박하는 무거운 손이 있었다. 지훈은 그 압박이 썩 원하던 것이었는지 나에게 달라붙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형, 나랑 사귈래요?”

“너 그러다 두들겨 맞아도 난 몰라.”

“형이 다 막아줄 거잖아.”

 

지훈이 나를 안고 빙글빙글 돈다. 침대 위에서 잡지를 보던 태일 형이 우릴 보고 와하하, 웃더니 휴대폰을 들어 우리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찍지 말라며 내가 성을 내자 지호는 보고 있나, 하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그렇다. 며칠 째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되고 있는 지훈의 이러한 행동은 전부 지호를 겨냥하고 쏘는 총이다. 다짜고짜 나를 끌어안는다든가 내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 준다든가 어울리지도 않는 사랑 고백을 한다든가. 오늘처럼 저랑 사귈래요? 하고 물어오면 나는 그저 콧방귀를 뀌지만, 지훈이 지호를 자극하기 위해 억지로 하는 행동이란 걸 알아서 가끔은 나도 장단에 맞춰줄 때가 있다.

 

‘형, 제가 사랑하는 거 알죠?’, ‘당연히 알지.’

‘사랑한다, 김유권.’, ‘나도 사랑해, 지훈아.’

 

내 그런 대꾸를 들은 지훈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기겁하긴 했어도 지호의 눈치를 살피며 상당히 즐거워했다. 그렇다면 우지호는?

 

‘표지훈, 제대로 안 해?’, ‘표지훈, 똑바로 하라고!’, ‘야, 표지훈!!!’

 

제 딴에는 감정을 티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양이지만. 틈만 나면 지훈에게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고, 내가 없는 곳에서 지훈과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지훈의 그러한 행동에 대해 잔소리를 하는 듯 했다. 지호가 제게 괜히 눈살 찌푸리는 것이 싫을 게 뻔한 데도 지훈은 꿋꿋이 내게 집적대고 있다. 지훈이 내 몸을 침대 위로 밀어 눕히고 저도 따라 올라온다. 커다란 녀석의 팔과 어깨가 나를 짓누르듯 안아왔다. 무겁다며 벗어나려고 하는데, 지호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거실에서 이곳을 곁눈질하며 지켜보던 우지호가. 태일이 형이 흠흠, 헛기침을 했고 지호가 들어왔다는 걸 눈치 챈 지훈이, “형, 저랑 잘래요?” 도발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녀석에게 들었던 사랑 고백 중 가장 황당했다. 태일이 형의 미친놈, 하며 웃는 소리가 들리고 우악스런 손에 손목이 잡혀 내 몸이 일으켜 세워졌다. 당연히 우지호였다. 지훈이 멍하니 끌려가는 나를 쳐다본다. 지호가 이런 상황에 직접 끼어든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방관만 하던 우지호가 드디어! 라는 표정이었다. 그런 지훈을 보니 이제 이 놀이도 막을 내리겠구나 싶다.

우지호는 방황했다. 내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방에서 나오긴 했으나 목적지는 없는 듯 보였다. 부엌과 거실, 현관 앞을 맴돌던 두 발은 결국 화장실로 날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는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이 콸콸콸 쏟아졌다. 곧 샤워기도 솨아아 시원하게 물을 쏟아냈다. 나에게 할 말이 있어서, 밖에선 듣지 못하게 하려고 그러는 행동 같았다. 하지만 지호는 한참을 쏟아지는 물만 쳐다보고 서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내가 먼저 그의 등을 두드리자 놀란 어깨가 들썩였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그의 얼굴은 겁을 먹은 듯 보였다. 그러니까, 유치원생 아이가 잘못을 저지른 탓에 선생님께 혼날까봐. 그 모습에 내가 피실 웃자 그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할 지 모르겠다는 듯 눈알을 굴렸다.

 

“지훈이 귀엽지.”

“…….”

“지훈이가 계속 그러니까 아직도 니가 나 좋아하는 것 같아.”

“…….”

“그치? 우린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뭐라도 말을 더 하려다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의 오른손이 내 왼손을 잡아왔기에. 가만히 손 두 개를 내려다보았다. 조금 진동하는 지호의 손의 따스함이 전류처럼 팔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곧 그의 왼손도 내 왼손을 감싸왔다. 그의 엄지손가락 두 개가 내 손목뼈와 손바닥, 손금들을 문질렀다. 나는 그걸 애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의 속은 모르겠으나 아니 모른 척 하려고 애쓰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꼭 사랑해서 하는 행동 같았다. 이렇게 네 손등, 손바닥, 손가락, 손톱, 손끝까지 사랑해. 그의 행동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가끔, 가끔 말이야.”

“…….”

“요즘 지훈이가 나에게 하는 행동들을,”

“…….”

“지호, 니가 해줬으면 한다는 생각도 해.”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귓가에 숨을 불어넣고. 사랑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 날 우리의 정사를 통해 본 우지호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럴 것이란 보장이 없어 두렵기 때문이다.

 

 

 

*

 

 

 

한참을 키스만 했다. 목구멍으로 흘러 넘어가는 것이 누구의 타액인지 가릴 여유도 없는 키스였다. 내가 지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을 때 그가 내 등과 엉덩이를 떠받쳐 내 몸을 끌어안고 들어올렸다. 내 양손이 지호의 뒷머리를 마구 헤집었고 그는 뒷걸음질 쳤다. 방문에 그의 등이 닿았고 내가 손을 내려 문을 잠갔다. 서로의 열에 들뜬 우리의 숨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오랜 키스를 멈추고 그도 나도 침대 위에 쓰러지듯 늘어졌다. 내가 먼저 몸을 틀어 그를 바라보고 눕자 그도 곧 나를 보고 모로 누웠다. 그의 입술만 빤히 바라보았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으나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입술. 늘 거칠게 말해도 결국엔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되어버리는 입술. 타액에 젖어 번들거리는 그 입술에서 천천히 눈을 들어올렸다. 그의 인중과 코, 그리고 눈이 보였다. 내 눈을 바라보고 있는 눈. 그 눈마저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랑해, 사랑해. 단 한 번도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늘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지호야.”

 

그의 배 아래로 내려간 내 손이 바지버클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말이 없다.

 

“나랑 잘래? 그럼 나 놓아줄래?”

 

부풀어올라있는 그의 성기를 속옷의 면을 사이에 둔 채 살살 만졌다. 그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왜,”

 

그는 떨고 있었다. 흔들리는 그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비칠 것 같아 내가 일부러 웃어보였다.

 

“너는 날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어?”

 

 

생소한 고통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기절이라도 하면 앞으로의 고통은 못 느끼고 끝나려나. 내 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의 표정에까지 고통이 서려있었다. 옷을 벗어던지고 서로의 몸을 탐하는 동안에도 그는 내게 계속해서 괜찮겠니, 괜찮겠어? 물었다. 사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먼저 이 관계를 갖기를 원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괜찮다고 수차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는 끝까지 내 걱정에 안절부절 못했다. 내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을 때에도 그는 내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며 내 걱정을 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그는 울고 있다. 내 가슴팍 위로 그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아랫입술을 꽉 물어 신음을 삼켰다. 찢어지는 고통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났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가 내 몸 안으로 더 깊게 들어왔지만 나는 괜찮았다. 삽입은 했으나 차마 움직이지는 못하고 내 눈물이나 닦아주고 있는 그의 손도 괜찮았다. 움직여, 움직여도 돼. 뚝뚝 끊어지는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힘들어 보였으나 나는 정말 괜찮았다. 많이 아파? 아프지, 유권아. 그가 울먹이며 물었다. 나는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 힘없이 웃어보였다. 더 아플 거야. 못 참겠으면 꼭 말해. 응? 나는 찢어진 아래의 고통보다도 그의 다정함에 울고 싶었다. 그가 상체를 숙여 나를 가득 끌어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었다. 내 몸 안에서 다른 이의 일부가 들어차 움직이고 있다는 게, 고통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다. 아프고, 아프고, 그리고 따뜻했다.

우리의 무의미한 신음들과 헐떡이는 숨소리가 쉴 새 없이 입 밖으로 뱉어졌다. 그는 천천히 속도와 힘을 가했지만 나는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도 그가 이 쾌락을 더 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이란 걸 너무도 잘 안다. 간간히 내 입술에 키스를 하는 그는 가장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했고, 가슴을 애무하는 그는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잠시 소유한 것 마냥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그래서, 그런 그는 이 이상의 쾌락을 누리자고 내게 더한 고통을 주지는 못할 것이란 걸 알아서, 차라리 내가 움직여야겠단 맘을 먹었다.

내게 입 맞추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위치를 바꿔 보겠다고 힘을 주어 몸을 굴렸다. 움직임을 멈춘 그가 내가 하는 대로 따라주었다. 반 바퀴 구른 우리의 몸은 여전히 끼워 맞춰진 채였으나 방금 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무서웠다. 이대로 힘을 빼고 그의 위에 엉덩이를 밀착해 앉으면 어떤 고통이 따라올지, 무서웠다. 이전 체위에서는 그가 성기를 다 삽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무서웠다. 무서운데도 시도해보겠다는 마음이었다. 밀착해 앉을 태세로 그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허리에 힘을 뺐다.

 

“하지 마. 하지 마, 유권아.”

 

뻔했다. 내가 아플까봐 말리는 것이었다. 그의 손이 내 허리를 붙잡았다.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힘을 잔뜩 주는 것 같았다. 괜찮아, 괜찮아.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 다시 세운 상체를 아래로 눌렀다. 엉덩이로 그의 음모가 느껴졌다.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짓누르며 고통을 참았다. 그가 내 안에 모두 들어왔다. 땀과 눈물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내 머리카락을 떼어 내주는 그의 손길이 다정했다. 잠시 그 손길을 그리고 내 안에 가득 들어찬 그를 느꼈다. 그리고 내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아, 아, 아! 모음 하나로 이루어진 나의 고통어린 신음이 따발총 마냥 쏟아졌다. 지친 내 시야 사이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눈물이 차올라서 시야를 가렸다. 팔을 들어 눈가를 훔칠 힘도 없어서 눈을 여러 번 세게 깜빡였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그가 움직이고 있는데도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게 슬픈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천천히 움직인다, 천천히. 그가 허리를 내 다리 사이로 밀착시키는 순간은 숨이 멎는다. 그가 일부 빠져나가는 순간 나는 숨을 토하듯 내뱉는다. 그리고 그가 다시 밀고 들어오는 순간에는 숨을 들이쉰다. 빠르게 움직인다, 빠르게. 숨 쉬는 것을 내 마음대로 조정하기는 이미 포기했다. 헉, 헉, 헉, 또는 아, 아, 아, 따위의 거친 숨소리와 신음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입 밖으로 마구 토해졌다. 정신을 잃을 것 같다고 다시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숨을 죽이려고 애를 썼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우지호의 목소리를. 사랑해. 사랑해. 그가 아까처럼 나를 끌어안고 몸을 움직였다. 밀착한 채 겹쳐진 두 개의 몸이 마구 흔들렸다. 나는 모든 정신을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사랑, 해, 유권, 아. 멎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흔들리는 천장뿐이었으나 나는 그 위에 나를 사랑한다 말하는 우지호를 그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입술을, 그 눈을.

 

“흐윽, 윽. 사랑해, 흐윽. 사랑해, 유권아……. 사랑해.”

 

우리는 울었다. 그는 끊임없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울었고 나는 그 고백을 더 이상 들을 자신이 없어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너에게 해준 말이 그리고 해줄 말이 미안하다는 말 밖에 없는데, 너는 질리지도 않고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정사는 끝이 났고 아직까지 멤버들은 오지 않았다. 내 안에서 빠져나와 사정을 한 그가 내 성기를 손에 쥐었다. 그는 내가 사정을 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키스를 해왔고 다른 손으로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간간히, 우리의 숨소리가 허공에서 키스하듯 맞물려 진동했다. 나는 곧 내 배 위로 말간 액을 분출하며 그를 느끼던 모든 신경을 느슨하게 풀었다. 몸에서 힘이 쏙 빠져나갔다. 내 흔적을 화장지로 훔쳐내는 그의 모습을 가만 쳐다보았다. 그가 나를 안아 올려 방문을 열고 욕실로 향할 때까지도 나는 그만 주시했다. 샤워를 마치고 그가 변기 위에 앉아있는 내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있을 때 그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 사람도,”

“…….”

“이렇게 해주니.”

 

그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가득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새끼랑 잤어? 그 사람이랑 잤냐? 대답이 듣기 싫으면서도 내게 물어왔던 그의 질문들이 생각났다. 나도 망설였다.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형이랑, 잔 적 없어.”

“…….”

“형은 남자랑 안 자. 남잘 사귄 것도 내가 처음이고.”

 

내 몸의 물기를 닦아내던 그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나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도 알고 있어……. 형한테 내가 장난감일지도 모른다는 거, 알고 있어.”

“…….”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해.”

 

곧 그가 흐느끼며 욕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안하단 말을 해주고 싶었다. 미안해. 지금까지도 수없이 해온 그 말을.

 

 

 

*

 

 

 

“그 때, 그 사람이랑 만난 적 있어. 방송국에서. 두 번이나.”

“……싸웠어?”

“……”

“때린 거 아니지?”

“첫 번째엔 때리고 싶었어.”

 

그 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화가 난다는 듯이 지호가 숨을 골랐다. 그는 말했다. 형이 나랑 잠자리를 가졌다고 했다고. 그게 꼭 술집 여자를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기분이 나빴다고. 나는 지호의 가슴팍을 끌어안고 그의 등을 토닥였다. 네가 처음이었어. 그리고 마지막이었어. 그리고 그가 이어 말했다. 두 번째엔……. 그리고 음, 하며 말하기를 망설였다. 나는 그저 그의 등을 다독이며 물소리를 가르고 들려올 그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우리가 아직 어리다고 했어.”

“…….”

“그 사람, 너 사랑했어. 다만 사랑을 즐길 뿐이었어.”

 

나는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척 하려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아서, 그 관계의 안정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것도.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고. 그래서 나는 미련 두지 않고 접으려 하고 있다. 내가 했던 그 사랑은 나를 사랑했던 두 사람 모두에게 꽤나 이기적인 것이었으니까. 지호의 팔이 올라와 잠시 내 등을 껴안았다. 그리고 가슴팍으로 그의 목소리가 울려 전해진다.

 

“표지훈이 사귀자고 하면 절대 사귀지 마.”

“……그래.”

“사랑한다고 해도 너는 절대 사랑한다고 하지 마.”

“……응.”

“끌어안으려고 하면 하지 말라고 해.”

“못 이기는데?”

“도망 쳐.”

“……너한테로?”

 

지호가 내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나는 몸을 그에게로 기대고 오랜만의 그의 체취를 들이마셨다.

 

“응, 나한테로.”

 

온전한 가을이 오면 우리는 사랑하고 있을까.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

 

 

 

 

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