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표지는 인피니트 팬픽카페 리미트리스의 세인님께서 수고해 주셨어요.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울타리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던 어린 우리. 말과 행동으로 모든 걸 드러내야만 하는 병에 걸렸던, 감추거나 간직하는 걸 몰랐던 치기어린 우리. 그 시절의 나는 나를 충분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서로의 가슴 속에 누군가 한 사람쯤은 지독한 암 덩어리처럼 키우고 있었던 시절. 김명수에게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란 걸 배웠고, 남우현에게선 서로의 불행을 온전히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라고 배웠다.

 

 

 

울타리 下 - 10

 

 

 

심장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건 내가 갖고, 뜨겁고 크게 뛰는 나머지 하나는 연우의 텅 빈 가슴에 심어 주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이젠 다 괜찮다고 말 해주고 싶었다. 연우 넌 살아갈 그리고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 해주고 싶었다.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는 연우의 기일을 기리러 연우를 두 차례 방문했다. 첫 날은 우현과 함께였다.

 

 

“되게 낯설다. 매번 내가 내려갔는데, 처음으로 네가 올라오니까….”

 

 

그런 말을 하는 우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별 달리 할 말은 없어서 미소만 지어보이다가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울의 어느 외곽으로 가는 버스를 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멀찍이 연우가 있는 납골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죽어 사라진 건 모두 어디로 가는 지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은 죽으면 살과 뼈를 남기고 가는데, 그것들은 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는 건지에 대해. 지금보다도 더 어렸던 그 때, 지금보다도 세상을 더 몰랐던 그 때…, 연우의 발인에 참석하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게 되면 연우는 어디로 가는 건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연우의 살과 뼈는 어디로 가는 건지…. 인적 드문 어느 산 어귀의 땅을 파 그곳에 묻힐까, 연우는. 가루가 되어 강이나 바다에 뿌려질까, 연우는. 연우가 이렇게 빨리 죽을 거라는 걸 알았다면 연우에게 한 번이라도 물었을 거였다. 연우야, 너는 어디로 가고 싶어? 땅 속으로? 바다 아래로?

 

사람들은 흔히들 누군가 죽었을 때 하늘나라로 간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그 때는 그 말에 가없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죄다 땅에 묻거나 물 위에 뿌리거나 혹은 작은 항아리에 담아 작은 유리창 안에 가둬두는 주제에, 사람들은 왜 뻔뻔하게 ‘하늘나라로 간다’는 말을 쓰는 걸까. 왜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미화 하는 거지 싶었다.

 

연우는 작은 항아리에 담겨 작은 유리창 안에 갇혔다. 연우는… 가루가 되어 그곳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어쩌면 잘 된 일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우가 땅 속으로 들어갔거나 바다에 흩뿌려졌다면, 연우를 찾기가 그리고 만나기가 더욱 어려웠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연우를 찾아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상상을, 바다 속으로 하염없이 헤엄쳐 들어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연우를 따라 죽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원망하는 마음을 좀 덜어내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

‘납골당에 시신을 모셔두는 일이 무료는 아니란다.’

‘…돈을 내야만 납골당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당연하지. 어쨌든 공간을 빌리는 일이니까.’

‘얼마… 얼마나요?’

‘글쎄다. 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몇 백 만원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어.’

 

 

연우에게 처음 다녀왔던 이후 남자에게 들은 말이었다. 그 말이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어서, 포털 사이트에 ‘납골당’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었다. 친절하게도 이용가격에 대해 쉽게 확인해볼 수 있었고, 여러 군데를 보았지만 최소 가격은 300만원이었다. 20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값이었다. 누군가의 300만원으로 그곳에 가루가 된 연우가 지낼 수 있는 거였다. 그것도 20년 동안이나….

 

 

‘누구인지 알고 계세요?’

‘연우를 위해 그 돈을 지불한 사람 말이니?’

‘네.’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왜 묻니.’

 

 

남자의 그 말에는 그저 고개만 푹 숙여버리고 말았다. 알고 있었다,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연우를 위해 그 돈을 지불한 사람은 너무 뻔했다. 우현의 부모님일 게 당연했다. 장례비용 역시 그들이 모두 부담했을 것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원망하는 마음을 좀 덜어내라고.’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걸려 있었다. 죄 지은 걸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부끄럽기도 했다. 우현의 부친을 원망하는 마음이 이제는 없다고 하면 거짓이란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남자는 그 말 뒤에 ‘아니지만’이라는 부정어를 사용했다. 그 말은 꼭, 원망하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는 말로 들렸다. 그건 어쨌든 마음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공기가 습했다. 연우를 떠나보내던 그 때에도 날씨는 비슷했다.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흐리고, 날이 어두웠었다. 어제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연우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은 아직 축축이 젖어있었다. 궂은 우기가 계속 되는 장마철에, 물에 몸을 담그고 죽은 연우는… 어쩌면 바다로, 물에 휩쓸려 바다로 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느리게 걷는 우현의 걸음을 맞추어 걸었다. 우현의 예쁜 검은색 스니커즈가 물이 고인 곳을 피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성종아, 이쪽으로 와. 거기 물 많이 고였다.” 상냥한 우현은 오늘 뿐만 아니라 모든 날에 그런 류의 말을 건네 왔다. 늘 제 옆에서 걷는 다른 이의 앞에 놓인 것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우현은. 그리고 그가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대할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연우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우현아, 너 뭐 할 말 있어?”

 

 

건물 안으로 들어와 연우의 앞에 나란히 선 이후부터 왠지 우현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성종은 생각했다. 고개를 기울여 우현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는 예의 그 익숙한 웃음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작게 움직였다. 그가 휴대전화 케이스 뒤에서 곱게 접힌 흰 색의 쪽지를 하나 꺼냈다. 알고 있었다, 누군가 연우의 유골 옆에 종종 그런 쪽지를 꾸준히 두고 간다는 것을.

 

 

“너였구나.”

“응.”

“하긴. 너 말고 다른 사람일 리가 없지.”

“……”

“근데 너 연우 보러 되게 자주 왔나보다. 쪽지 개수만 봐도 나보다 더 많이 온 것 같은데, 그동안.”

 

 

그런 말을 하며 연우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 옆에 놓인 쪽지가 몇 개인지 눈으로 훑었다. 대충 봐도 열 개는 족히 넘는 개수였다.

 

 

“사실, 더 자주 왔었어. 매 주말마다 연우 보러 오기도 했었어.”

“……”

“나 매주 토요일마다 성종이 너한테 올 수 있는데, 가끔 일요일에 오는 이유도 연우 때문이야. 토요일에 연우 보러 오는 주에는 일요일에 널 보러 간 거야.”

“…그랬구나.”

 

 

우현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들려와서 걱정스런 마음에 그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그 물기가 밴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의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진짜 연우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우현을 다시 만난 이후로 웃었던 날이 반, 울었던 날이 반인 것 같았다. 그가 웃는 날이면 참 예쁘게 잘도 웃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같은 얼굴은 지금까지 보았던 웃는 얼굴과는 또 달라서 끝도 없이 슬퍼졌다. ‘살아있던’ 연우 앞에서 우현은 늘 이렇게 웃었을 것만 같아서였다.

 

작은 유리창을 열고 그 안에 가득 모인 쪽지 위에 오늘 가져온 것을 얹어두는 우현의 손을 보았다.

 

 

“뭐라고 썼는지 물어봐도 돼?”

“아니, 말 안 할 거야.”

“그럼 그냥 읽어봐도 돼?”

“아니, 당연히 안 되지!”

 

 

우현이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급하게 유리문을 닫았다. 그런 우현이 귀여워서 조금 웃었다. 사실 처음부터, 처음 그 쪽지들을 발견했던 때부터 그 내용을 알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걸 하나라도 열어버리는 순간 연우에 대한 누군가의 흰 마음에 검은 먹칠을 해버리는 게 될 것 같다고 여겨왔다. 우현의 마음이 까맣게 물드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 하얗고 고운 마음을 그대로 지켜주고 싶었다.

 

우현은 한참 대답이 없는 연우에게 혼자 말을 걸었다.

 

지난주에 못 와서 미안해, 연우야. 지난주엔 성종이한테 다녀왔어. 오늘은 성종이랑 같이 널 보러 왔으니까 삐지면 안 돼. 네가 있는 세상은 지금 날씨가 어때? 여긴 이맘쯤이면 늘 똑같아.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와. 하늘도 연우 네가 떠난 게 슬픈가봐.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연우야? 이 땅에 있었을 땐, 많이 아팠잖아. 거기선 아픈 거 하나 없이 건강했으면 좋겠어. 매번 올 때마다 하는 말 또 하고 또 하니까 지겹지? …성종이 많이 보고 싶었지, 연우야. 사실 나는 연우 네가… 죽었을 때…, 성종일 가장 많이 원망 했었어. 성종이가 옆에 없어서 네가 그렇게 떠난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때 성종이가 네 곁에 계속 있어주었다면…, 넌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까? 우리는 지금 좀 다를까, 연우야? 그랬다면 네가 죽지 않았을까.

 

그런 넋두리를 느릿느릿 꺼내놓던 우현은 갑자기 몸을 홱 돌려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에게 시간이 필요한 건지, 아니면 그의 옆에 있어줘야 하는 건지 헷갈려서 어찌 해야 좋은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쫓아나간 곳에 있는 우현의 얼굴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몇 분간을 작은 유리 안에 있는 연우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요란하게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현아.”

 

 

빗소리 때문에 결국 연우를 등지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우현은 건물 앞 처마 아래에서, 고개를 위로 꺾은 채 비가 오는 걸 보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만 더 불었더라면 비를 다 맞을 것 같은 위치였다.

 

 

“나 많이 미웠지. 미안해.”

“내가 미안해, 성종아.”

 

 

우현의 옆에 나란히 섰다. 쌓였던 오해가 결국은 이렇게 이해가 되었다. 그걸 오해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원망의 감정을 갖기 전에 원망의 대상이 가진 생각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었으니 오해라는 표현이 틀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를 원망했던 시간들을 지나 결국 ‘미안해’ 그 한 마디에 도달한 것이었다. 쌍방으로 오가는 사과에 다다라서야 두 사람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성종아.”

“…응.”

“네 생일에도 같이 오자.”

“……”

“연우 생일이기도 하잖아.”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우현에게 할 말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우선은 생각 저편으로 멀찍이 밀어둔 상태였다. 성종 본인 그리고 연우의 생일이라면 세 달 뒤였다. 그런데 그 고작 세 달 뒤에 이곳에 또 같이 오자는 그 말에 그러자는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우현아. 나는 연우가 바다로 가고 싶었던 건 아닌가 생각해.”

“응?”

“자꾸 비가 오거든, 연우를 만나러 오면.”

“그런가. 연우… 바다 좋아했었나. 아니면 비를 좋아했었나.”

“아무래도, 나라도 바다에 가야할 것 같아.”

“바다 보러 가고 싶어, 성종아?”

“아니…. 바닷가에라도 가서 살아야 할 것 같아.”

“응?”

“우현아, 넌…,”

“……”

“내가 또 사라지면 나를 또 찾을 거니?”

“잘… 모르겠어.”

 

 

성종을 향했던 우현의 얼굴이 천천히 정면을 향해 돌려졌다. 우현은 더없이 슬픈 눈이 되어 비가 우수수 떨어지는 허공만을 쳐다보았다. 우현은 이미 눈치 챘는지도 몰랐다. 성종이 또 떠날 거라는 걸….

 

 

“근데, 예전에… 김명수, 걔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

“성종이 너 만나려고 걔네 집 앞에 갔었는데 김명수가 나와서 그러더라. 그만 찾아오라고, 널 좀 존중해주라고.”

“……”

“성종이 네가 또 사라진다면, 음… 그땐 정말 네가 너만을 위해서 떠난 거라고 생각하려고. 대신…,”

“……”

“멀리 있어도 종종 연락해줬으면 좋겠어.”

“…응.”

“나를 연우라고 생각해도 괜찮으니까. 연우야, 잘 지내? 라고 연락해줘도 난 좋을 것 같아.”

“……”

“연우야, 여긴 또 비가 와…. 연우야, 오늘은 날씨가 참 좋다…. 그냥 그렇게라도 좋으니까."

“…그럴게.”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또. 또, 우현의 그 웃는 얼굴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결국 그냥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여전히 심장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작은 건 내가 갖고, 뜨겁고 크게 뛰는 나머지 하나는 연우의 텅 빈 가슴에 심어 주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이젠 다 괜찮다고 말 해주고 싶다. 연우 넌 살아갈 그리고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 해주고 싶다. 너를 이렇게나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며, 우현의 팔을 끌어다 연우의 앞에 앉혀주고 싶다. 나 말고도 너를 위해 백 번, 천 번을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 우현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며. 설령 우현이 너를 위해 백 번, 천 번을 죽지 못할 지라도, 그런 각오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를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며.

 

 

“우현아.”

“응.”

“나는 네가, 연우를 너무 오랫동안 그리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응.”

“2년이나 지났잖아. 연우도 이제 충분히 알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알 거야, 연우는. 그러니까 이제, 일 년에 두 번만 그리워하자.”

“연우 기일이랑 생일?”

“응.”

 

 

한참 뒤에야 우현은 “그래, 그러자”라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 후로 그 자리에서 꽤 긴 시간을 서 있었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고, 결국 우산 없이 빗길을 달려 정류장에 올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도 그랬다, 연우에게 오던 날 분명 비가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우산을 챙기지 않았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우현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내 몸은 너를 떠날지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마음만은 떠나지 않을게.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나? 모두가 연우와 나를 떠났다고…. 그런데 우현이 넌 떠나지 않았잖아. 난 너에게 많은 빚을 졌어. 그걸 평생 갚을 거야, 아마도.

 

 

 

*

 

 

 

어제는 우현과 그리고 오늘은 명수와 연우를 찾아왔다. 우현의 자취방에서 하룻밤을 묵고 터미널에서 명수를 만나 버스를 탔다. 같은 길을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같은 공간에 도착했다. 성종은 내내 말이 없는 명수를 따라 침묵을 지켰다.

 

어제 우현과 그랬던 것처럼 연우의 앞에 명수와 나란히 섰다. 그리고 어제 우현이 그랬던 것처럼 명수 역시 대답이 없는 연우에게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데자뷰라도 되는 것 같은 그 순간들이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이상했다. 사람들은 죄다 죽은 사람 앞에 서면 본인 하고픈 얘기만 늘어놓는 버릇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걸까.

 

 

“이연우. 네가 날 아는지 모르겠다. 근데 이상하게 나는 널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다른 것이 있다면 저 말투와 저 목소리. 우현의 것과는 판이해서 그걸 듣는 일은 색다른 일로 느껴졌다.

 

 

“그러면 뭐하냐, 너랑은 인사 한 번 해본 적이 없는데. 야, 그거 아냐. 너 때문에 내가 진짜 좆같이 힘들었던 거. 이성종이 뭐라고 씨발, 너 죽고 이성종 사라졌을 때, 이성종도 뒤진 줄 알고 내가…. 몰라, 좆같았어, 진짜. …왜 그랬냐. 죽는 거, 안 어려웠냐. 이성종은 너 때문에 못 죽어서 겨우 살았는데, 네가 그렇게 쉽게 죽으면 어쩌라는 거야.”

 

 

짜증을 내는 것도 같던 명수의 목소리가 어쩐지 슬퍼진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라도 날 것처럼 더 슬퍼질 것 같아서 연우의 유골 옆에 놓인 우현의 쪽지 무덤만 쳐다보았다. 예쁘게 접힌 흰 종이들이 가득 쌓여있는 우현의 마음 무덤.

 

 

“근데 너도 많이 힘들었지. 알아. 알 것 같아. 나 너 봤거든, 그 영상에서. 보는 사람도 좆같은데 당한 너는 얼마나 좆같았겠나 싶더라. …거긴 편하냐. 거기서는 너 괴롭히는 새끼 없지? 있으면 말해. 귀신으로 나타나서라도 말해, 도와달라고. 내가 싸움으로는 안 질 자신 있거든. 씨발새끼들, 어떻게 해줄까? 평생 걷지도 못하고 눈도 못 뜨게 만들어줄까. 너 당한 거 다 갚아주려면 죽여 버리고 싶은데…, 근데 그러면 내가 감방 들어가야 돼서 그건 안 되겠다. 이성종 옆에 있어준다고 약속 했거든. 그래, 씨발… 이연우 너도, 이성종이 뭔데, 라고 말하고 싶지. 이성종은 대체 뭐냐 진짜.”

 

 

명수의 말을 듣고 있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왠지 목과 어깨가 무거운 것 같아서였다. 뭔지도 모르겠는 짐을 어깨 위에 잔뜩 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야 말로 묻고 싶어. 난 너에게 뭐니, 명수야.

 

 

“야, 이연우. 이성종이 뭔지 난 좀 알아야겠어. 그러니까 얘 또 혼자 사라지거나 하지 말라고 잔소리 좀 해라. 좆같다고 진짜. 왜 혼자 사라지고 지랄이야. 남겨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나봐. 이연우 너도 똑같아, 왜 남겨진 사람은 생각도 않냐. 그렇게 가니까 속 시원하냐, 씨발…. 그래, 속 시원하면 됐다. 네 인생인데 내가 뭘 어쩌겠냐. 그러니까 이성종도 이제 자기 인생 좀 살라고 말 좀 해줘라. 너 때문에 살았대, 얘는. 이성종 얘는 너보다 더 멍청하다고.”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명수의 말들이 무서워서 눈을 꾹 감아버렸다. 모두 맞는 말인데, 성종 자신도 연우를 잃고 그를 원망하며 울던 날에 떠난 그에게 했던 말들인데, 그 말을 혹시라도 정말 연우가 듣고 있을까봐 무서웠다.

 

연우야, 나도 데려가지 그랬어. 왜 나만 남겨두고 너 혼자 갔어? 남겨진 사람은 왜 생각도 않고 그렇게 갔어. 그래, 그래서 속이 후련해? 죽는다는 건 어때? 살아있는 것보다 나은 거야, 그건? 나를 이렇게 남겨두고 갈 만큼 죽는다는 건 괜찮은 일이야? 나는 너 때문에 살았는데 왜 너는 나를 두고 갔어.

 

그런 원망 섞인 물음들을 오랫동안 해왔다. 연우의 생각에 사무쳐 우는 날은 늘 그런 의미 없는, 닿는 이도 없는 질문들만 혼자 울음소리 속에 섞어 흘려보냈다. 그랬던 그 말들을 지금 명수가 연우가 잠든 곳 앞에서 하소연처럼 늘어놓았다.

 

팔을 작게 움직여 가까이 있던 명수의 손을 잡았다. 천천히 눈을 뜨고 명수의 얼굴을 바로 보았다. 어떤 기분인지 읽을 수 없는, 특별한 표정이 없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가 손을 꽉 잡아주었다.

 

 

“이성종.”

“응.”

“삼촌이랑 얘기 해봤어?”

“응.”

“뭐래, 삼촌이.”

“알아서 하시겠대.”

“뭘.”

“모르겠어. 그냥… 다 알아서 하시겠대. 다 책임지시겠대. 다 짊어지시겠대.”

“하….”

 

 

명수의 한숨이 땅이 꺼질 것처럼 깊었다. 아마 명수는 오늘 내내 그걸 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라면 조카인 명수라고 해도 아무 말도 안 했을 거란 예상과 함께.

 

 

“너는 어떡할 거야.”

“나… 뭘?”

“내가 맞춰볼까, 너 무슨 생각 하는지.”

“……”

“또 도망갈 생각하고 있잖아, 너.”

 

 

어깨가 자꾸 무거웠던 이유. 그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사람’을 삶에 들여놓고 또 그 ‘사람’들을 떠나는 일. 그건 이제 2년 전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떠날 거였으면 같은 ‘사람’을 또 이 삶에 들이면 안 되는 거였다, 애초에.

 

 

“명수야, 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

“또 도망가고 싶어. 네 말처럼 나 진짜 멍청인가 봐.”

“맞아, 너 멍청이야.”

“그런데 혼자가 되는 건 자신이 없어.”

“혼자 안 가면 되잖아.”

“아저씨는 내가 또 도망가겠다고 하면 같이 가주시겠대. 근데, 나… 내가 아저씨를 망쳐놨잖아.”

“……”

“나는 이제 아저씨 곁에 있을 수도 없어. 너무 큰 잘못이었어, 그건.”

“야, 멍청아. 네 인생은 사람 하나로만 굴러 가냐. 이연우였다가 지금은 김성규야?”

 

 

그런 말을 하는 명수는 어쩐지 조금 화가 난 것도 같았다. ‘아저씨’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한 그 얼굴이 그를 그렇게 보이게 했다.

 

생각했다. 김성규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느 날엔가 우현과의 통화를 하다 ‘나는 지금 네가 더 중요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던 그 때, 온통 연우만이 가득했던 그 끝에 김성규라는 사람이 등장했던 걸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때. 그렇지만 연우가 떠난 이후 성종의 삶에는 오랫동안 그 남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게 사실이라 납득할 수밖에 없었던 일. 그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느꼈다, 그때 알 수도 있었던 걸 일부러 마음 저편에서 부정해왔다는 것을….

 

그런 생각을 깨부수듯 명수가 잡은 손을 확 끌어당겼다. 얼결에 그의 품에 안긴 채 우두커니 서 있게 되었다. 명수의 어깨 위에 고개를 얹고 고요히 숨만 쉬었다.

 

 

“옆에 있어준다고 했잖아, 내가.”

“…응.”

“왜 너는 그 때도 지금도 나는 못 보는 건데.”

“명수야.”

“왜.”

“날 좋아해?”

“어.”

“……”

“좋아해, 너. 몰라 씨발, 게이 새끼라고 해도 상관없어, 이제.”

“……”

“좋아해. 전하지 않고 뒤늦게 후회할 맘이라면 전해야 하는 거라고… 삼촌이 그랬어.”

“……”

“진짜 내가 김성규를 죽이던가 해야지, 씨발….”

“고마워.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저씨는 건들지 마. 내가 너 죽여 버릴 거야.”

 

 

한참 아무 말이 없는 명수의 품에 가만히 안겨만 있었다. 왠지 연우가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부끄럽다는 느낌이 들 때 쯤 어깨를 비틀어 그 품에서 빠져나왔다. 멋쩍은 표정을 짓던 명수는, 연우를 향해 “간다” 한 마디를 남기고 그 곳을 휙 벗어났다. 성종 역시 손을 꼭 붙들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에게 끌려가듯 연우의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명수의 손에 이끌려 걸으면서는 문장 하나를 몇 번이나 곱씹었다. 전하지 않고 뒤늦게 후회할 맘이라면 전해야 하는 것, 이라는 그 말을.

 

금방 또 비가 올 것 같아서 서둘렀다. 얼른 돌아가야만 내일부터 또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끝을 위해 있는 시작일 테지만.

 

 

 

*

 

 

 

우현과의 통화를 하며 ‘중요하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던 그때 알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마음 저편에서 부정해 왔던 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명수에게서 들은 성규가 한 말이라는, 전하지 않고 뒤늦게 후회할 마음에 대해서도 잇따라 생각했다. 사실… 이미 다 알아버려서, 더는 생각할 거리도 없어서 일부러, 일부러 더 그 생각에 빠져들려 했는지도 몰랐다.

 

아르바이트를 마친 늦은 밤, 컴퓨터를 이용하려고 PC방을 방문했다. 이것저것을 검색해 보다가 마땅한 포털 사이트를 찾은 것 같아서, 그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게시판에 글쓰기를 눌러 놓은 채 손가락을 쥐락펴락 하고 있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어떤 말로 글을 시작해야 하는지 생각하던 그때, 조용하던 전화기가 진동을 했다.

 

 

“네, 아저씨.”

‘일이 아직 안 끝났니?’

“아, 죄송해요. 연락 드린다는 게 깜빡했어요. 저 오늘은 볼 일이 좀 있어서… 내일 가도 될까요?”

‘내일은 내가 서울에 갈 거라.’

“아, 그렇죠. 그럼 모레 가면 안 될까요?”

‘그래. 그래도 되지.’

“죄송해요.”

‘아니야. 올 시간이 지났는데 안 와서 전화한 거야.’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쉬렴.’

 

 

통화를 마치고 다시 모니터 화면을 보았다. 이력서를 작성하는 일이 아니라면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릴 일이 딱히 없었는데. 어쩐지 지금 앉은 이 자리가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성종은 눈을 여러 번 강하게 감았다 뜨며 정신을 깨웠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긴 고심 끝에 결정한 일이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신중해서 무척 더뎠다.

 

다음 날 아침이 지나고 오전 그리고 오후가 되자 각종 사이트와 SNS는 어떤 이의 ‘고백’으로 떠들썩해졌다. 김성규라는 이름이 다시 검색어에 올라 내려가지를 않았고, 그 고백은 기사화 되어 많은 사람들 눈과 귀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세상이 다시 요란스러워졌다.

 

성종은 카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편의점에 가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그런 것들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다가 급상승 검색어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검색어는 다름 아닌 ‘김성규 선행’이었다. 그 검색어를 선택하고 줄줄이 떠오르는 기사나 블로그의 글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김성규 선행의 내용은 이러했다. 지난 밤 어느 사이트에 올라온 어떤 이의 ‘고백’ 때문에 익명의 사람들이 SK 후계자 김성규가 지금까지 남몰래 해왔던 기부나 선행에 대해서 밝혀낸 것이었다. 고아와 독거노인 등을 위해 몇 년간 꾸준히 기부를 해왔으며, 각종 복지재단에 후원을 해왔던 일. 사업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들이 떠맡지 않으려 했던 SK 자체 복지재단 사업을 도맡아 했던 일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글의 처음과 끝에는 꼭, 그 ‘고백’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고백의 내용은 이러했다.

 

 

‘저는 평범하지 않은 스무 살 남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 SK그룹 김성규씨와 관련된 사건의 당사자입니다. 편의상 저는 그를 아저씨라고 칭하겠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잃고 초등학생 때부터 보육원에서 지냈습니다. 저에게 유일한 가족이라곤 쌍둥이 동생이 전부였습니다. 그 보육원에서 제 동생은 성폭행을 당했고, 저희는 보육원을 떠났습니다. 그렇지만 제 동생에게 나쁜 일은 또 생겼습니다. 성폭행을 당했던 당시 찍힌 영상이 학교에 퍼졌고, 동생은 학교에서 끔찍한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동생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고, 저에게는 더 이상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 역시도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던 그 때, 아저씨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저씨는 제가 보육원에서 지내는 동안 저를 후원해주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아이들을 똑같이 후원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아저씨가 도움을 주고 있는 그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기사를 보며 많이 착잡하고 괴로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참 많더라고요. 미성년자와 원조교제라느니, 김성규의 내연남이라느니, 제가 아저씨를 돈을 목적으로 만나고 있다느니,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요. 그 무엇도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미성년자가 아니며, 아저씨와 교제 같은 걸 한 적이 없고, 그러니 당연히 내연남 따위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맹세코, 돈을 목적으로 아저씨를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김성규라는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 인생도 없었을 겁니다. 아저씨는 열여덟 살에 모든 걸 다 잃은 저를 지금까지 살게 해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셨던 그 허위기사는 스캔들에 휩싸인 하윤주씨가 이혼을 당한 일 때문에 화가 나서 저지른 일이라고요. 그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꼭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발 믿어주세요.’

 

 

 

 

 

-

 

 

 

저의 우중충한 감성을 함께 즐겨주셔서 감사드려요.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Posted by Jo_see :