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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30 그냥가요 외전 for Gemma

 

 

그냥 가요 외전 for Gemma

 

 

 

겨울이 얼마나 진행 중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모두가 축하와 안녕을 비는 시기에 나는 홀로 시간을 보내며 누군가에게 지배되는 하루들을 그리워했다. 그 누군가를 누구라고 정하진 못했지만 그리워하는 일로 겨울의 절반가량을 보낸 것 같다. 한동안 발을 내딛지 않았던 새하얀 세상은 여전히 춥고 나에게 싸늘했다. 새벽녘에, 아무도 치우지 않은 아파트 단지 앞에 쌓인 눈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다시 터덜터덜 돌아 걸었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바로 열리는 문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저 눈길을 밟고 어디론가 향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느덧 봄이 오고, 우리에게도 시작해야 할 시기가 왔다. 회사에서는 컴백 시기와 앨범 작업 등에 대하여 이야기 했지만 우지호는 내게로 오지 않았다. 곡 작업을 시작하고 녹음을 하고, 컨셉 회의와 앨범 작업까지 모두 거쳤지만 그와 나에겐 이렇다 할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우리의 계절이 여름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새로운 옷을 입으며 최선의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뀔 때까지도 우지호와 내 사이에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만든 이와 표현하는 이의, 어느 정도의 공감과 적지 않은 타협이 있었을 뿐. 그렇지만 나는 우리 관계에 대한 어떠한 '표현'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의 불안정하고 시들어가는 마음까지도, 우지호의 무덤덤하고 태연한 태도에 조용히 숨겨야 했다.

 

나는 1년 전 사랑 때문에 행복했다가 그 뒤 꼬박 1년을 사랑 때문에 힘들어했다. 사실 그게 사랑이 맞는 지도 잘 파악하지 못하면서.

 

뜻밖의 일은 그 이름에 걸맞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일어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예기치 못한 순간’은 어쩌면 누군가에겐 기다려왔던 순간일지도.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1년 전의 어느 날들이었다면 참고 버티지 못했을, 뜻밖의 일. 그로 인해 갑자기, 지난날에 내가 우지호에게 보냈던 메시지들만큼이나 그와 나의 관계가 수상해지기 시작했다.

 

“지호씨는요?”

 

컴백의 문을 여는 쇼케이스 현장이었고, 우리는 팬들이 공연 시작 전 미리 남겨준 질문에 답을 하는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질문은 무려 ‘블락비 오빠들이 생각하는 블락비 최고의 커플링은?’이었다. 자신에게로 던져진 뜻밖의 질문에 우지호는 잠깐 벙쪄있다가 마이크를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나는 그 질문을 태일형이 지호에게 물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넓은 객석과 형체가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둡고 먼 팬들의 모습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시선을 두고 있었다.

 

“요새 우지호 김유권이 대세 아닌가요?"

 

그리고 뜬금없이 들려오는 내 이름 덕에 상황으로 돌아왔다. 무슨 소릴 하고 있나, 멤버들의 표정을 둘러보니 다들 당황해 아무 말도 못하고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멤버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표정으로 상황을 물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우지호만이 질문지를 다시 확인하고 그 안에 적힌 팬의 이름을 부르며 대답을 덧붙였다.

 

“민경이? 민경이는 커플링 뭐 밀어? 이제 우지호 김유권 밀어. 오빠는 짘권 민다.”

 

그러고선 자, 다음 질문! 하며 질문들이 적힌 판에서 다른 포스트잇 하나를 떼어내 태연하게 읽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멤버들 모두가 억지로 별로 재밌지도 않은 질문들에 하하호호 웃으며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혼자 있는 양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무대 뒤에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게 뭐지? 한참 생각하며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손봐주는 걸 가만히 받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지훈이와 태일형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호형 왜 저래요?”

“몰라, 아까 유권이 표정 봤어?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하는 것 같던데."

“부부싸움 한 것 마냥 몇 달 동안 냉전이더니……. 이번 앨범 작업 힘들었다고 미친 거 아니에요?"

“유권이랑 잘 풀었나? 아닌 것 같던데."

“물어볼까요?”

“맞아 죽을 일 있냐?"

“아니야, 유권이 형은 나 안 때려."

 

작게 속삭인다고 속삭이지만 너무나 잘 들려서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지훈의 마지막 말에 두 사람이 큭큭 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우리가 있던 공간의 암막이 벌컥 젖혀지고 우지호가 들어섰다. 갑시다, 큰 소리로 말한 우지호는 내 뒤에 있던 두 사람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돌아가려 몸을 돌리던 그 때, 우지호의 눈이 가까이 있는 나에게 닿았지만 잠깐 쳐다보고 말 뿐 걸음을 빨리해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런 그의 행동에 지금 상황을 떠나서, 내가 느끼는 이게 무슨 기분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잠깐 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유권이형, 빨리 가요. 재촉하는 지훈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대로 계속 앉아있었을 지도 몰랐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금요일 오후에 나는 음악 방송의 생방송 무대를 기다리다 대기실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주위는 스텝들과 멤버들로 적당히 시끄러웠지만 참을 수 없는 피곤이 주체하지 못하도록 밀려와 눈을 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싶었을 때 잠결에 호들갑스런 목소리 하나 때문에 눈을 떴다. 지훈이 내 눈 앞으로 제 휴대전화 화면을 들이밀며 형, 유권이형,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지훈과 전화기를 번갈아 보았다.

 

“이것 좀 봐 봐요."

“왜애, 뭔데."

 

나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눈을 비비며 지훈의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글자는 ‘지코’라는 이름이었다. 짐작컨대 어젯밤 컴백무대를 마치고 우지호 혼자 인터뷰가 있어 홀로 스케줄을 지속해야 했던 때의 것인 것 같았다. 이걸 내가 왜 봐, 하며 지훈에게 조그만 기계를 돌려주자 그는 속이 탄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읽어보라니까! 짜증을 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화면을 올려 우지호의 사진과 그 아래 기사들을 눈으로 훑었다.

 

굵게 표시된 질문들이 하도 많아서 나는 귀찮아 슥슥 화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지훈이 프로듀서, 프로듀서 지코씨 그거, 그거. 하며 어느새 내 옆으로 와 전화기 화면을 같이 보고 있었다. 나는 지훈이 가리킨 부분에서 손가락을 멈추고 질문을 읽었다. 프로듀서 지코씨가 이번 앨범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확인한 후 이게 뭐, 하며 지훈을 돌아보자 지훈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멤버 형들이 있는 곳으로 쫄래쫄래 가버렸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그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Q. 프로듀서 지코씨가 이번 앨범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음 (한참을 망설이고) 저희 멤버인 유권씨 파트예요.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을 유권씨 파트를 미리 생각하고 작업을 했어요. 그 부분을 정해 놓은 후에, 그걸 중심으로 작곡과 작사를 했어요.

Q. 모든 작업을 멤버 유권씨를 중심으로 작업 한 이유는요?

A. 제가 유권씨 목소리를 좋아해요. 지금까지 만들었던 곡을 보니까, 그 노래에서 가장 포인트가 되어야 할 부분들을 유권씨가 불렀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좋아하는 목소리를 좋아하는 부분에 갖다 붙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엔 아예 좋아하는 걸 축으로 해서 시작을 해버렸어요. 물론 유권씨는 모르겠지만, 아니 같이 곡을 만들었던 분들 외에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노래들이 만족스럽게 나와 준 것 같아요.

Q. 어제 쇼케이스에서 우지호김유권 커플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던데, 그것도 관련이 없지 않아 있는 건가요?

A.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제가 유권씨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고 있으니 그렇게 말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뒤로 이어지는 다른 질문들은 읽지 않은 채 지훈의 휴대전화기를 탁상에 올려놓고 대기실 안을 둘러보았다. 우지호는 없었고 멤버들은 한 쪽에 모여 뭐가 그리 재밌는지 저들끼리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알 수가 없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후에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손에, 내가 그대로 다시 잠 들었구나 깨달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음에도 상황 파악은 되지 않았다. 버릇처럼 주변을 휘휘 둘러보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만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우지호,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맞추고 있는 우지호였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내가 먼저 다가가 건넸던 그 한 마디 이후로, 대기실 밖으로 나온 그와 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우리 외 남들의 목소리로 시끄럽지만 그런 필요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찬 정적.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그의 발치를 내내 보고 있다가 고개를 쳐들었다. 나를 계속 보고 있었는지 바로 마주치는 그의 눈이 어딘가 모르게 이전과 달라보여서 울컥했다.

 

“기사, ……읽었어."

 

내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지만 우지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왜 그래? 왜 그러는지 말 좀 해주라."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짓고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하는 내 앞에서 우지호는 한숨을 쉬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것도 아니야?"

“……뭐?"

“지금까지 내가 너무 들이댔잖아. 그 날 연습실에서 너한테 소리 치고 난 후에…… 정말 많이 생각했어. 돌아보니까 내가, 싫다는 애 내 맘대로 붙들고 억지를 부리고 있더라고. 그래서 방법을 좀 바꿨어."

“……"

“그래도 아니야?"

 

나는 알 수 없는 이야길 듣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우지호의 뒤로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만 좇았다. 그는 제 몸을 오른쪽에서 왼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지르며 정신없게 눈알을 굴리는 나를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아니야?

 

응, 아니야. 말하고 싶었다. 차마 말이 나오질 않아서 떨리는 입술을 한참 벌렸다 닫았다를 반복하다가, 울상을 지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니야, 나는 예전의 너를 그리워하고 있었단 말이야. 나는 나를 네 맘대로 붙들고 억지를 부리던 너를 다시 만나고 싶단 말이야.

 

꿈을 꾸었다. 나는 황망한 바다 속을 가르고 있었고 우지호는 그런 나를 쫓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속도를 늦췄을 때 우지호가 나의 발목을 붙잡았고 우리는 찬 물 속에서 벗어나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서 있었다.

 

‘우지호……!'

 

나는 격앙된 목소리로 우지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우지호가 내게 입을 맞춰왔고 나는 그의 몸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내가 그의 가슴팍을 때리며 몸부림 칠 때 그의 키스가 멈추었고,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내 눈에는 분노와 슬픔 같은 것들이 어려있었다. 현실의 나는 아니야, 아니야, 를 외치며 잠에서 깼다.

 

온전히 잠에서 깬 후 입 밖으로 새어 나온 아니야는 중얼거리듯 뱉어져서 금세 사라졌다. 내 공간의 맞은 편 침대 아래층에서 잠들어있는 우지호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꿈의 뒷내용을 알고 있다. 우지호가, 방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붙잡아 끌어안고, 나는 그에게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냐, 나 좀 놓아 달라, 말한다.

 

꿈속에서의 나는, 일 년 전의 나는 왜 그리도 못 됐고 이기적이었던가.

 

“김유권." "지호야."

 

멤버들이 모두 나가고 텅 빈 연습실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던 우지호와 나는, 한동안 조용하던 입을 동시에 떼었다. 마찬가지로 동시에 서로를 향했던 고개와 시선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머뭇거리다 방향을 옮겼다. 나는 말 해, 두 글자를 꺼내고 입을 다물었다. 다시 침묵이 흐르던 연습실의 낮은 곳에 그의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퍼졌다.

 

“꿈을 꿨어. 네가 그 사람을 다시 만나는 꿈. 꿈속에서 나는, 너무 싫었는지 끔찍했는지 힘들었는지 아니 셋 다였는지,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너를, 집 앞에서 울며불며 붙잡고 있더라. 내가 너무 서럽게 우는 거야, 한 번도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는데. 꿈속에서도 너는 나를 울리더라.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는데도……."

“나도 꿈을 꿨어. 네가 나에게 키스하고 나를 끌어안는 꿈. 그리고 나는 너에게 나를 놓아달라고 말을 하더라. 그러는 내가 너무 싫었는데 그렇게라도 좋으니 네가 나를 다시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봐. 꿈속에서도 너는 나를 정말 많이 좋아하는구나.”

“꿈속에서도 나만 너를 정말 많이 좋아하는구나."

 

나는 할 말을 잃고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우지호는 연습실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슬쩍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우지호의 웃는 모습이 슬프다 못해 죄책감까지 느끼게 해서 감정의 조절이 되질 않았다. 왈칵 터진 울음은 그칠 줄을 모르고 나는 엉엉 소리를 내며 서럽게 울었다.

 

“그게, 그게 아닌데."

 

울음 섞인 내 목소리를 우지호는 가만히 들었다.

 

“내가, 우지호, 너에게 가는 길을, 쉽게 찾지 못해서, 멀리 돌아가느라 이제야 왔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펑펑 울었다. 연습실에 내 울음소리가 가득 퍼지던 그 때에, 어깨 위로 묵직한 손이 내려앉았다.

 

“고마워."

 

따뜻한 한 마디를 듣고, 나는 그리웠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Posted by Jo_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