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요


내가 내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게 그런 감정을 준 그가 꼭 사기꾼처럼 약았다고 생각했다. 그 감정이란 걸 서로가 함께 가지면 좋을 것을 나에게만 휙 던지듯 안겨버린 그가 밉기도 했다. 애증이라 해도 좋을 감정이었다.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싶다가도 수십 번씩 그가 나 때문에 아팠으면 좋겠다고 못된 맘을 먹기도 하니까.

스케줄이 없는 휴일 아침인데도 일찍 눈이 떠졌다. 일상 중 하나처럼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욕실 문을 밀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발 하나 조차 들이밀어 보지 못하고 급하게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유권이 속옷 하의만 입은 채 수건으로 머리카락 물기를 털고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개의치 않고 들어가 일을 보려고 바지를 내렸을 텐데, 이제는 같은 남자끼리도 전혀 그러지 못한다. 그저 욕실 앞에 서 조금은 놀란 듯 그러나 곧 무심한 표정으로 날 보던 유권의 얼굴만 되새길 뿐.

“어디, 가냐?”

옷을 대충 갖춰 입고 욕실에서 나온 그에게 내 자신 없는 목소리가 물었다. 친구 만나러, 하고 짧게 대답한 그가 내게서 등을 돌려 방으로 향하고 나는 무얼 하러 왔는지도 잊은 채 욕실 안에 들어갔다가 그냥 나왔다. 유권이 나갈 준비를 마치고 신발을 신으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일찍 들어오라 당부할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글자들에 내 몸도 마음도 시간까지도 멈춘 듯 했다.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의심하며 바라보고 있던 그의 뒤통수가 휙 돌려지더니 나를 발견하곤 조금 당황한 표정을 비친다. 하지만 이내 다녀올게, 말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그의 팔을 잡고 싶었다. 힘없는 손이 살짝 들어 올려 졌다가 결국 다시 추락했다. 난 병신 마냥 또 져줘야 할지도 모른다.

‘응, 형. 지금 나가.’

통화를 하던 유권의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 이제 가슴에서 웅웅 울린다.


*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주 허공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쌍꺼풀 없는 두 눈을, 예쁜 말을 조곤조곤 하려 열리는 덜 붉은 입술을 갖고 싶었다. 같은 남자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는 게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스스로가 용납이 안 돼서 부정하고도 싶었다. 그 무심한 얼굴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혼자만의 욕심도 부려봤다.

애교도 없고 숫기도 없고 말도 많이 없었다. 가장 친한 멤버는 형, 형 하며 따르는 표지훈이었지만 그나마 그것도 마구 다정한 축에 끼지도 못했다. 지훈은 멤버들 모두를 똑같이 대했고 멤버들은 김유권이 하는 것 이상으로 지훈을 대했으므로.

그러니까 김유권은 그저 몸만 덩그러니 숙소에 그리고 블락비라는 그룹 안에 있었다. 필요하다 싶으면 움직이고 말하는. 나는 그런 김유권이 불만인 적은 없었다. 일곱 명이나 모였는데 각자의 가치관과 개성이 다양한 것은 당연하고 그 이전에 성격부터 다 다르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게 화가 났다.

후속곡 활동 시작 첫 날이라 다들 조금씩은 무거운 마음으로 리허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대기실에서 나왔다가 긴 복도를 혼자 걷고 있는 유권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언제 나왔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도 모르게 그의 뒤를 좇았다. 복잡한 방송국 복도와 계단을 요리조리 기웃거리던 유권의 걸음이 멈춘 곳은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는 텅 빈 구석진 복도였다. 여기까지 왜 왔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비상구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나는 그 사람의 등장에 벽 뒤로 몸을 숨긴 채 그들을 지켜보며 숨을 죽였다.

“오래 기다렸어?”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 걸린 웃음을 띤 남자가 유권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물었다. 유권은 말 대신 고개를 저어 대답했다. 무슨 이야길 하는지 귓가에 작게 속삭이는 두 사람의 대화가 꽤나 즐거워 보였다.

저렇게 많이 웃는 모습을 본 게 언제였더라. 반년 만에 보는 유권의 환하게 웃는 얼굴은 생소하기도 했다. 물론 그 때도 저 남자 앞에서 저렇게 웃었지만.

비밀스런 둘만의 대화가 몇 번 더 오가다 남자가 유권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 했다. 고개를 틀어 입맞춤을 피한 유권이 미소를 걸친 입술로 남자의 귀에 또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다. 즐거운 듯 호탕하게 웃던 남자가 다시 유권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기다렸다는 듯 그 입술을 무는 유권에 주먹이 쥐어졌다.

리허설 내내 집중 못하고 산만하게 구는 그의 마음이 신경 쓰였다. 신나 있었지만 남들 앞에서 티내지 못하고 그저 혼자 이따금씩 베실 웃는 게 다였다. 노래나 춤엔 집중 못하고 딴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김유권, 똑바로 안 해?!”

결국 손을 들어 노래를 중단하고 유권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내게 리더라는 위치가 없었다면 이렇게 쉽게 화내지도 못 했을 거란 답답함이 상상도 되었다.

“리허설이잖아.”

“니가 리허설이라고 그렇게 대충하는 사람이었어?”

“왜 또 괜히 짜증이야.”

아무렇지 않다는 평소의 김유권의 표정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던 시선이 곧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손등으로 땀을 닦으며 잠시 숨을 고르는 그가 여전히 못마땅해 참을 수도 있던 걸 그러지 못하고 다시 큰 소리를 냈다.

“너 지금 전혀 집중 안하고 있잖아.”

“…….”

“……그 새끼 때문에.”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던 그가 이어진 내 말에 놀란 눈을 하다가 나를 노려본다.

“다시 만나?”

“…….”

“헤어졌었잖아.”

“헤어진 적 없어.”

“너 버렸잖아, 그 새끼가!”

흥분한 내 목소리가 높아지자 멤버 형들이 그만하라며 나를 말렸다. 결국 죄송하다 사과하고 다시 리허설을 시작했지만 나까지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꼬박 반년 만이었다. 그리고 못 잊었냐고 묻기보다 다시 사랑하느냐고 물어야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김유권은 아직도 그 치유되지 않은 상처 받은 마음속에 그 남자를 암 덩어리 마냥 키우고 있었다.


*


지방 행사가 있었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는데 유권이 무대 위에서 부상을 입었는지 내려오자마자 매니저 형부터 찾았다. 차를 두 대로 나눠 내려와서 유권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먼저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김유권은 나에게도 괜찮으니 먼저 서울로 올라가라고 했으나 내가 기어이 그의 병원 가는 길을 따랐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너무 조용해서 지루할 지경이었다. 큰 부상 아니고 인대 살짝 늘어난 거라 다행이라는 매니저 형의 말을 끝으로 차 안엔 정적이 흘렀다. 얼결에 나란히 앉은 나와 유권은 어떤 흔한 대화 하나 없이 그 정적에 따라 침묵했다.

피곤함에 잠깐 눈이라도 붙여야할 것 같아서 머리를 뒤로 기대는데, 유권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휴대폰 화면이 보였다. 두 손으로 휴대폰을 쥐고 있는 유권의 옆얼굴이 그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에 얼룩처럼 비춰졌다. 나는 그런 유권의 옆얼굴과 그가 내려다보고 있는 휴대폰 화면을 여러 번을 번갈아 보았다. 잠을 자려 했었다.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휴게소 주차장에 차가 멈춰 섰다. 운전을 하던 매니저 형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차에서 내렸다. 여전히 차 안은 정적이었고 머지않아 내가 그 정적을 깨고 유권을 불렀다.

“김유권.”

그가 만지작거리던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날 돌아보았다. 따라 나오라는 무언의 명령 아닌 명령과 함께 내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뭐?”

대뜸 손바닥을 내미는 내게 유권이 짧게 물어왔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유권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 뭐, 하고 입모양으로만 다시 묻는다. 폰. 내 짧은 요구에 유권이 휴대폰을 든 손을 들어 보이며 이거? 한다.

“왜?”

“줘 봐.”

“왜 그러냐고.”

다혈질은 아닌데. 짜증이 확 나서 유권의 손에서 휴대폰을 억지로 빼앗았다. 유권이 내 손에서 다시 그것을 가져가려고 손을 뻗었지만 내가 그의 손을 쳐내고 휴대폰 홀더를 풀었다. 유권이 계속 보고 있던 화면이 그대로 떴다.

“뭐하려고!”

휴대폰 화면을 터치하는 내 손을 멈추려 유권이 날카롭게 외치며 다시 손을 뻗어왔지만 이미 내 손이 그것을 지워버렸다. 그 남자의 사진이었다. 김유권이 질리지도 않고 쳐다보고 있던 그 남자의 사진이었다.

유권이 내 손에서 제 휴대폰을 낚아채 갔다. 금방이라도 울 법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눈이 가슴 아팠다.

“헤어져.”

“니가 뭔데.”

“병신아, 왜 한 번 당해놓고도 또 그걸 반복하고 있어.”

“우지호.”

“또 버림받으려고?”

“야!”

“그 새끼가 너 질렸다며. 너 지겹다며!”

유권의 손이 내 왼뺨을 내리쳤다. 맘은 약해 빠진데다 폭력 같은 거 휘두를 줄도 모르는 놈이라 때린다 한들 때리는 것 같지도 않게 때려 와서 아프다는 느낌도 딱히 없는. 그의 둔탁한 손길에 살짝 돌아간 내 고개가 다시 그에게로 향하는 게 싫어서 그대로 그냥 고개를 바로 해 땅만 바라보다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 유권이 따라 들어오지 않아도 곧 들어 올 거란 걸 알아서 신경 끄려 눈을 감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곧 차문이 열렸고 내 옆자리가 묵직해졌지만 집에 도착하기 까지 우린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그도, 나도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


“형, 안자요?”

“어, 유권이 들어오는 것만 보고.”

자정이 한참 지났다. 친구 만나러 다녀오겠다던 놈이 전화를 받지도 문자 답장을 하지도 않는다, 4시간 전 마지막 통화 이후로는. 어김없이 친구 만나러, 하는 그의 목소리 뒤로 낯익은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었다. “유권아.” 유권의 이름을 부르던 다정한 목소리가 소름끼치게 싫었다. 그 남자였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은 늘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물증 없이도 알고 있었으면서 괜한 화가 났었다.

‘리더로써 명령이야, 당장 들어와.’

하지만 4시간 째 연락이 없다. 다시 열어봐도 문자함엔 온통 내가 보낸 것들뿐이다. 어디야. 빨리 들어오라고 했어. 김유권. 문자 씹지 마. 그 새끼랑 있지. 그 때도 그랬었다. 매일을 같은 지붕 아래 살아도 나는 가질 수 없는 김유권을 가진 그 남자가 질투 나서, 억울해서.

한 시간 쯤 더 지났을까. 현관문이 열리는 익숙한 소리와 함께 어두운 형체 하나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나를 잠깐 쳐다보고 무심하게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

“문자 왜 씹었어.”

“답장 해줄 말이 없어서.”

“전화는.”

“받을 만한 상황 아니라.”

“상황? 무슨 상황? 너 그 새끼 만나러 간 거잖아! 왜? 이제 와서 다시 사귀쟤?”

“소리 죽여. 멤버들 깨.”

잔뜩 흥분 해 소리치는 나에 비해 덤덤하게 자고 있는 멤버들이 깰까 걱정하는 유권의 태도가 미웠다. 게다가, 그리고 우리 헤어진 적 없어. 덧붙이는 말엔 어이가 없었다.

“그 새끼랑 같이 있던 거 맞지?”

“…….”

“그 새끼랑 잤어?”

“우지호……!”

유권의 멱살을 잡듯 끌어다 당겨 막무가내로 내 입술을 부딪쳤다. 닫을 새도 없이 벌려진 유권의 입술 사이를 침범한 내 혀가 그의 입 안을 마구 휘저었다. 간간히 스치듯 닿은 그의 혀가 나를 슬프게 했다. 그 혀를 다정하게 옭아매고 부드럽게 감아주고 싶었었다. 하지만 우리 키스에는 그만큼의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다.

호흡하기가 벅찼는지 내 어깨를 밀어내던 마른 손이 이젠 내 가슴팍을 때리기 시작했다. 키스라고 부르기도 우스운 우리의 키스가 끝이 났다. 당연히 나를 피할 줄 알았던 유권의 눈을 바라봤더니 예상 밖으로 내 눈을 똑바로 맞춰 온다. 나를 올려다보는 그 눈에 분노 혹은 경멸 또 혹은 슬픔 따위가 서려있었다. 정확히 읽을 수는 없어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 눈이 힘들어 보이긴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눈을 마주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거칠게 몰아쉬던 우리의 호흡들이 잠잠해지고 유권의 눈가를 영유하던 눈물들도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그의 눈 안에 명멸하는 푸르스름한 내 얼굴이 달빛을 닮아보였다. 그 안의 나를 살피다 빠져나왔을 때 유권의 눈이 두어 번 느리게 깜빡였다. 곧 유권이 시선을 떨구더니 고개까지 떨궜다. 그리고 자신을 붙들고 있던 내 손을 가볍게 밀어내고 방으로 들어가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힘없고 더딘 걸음이 몇 발 움직이지 못하고 다시 내 앞으로 끌려왔다.

그저 유권의 팔을 다시 붙잡아 끌어안고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유권의 머리카락이 내 귀와 목덜미를 간지럽게 했다. 아이가 엄마 품에 얼굴을 부비 듯 유권의 어깨에 묻은 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나 사랑해?”

“…….”

“안 하면 안 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부탁을 하는 사람 같았다, 김유권은. 도대체 나 같은 걸 왜 좋아하냐고, 왜 하필 자신이냐고 울며 묻던 반년 전쯤의 유권이 떠올랐다. 그도 그 때를 기억한다면 알 것이다. 그런 식으로 몇 만 번을 말해도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안 된다는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 유권의 등을 양팔로 꽉 끌어안았다. 맞닿아오는 그의 가슴이 내 가슴에 묻혀버렸으면 좋겠다고, 있는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유권도 그런 내게서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았다. 숨이 막힐 만큼 끌어안는다는 그 흔한 표현은 실로 거짓이었지만 맞닿은 가슴팍으로 울리는 처음 느껴보는 그의 심장 박동이 벅차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곧 내 어깨에 묻힌 유권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나 좀 놔줘, 지호야.”

나는 절대 내 사랑이 평생 이루어지지 못하면 못했지 포기로 끝나기는 바라본 적이 없었다.


*


무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에 있어서 그랬다. 일도 사랑도 못 버틸 만큼은 아예 못할 것이란 걸 우리는 뻔히 알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내에서 그것들을 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유권은, 인대가 아주 약간 늘어난 것이라 금세 회복할 수 있는 상태였고 며칠 물리치료를 받으면 쉽게 괜찮아지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인대가 늘어난 이상 과한 충격을 줄 순 없어서 물리치료가 어느 정도 끝날 때 까지는 연습을 쉬게 했었다. 처음엔 괜찮다며 함께 연습하겠다던 유권도 더 싸매고 하루 빨리 다 낫게 하는 게 차라리 옳다는 걸 깨달았는지 사흘간을 쉬었다.

내 사랑에 있어서도 무리하지 않았다. 나 좀 놔줘, 지호야. 그 날 밤의 유권이 말했던 그 몇 글자를 며칠간 여러 번 꺼내 보았다. 그게 네 진심이라면, 진심이라면. 질리도록 떠올리고 고민했다. 내가 이 사랑에 언제 쯤 지칠지 나 스스로도 의문이어서 쉽게 그 날 밤의 유권의 부탁에 답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발목 부상을 입은 후 유권이 처음 함께하는 연습이었다. 이제 아프다는 느낌은 없는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듯 했다. 내 시선이야 연습실 거울을 통해 그만 좇았으니.

평소보다 연습 시간이 길어졌다. 그만큼 쉬는 시간도 늘었는데 그 때마다 나를 거슬리게 하는 게 있었다. 휴대폰을 놓을 줄 모르는 김유권의 손이었다. 쉬는 시간 마다 그 조그만 기계를 손에 들고 행복해 죽겠단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분명 그 남자와 연락을 하며 그런 표정으로 웃고 있을 게 뻔해서, 그게 화가 나서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맞춰보자.

멤버들 표정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나도 그랬고. 이정도 했으니 돌아가 쉬자는 맘으로 마지막을 말했는데, 한 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유권이는?”

“아까 통화하러 나가는 것 같던데.”

일단은 기다리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5분이 지나기까지는 멤버들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쉬거나 저마다 떠들기 바빴다. 10분이 지나자 모두 내 눈치를 살피며 시계만 흘끗 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서 끌고 들어와야겠단 맘으로 연습실을 안을 가로지르는데 문이 열리고 유권이 들어왔다. 그 태연한 표정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는 듯 했다. 성큼성큼 걷던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유권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을 빼앗아 연습실 벽에 던져버렸다. 그게 어떤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당황하긴 했으나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내 행동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만 집중했다.

“최신형으로 하나 사주려고?”

“사주면 한 시간 씩 통화하게?”

“왜, 통화비도 내주지?”

내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는 그에 인내를 잃은 내 손이 허공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의 뺨을 내려친다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고 그대로 멈췄다. 진심으로, 때려서라도 그런 그가 바뀔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비록 몸은 따라주지 않았지만. 그런 내 행동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때릴 테면 때려봐라, 여전히 태연했다.

“멤버들 지친 거 안 보여?”

“미안해.”

“너 하나 때문에 몇 분을 기다렸는지 알긴 해?”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잖아.”

“그 새끼가 우리보다 중요해?!”

소리를 확 질렀다. 괜한 시기와 질투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에, 그동안 내가 그들 때문에 겪은 수모와 그들 때문에 받아온 고통들에 대한 내 감정이 순식간에 물밀듯이 밀려온 거였다.

“지금 형 얘기가 왜 나와?”

“그 새끼랑 통화하다 늦은 거 맞잖아, 너!”

“나는 통화도 잠깐 못해?”

“너 때문에 우리 다 피해보잖아!!!”

“…….”

내게 더 무슨 말을 하려 열리던 입술이 다시 닫혔다. 그리고 유권이 똑바로 마주하고 있던 내 눈을 피했다. 그제 서야 나는 내 눈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가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잠깐 짚었다가 말했다. 미안해, 지호야.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어깨를 부르르 떨며 울음을 애써 참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내가 벽으로 던졌던 그의 휴대폰이 떨어진, 그 앞에가 쪼그려 앉았다. 케이스를 씌우지 않았던 작은 기계가 배터리까지 분해되어 있었다. 그걸 주섬주섬 주워 끼워 맞췄다. 떨리는 내 손이 배터리를 끼워 넣는 것을 여러 번 실패했다.


*


이 일을 때려 칠까 생각했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까지 하느니 차라리 음지에서 내 하고 싶은 음악하며 사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이 이리도 좁았던가, 화장실이 여기 말고 이 층에 또 없던가. 괜한 탓을 하며 쏟아지는 물 아래로 손을 가져갔다.

“오랜만이네.”

세면대 거울에 비치는 나를 보며 그가 답지 않은 인사를 건네 왔다. 나도 예의상 그와 잠깐 눈을 맞춰주었다.

“그러게요. 다신 안 볼 줄 알았는데.”

“후속곡 좋더라.”

“들어보셨어요? 저희 노래 따위에 관심 없으신 줄 알았는데.”

“유권이 덕에 들었지.”

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뱉어지는 유권이라는 글자가 듣기 싫었다. 유권이만큼 작은 얼굴이 거울을 통해 눈에 들어왔다. 크지 않은 눈이나 확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목구비 때문에 뚜렷하게 잘생겼다는 느낌은 갖지 못하게 하는 얼굴이었지만, 그 얼굴에 우리나라 최고의 솔로가수라는 타이틀이 장식마냥 걸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권이 예쁘지.”

“……유권이 다시 만나는 거죠.”

“다시 만나다니.”

“헤어졌었잖아요.”

“우리 헤어진 적 없어.”

맞추기라도 한 듯 헤어진 적 없었다고 답하는 게 김유권이랑 똑같았다. 어젯밤 유권과 나눴던 같잖던 그 키스보다 더 우스웠다. 헤어졌었잖아. 당신이 김유권 버렸잖아. 그를 다시 만나면 멱살이라도 잡고 따지고 싶었다. 대 스타를 한 대 치고 신문 일면에 날 용기까진 없어도 김유권을 울린 데에 대한 그의 죄목을 따지고 그 구질구질할 게 뻔한 이유들을 듣고 싶었다. 물론 그걸 꼭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주체할 수 없도록 많은 여자 탓이었다. 한 사람만 바라보는 유권에 비해 그는 여자가 너무 많았다.

“내 비위도 잘 맞추고 애교도 철철 흐르고.”

“…….”

“유권이랑 자봤어?”

“…….”

“안 그래도 예쁜 목소리, 그거 할 땐 더 앵앵거려서 얼마나 예쁜데.”

치가 떨렸다. 꽉 쥔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기나 할 줄 알았지 다른 건 겁이나 저지르지도 못했고 그를 바라보는 내 눈은 잔뜩 일그러져만 있었다.


*


유권이 현관 앞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내가 유권의 멱살을 잡아 올려 다시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다시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의 몸을 또 일으켜 세우고 또 떨어트리고. 유권이 억, 억, 낮은 신음을 했다.

“미친년아.”

“…….”

“이젠 집에도 안 들어와? 너 연예인이야, 병신아.”

터진 입술을 손으로 만지는 유권의 얼굴이 인상을 쓰며 나를 올려다본다. 언제나 변함없는 그 눈은 더 맞아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직접 말해줘? 우리 팀에 게이새끼 있어요. 대한민국 탑스타 첩 노릇 하느라 뒷구멍이고 뭐고 다 대주는 쓰레기 같은 새끼 있어요. 내가 다 까발려줘?”

“게이?”

“…….”

“너도, 다를 거 없잖아. 너, 나……, 좋아하잖아.”

내 발이 유권의 배에 내다꽂혔다. 유권이 양 팔로 배를 감싸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화를 못 참고, 내가 다시 유권의 멱살을 잡아 올렸을 때 여러 사람의 손이 내 어깨와 팔을 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새벽부터 터진 소란에 멤버들이 잠에서 깨 나온 것이었다. 내가 마지못해 유권의 멱살을 놓자 그가 기침을 하며 나가 떨어졌다.

날이 저물었다. 유권은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줄곧 방에 박혀서 나올 줄을 몰랐다. 나는 억지로 녹음실에도 다녀오고 혼자 연습실에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에도 마음을 쏟을 수 없었다. 작업 중이던 곡을 손대보려 했지만 실패했고, 차라리 지금 심정을 가사로 써보자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으나 미운 이름 세 글자만 쓰고 있었다.

멤버들은 거실에 모여 얼마 전 녹화했던 예능 프로그램을 모니터 하고 있었다. 유권이 혼자 방에 있다는 걸 다들 알아서 내가 집에 들어와 어떤 말도 없이 바로 방으로 향해도 그러려니 하는 듯 했다.

문을 열었을 때 처음 눈에 들어온 유권은 제 침대 위에 등을 굽혀 웅크린 채 누워있었다. 아침에 그보다 먼저 일어나면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귀엽다고, 매일 아침마다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문에 등을 대고 선 채 그의 침대를 올려다보았다. 2층 침대의 위층에 자리한 그의 보금자리를.

‘지호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지호.’

눕혔던 몸을 살짝 일으키고 고개를 들어 나를 내다보는 그의 눈에 내 눈에선 눈물이 났다.

‘나 좀 놔줘.’

둥지에서 밖을 내다보는 아기새 마냥 얼굴만 내밀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 사랑해? 안 하면 안 돼?’

김유권, 너 같은 걸, 내가, 왜 사랑해.

유권의 손가락이 올라와 제 입술을 가리켰다. 터지고 찢어져 피딱지가 앉은 입술이 볼품없었다.

‘아……, 안녕. 김유권, 이야. 우지호?’

내 다리가 바닥에 주저앉자 목구멍이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히끅히끅 울었다.

‘나는, 사랑도 하면 안 되니?’

김유권은 우지호라는 새를 철창에 가두지 않고도 날아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죽이고 있었다.


*


유권이 아파요. 감기몸살 같은데.

멤버들이 연습을 위해 숙소를 떠나고 나만 김유권이 누워있는 방에 덩그러니 남았다. 몸 가누는 것도 힘들었는지 2층인 제 침대 위로 올라가지도 못한 그가 내 침대에 보란 듯이 누워 있었다. 스케줄 소화하는 게 힘들었는지 지쳐 쓰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숨을 평소답지 않게 가쁘게 몰아쉬는 것 같았다. 손을 짚어본 이마는 생각보다 뜨뜻했다.

이불을 턱 아래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멤버 중 누군가 불편했을 유권의 옷을 벗겨준 모양인지 반팔 티 하나만 걸치고 있어서 꽤나 추워 보였다. 후속곡 활동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골골 대기는.

침대에 걸터앉아 유권의 얼굴만 하염없이 내려다봤다. 언제쯤 질릴까 실험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끈질기게 그 얼굴만 내려다보는데 유권이 갑자기 눈을 팟 떴다. 놀란 내가 벌떡 일어서자 유권이 그런 내 행동을 눈으로 좇았다. 죄인이라도 된 마냥 어쩔 줄을 모르고 서있는 나를 보던 유권이 내 쪽을 등지고 모로 누워 다시 잠을 청하는 듯 했다. 뭐라도 한 마디 할 줄 알았던 기대감에 섭섭함이 몰려왔지만 그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짓이었다. 그저 이렇게 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고, 내 자신을 어르고 달래며 참아온 시간이 벌써 얼만데. 그러고 보면 이제 와서 다시 김유권을 갖고 싶다고 화를 내고 소리치고 키스했던 내 행동들은 왜 그 마음들을 기만하고 터져 나왔을까.

색색 숨소리가 듣고 싶었다. 다시 침대 위에 걸터앉아 유권의 옆모습을 살폈다. 지금쯤이면 잠들었겠지, 싶을 정도로 시간이 꽤 흘렀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어느새 내 손이 유권의 머리칼을 살살 만지고 있었다. 그 때 내 귀와 목덜미를 간질이던 그 머리카락들. 유권과의 그런 격한 포옹도, 키스도 그게 처음이었던 터라 여전히 그 순간이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 같다.

“나 아파.”

예고도 없이 들려오는 유권의 목소리에 놀라 그의 얼굴 근처를 맴돌던 손을 급하게 거뒀다. 눈을 감은 채 피식 웃은 유권이 천장을 향해 돌아누웠다. 열이 올라 붉어진 볼이 예뻤다. 유권이 예쁘지. 모든 걸 다 가진 사람 마냥 내게 묻던 그 남자가 떠올랐다. 내게 동의를 구하는 물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랑 잤냐?”

“…….”

“잤구나.”

“그게 그렇게 궁금했어?”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가수 애인 놀이 하는 거 재밌냐. 뭐가 그렇게 잘났어. 뭐가 그렇게 혼자 잘나서, 씨발.”

“우지호.”

“…….”

“마음에 없는 소리 하는 거 좋니.”

감겨있던 유권의 눈이 느리게 떠졌다. 그 눈을 한참을 내려다 봤다. 유권도 피하지 않고 내 시선을 그대로 받아냈다.

“맞아. 다 내 마음에 없는 말들이야.”

“너, 가사 쓸 때 솔직하잖아. 노래 할 때도 솔직하잖아.”

“너한테만 못 그래.”

“왜 나한테만 못 그래.”

“음악은 내가 사랑하는 만큼 결과가 나와 주거든. 근데 너,”

“…….”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해줄 거 아니잖아.”

유권의 입술이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미, 한 글자를 제대로 내뱉기도 전에 그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겹쳤다. 아픈 몸으론 어떻게 힘을 줘도 날 밀어내지 못할 거란 걸 아는지 그 날 밤처럼의 반항은 없다.

“나 아프다구.”

“감기 좀 같이 걸리는 게 뭐 어때서.”

“키스 해주면 나 놔줄 거니.”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입 꼬리를 끌어당기며 낮게 웃자 유권도 따라 웃는다. 내 입술이 다시 그의 입술 위에 포개졌다. 그 날 밤처럼 멋대로 혀를 들이밀 자신이 없어서 그저 그의 입술을 물고 애무하듯 부드럽게 핥기만 했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권의 혀가 내 입 속으로 쏙 들어왔다. 이불을 걷어낸 그의 양팔이 내 머리와 목을 감싸 안았다. 내 팔이 유권의 등 아래를 비집고 들어가 그를 끌어안았다. 우리의 혀가 벌어질 듯 아슬아슬한 그 경계에서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시작했다.

내 몸에 닿는 유권의 모든 것이 뜨거웠다. 지금 이대로라면 활활 타올라도 좋았다. 김유권이 그 뜨거운 혀로 내 혀를 애무하는 지금이. 그 뜨거운 손으로 내 뒤통수와 뒷목을 어루만지는 지금이. 그 뜨거운 몸을 내가 끌어안고 있단 지금이, 죽을 만큼 좋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호흡을 하지 않아도 키스로 서로에게 숨을 불어 넣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지금 이 순간 그 생각들이 간절했다.

그래, 그게 오로지 사랑해서 하는 행위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키스는 지금까지 우리가 나눠온 어떤 대화보다 어떤 행동보다 더 애틋하고 그리고 슬펐다. 그리고 비록 네가 바라는 대로 내가 널 이대로 놓아줄 수는 없겠지만, 너에게도 나에게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키스겠지.

유권의 양 손이 내 어깨를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그 손이 내 겉옷을 어깨 밖으로 밀어냈다.

유권아, 그 남자는 아직 너를 몰라. 네 안에 숨겨진 보석을 못 봐.


*


김유권에게 큰 변화를 기대 하는 것은 이제 접었다. 죄를 짓는 기분을 하고서도 그 날 유권을 안았던 이유는 이렇게라도 그를 안으면 그가 내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이제 그딴 기대 조금도 하지 않기로 했다. 김유권은 여전히 내가 아는 김유권이었다. 여전히 무심하고 담담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그의 태도가 서러워서 그 날 그를 안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를 했다.

벌써 후속곡 활동이 막바지에 달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조금은 가뿐한 마음이 되었다. 급하게 회사에 다녀와야 한다며 나를 집 근처에 내려주고 간 매니저 형 때문에 개인 스케줄을 마치고 혼자 집 앞 골목을 돌아 들어갈 때였다.

“형, 형…….”

“놔.”

“가지 마, 형.”

“놓으라고.”

뒷걸음질 쳤다. 그 때 방송국에서처럼 벽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돌아봤다. 믿기지가 않아서 눈을 마구 비볐다. 유권이 울며 그 남자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미안해, 형. 잘못 했어. 내가 다 잘못 했어.”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듣고 있는 상황이 다 거짓말이라고 누가 좀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만 하자.”

“형, 혀엉…….”

단호한 남자의 팔이 유권의 손을 뿌리쳤다. 그런 그를 유권은 잡고, 잡고 또 잡았다. 넌 끝까지 사람 질리게 하는 구나. 그렇게 심한 말을 내뱉는 남자여도 유권은 개의치 않고 그를 붙잡고 매달렸다.

“형, 나 형 아니면 안 돼. 혀엉…….”

결국 유권을 바닥에 팽개치듯 떨쳐낸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집 앞에서 멀어졌다. 이미 한 번 같은 상황을 겪었었고, 그쯤 했으면 포기할 법도 하다 생각했는데 유권은 곧바로 일어나 멀어지는 남자의 뒤를 좇았다. 병신새끼. 내 입에서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유권을 쫓아가 그의 팔을 붙잡고 고집스런 걸음을 질질 끌고 집 앞으로 다시 데려오려 애를 썼다.

“놔!”

“가지 마.”

“놔! 이거 놔, 우지호!”

유권이 울며불며 팔을 마구 비틀었다. 나도 지지 않고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골목길을 돌아 나간 남자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도 않았다.

“이거 놓으라고!”

“김유권!!!”

내가 빽 소리를 지르자 그제 서야 나를 돌아보며 멈춘 유권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어깨를 툭툭 치듯 때렸다.

“너 때문이야. 흐윽, 흑, 너 때문이라고.”

“유권아.”

“흐윽, 나한테 왜 그래. 대체 나한테 왜애…….”

“…….”

“왜, 왜 너는 나한테 질리지도 않아. 내가 지겹지도 않니?”

도저히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유권을 겨우 달래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집 안에 있던 멤버들이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유권은 지친 걸음으로 침대로 올라갔고, 나는 방문을 닫고 그 앞에 주저앉아 한동안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움직일 생각도 않고 있었다.

병신, 병신이 따로 없었다. 벌써 두 번째 같은 이별을 당하면서 난 당신 없이 안 된다며 또 붙잡고 있는 꼴이었다.

그 때의 두 사람의 이별이 떠올랐다. 그 때도 집 앞에서, 그 남자가 유권을 밀어냈다. 유권은 그 때도 제 어깨를 떠밀었던 남자의 손을 붙잡고 매달렸었다. 그 날 이후의 김유권은 식음 전폐에 며칠 밤을 울며 보냈고, 나는 그 때 처음 김유권에게 손찌검을 했었다. 그러다 죽을 거냐고. 너 죽으면 누가 네 노래하고, 누가 네 춤추고, 누가 네 일 하냐고. 어쩌면 그 때 나는 김유권을 갖겠다는 욕심은 접어두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 유권은 울며 잠에서 깼다. 멤버들 모두가 각자 침대 위에서 유권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눈을 비비고 하품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김유권, 병신아.”

침대에서 일어나 유권의 침대 가까이로 갔다. 침대 위로 손을 뻗어 유권의 얼굴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내 손이 우악스럽게 그의 눈물을 훔쳐냈다.

밥상머리에 앉아서는 깨작깨작 밥알을 새고 있었다. 형, 팍팍 좀 먹어요. 해골 되요, 해골. 분위기를 좀 바꿔보려는 지훈의 패기 넘치는 말에도 유권은 혓바닥으로 밥알을 하나하나 뭉개고 있었다. 그 꼴이 또 보기 싫어서 그의 젓가락이 밥알을 새고 있는 밥그릇으로 반찬을 놓아주었다. 잠시 젓가락질을 멈춘 유권이 곧 그걸 치워내고 다시 밥을 깨작였다.

“안 먹으려면 저 주세요.”

지훈이 냉큼 유권이 걷어낸 반찬에 젓가락을 가져갔지만 내가 그런 지훈의 젓가락을 쳐냈다. 숟가락 위에 밥을 가득 퍼 담고 김치 하나를 올려 유권의 입 앞에 가져갔다. 유권이 잠깐 그걸 내려다보다 고개를 뒤로 뺐다.

“먹으라고 할 때 쳐 먹어, 좀.”

내 손이 유권의 턱을 잡아 입을 벌리게 하고 그 안에 밥이 든 숟가락을 우겨넣었다. 내 손에 잡힌 얼굴을 뒤로 빼내려고 억지로 고개를 저어대는 유권의 행동에도 나는 그에게 밥을 먹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뱉으려면 내 손에 뱉어. 유권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밥을 씹었다. 전쟁 같은 아침이었다.

참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했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안무 연습 도중에 주저앉아 버리는 그에 헛웃음이 났다. 이젠 화도 나지 않았다. 그의 앞으로 다가가 나도 덩달아 앉아버렸다.

“그 때처럼 그러지 마.”

“…….”

“나는,”

다른 때 같았다면 이런 말을 할 때는 멤버들이 걸렸을 텐데, 아직 꺼지지 않은 음악 소리 때문에 묻힐 것 같아 다시 운을 뗐다.

“니가 나 안 좋아하는 것 보다, 그 자식 때문에 힘든 게 더 싫어.”

유권이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더니 결국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


그 남자를 다시 만났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라고 그렇게 속으로 욕을 했으면서 마주하고 나니 화가 먼저 치솟았다. 인사고 뭐고 대뜸 쏘아 붙인 말이,

"잠깐 얘기 좀 해요."

지금까지 그를 만났을 때 단 한 번도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건 적이 없어서 그도 적잖이 놀랐는지, 아니면 유권과의 이별을 내가 지켜봤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 입장에서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다짜고짜 얘기 좀 하자고 나서는 게 궁금해선지, 크지 않은 눈을 약간 치켜떴다가 웃으며 무슨 얘기, 하고 답했다.

“유권이, 왜 가지고 노셨어요?”

“…….”

뜬금없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와 유권이 헤어진 지 고작 이틀이 지났으니까. 그렇다고 가지고 놀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유권을 운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유권은 그 정도 존재 밖에 아니었을 거라 생각하면 그런 표현도 과분했다.

“너흰 아직 너무 어려.”

“…….”

“어린만큼 더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그 열정은 상대방을 지치게 만들지.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은 그러질 못해. 한 곳에 오래 정착하는 것도 못하고.”

그의 표정이 마치 세상을 다 살고 곧 죽을 사람처럼 처연해보였다. 그러니까, 나도 이런 내 삶이 힘들고 지친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유권인 아직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그의 말과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정말 내가 그보다 어려서, 아직 사랑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게 한참이나 진 것 같았다. 그랬지. 유권이 그와 다시 만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번에도 져줘야 할 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을 먹었었지.

무슨 정신으로 개인 스케줄을 소화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무얼 하고 돌아왔는지도 모르면서 낮에 만났던 그 남자가 한 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흰 아직 너무 어려.

“유권인?”

집에 들어오자마자 유권을 먼저 찾는 내가 못 마땅한 건지 장난스럽게 눈가를 찡그려 보인 지훈이 턱짓으로 방을 가리켰다. 현관이 설렁한 걸 보니 다른 멤버들은 없는 것 같았다. 유권에게 무슨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얼굴이 보고 싶어서 방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가 내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일찍, 왔네.”

“응.”

그의 표정에 어색해 죽겠다는 억지스러움이 역력했다. 그런 평범한 대화마저 어색한 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역시나 딱히 할 말이 있어서 그를 찾은 게 아니라 그 이상 어떤 말도 건네지 못하고 나도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

한참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게 이상하다고는 생각 들지 않았지만 숨이 막힌다고 느껴질 때 쯤 유권이 입을 열었다.

“지호야.”

“…….”

“비가 오고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는데, 그 사이를 비도 안 맞고 총알도 안 맞고 걸어 와. 그 사람, 누굴 것 같아?”

유권의 뜬금없는 질문에 내가 고개를 틀어 그를 돌아보자 그도 나를 보며 예의 그 해사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초능력자? 뱀파이어?”

“아니”

“…….”

“실연당한 사람.”

그 말을 하는 유권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내 눈엔 세상 누구보다 슬퍼 보였다.

“이별의 상처가 너무 커서 비에 젖는 것보다, 총에 맞는 것보다 이별한 게 더 시리고 아픈 거야.”

“유권아.”

“이제 나 놓아 달란 말 안 해.”

나는 오늘 그 남자에게 들었던 말을 유권에게 해주지 않기로 했다. 그저 시간이 곧 지나갈 것이라 믿고 싶어서. 이미 어른인 줄 알았던 우리가 보란 듯이 긴 성장 통을 겪었고 우리는 그 성장 통으로 차츰 어른이 되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머지않아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며 후회도 하고 서로의 사랑을 이해도 하겠지.

유권이 엉덩이를 내 옆에 붙여 앉았다. 내가 유권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를 감싸 안았을 때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내 품으로 고개를 기댔다.

그러나 김유권은 날 좋아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 좋아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품에 고개를 기댄 유권이 푸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이제 웃을 수 있었다. 그와 내 어깨가 함께 들썩였다.

이제 완연한 여름이었다. 장마보다 더 짙었고 태풍보다 더 위태했던 우리의 계절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 계절만큼 불안정했던 우리의 사랑도 결국 도착점에 달했다.

 

 

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